5장 5분이면 충분하다
3. 후회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한다.
90 세 이상 노인 50 명을 상대로 물어본 ‘후회스러운 일’ 들에 대한 대답이다.
1. 시간의 소중함을 몰랐다.
2. 모험(도전)해 보지 못했다.
3.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을 추구하지 못했다.
“지금 내가 글을 쓰지 않는다면” 내가 90이 되어도, 똑같은 후회를 할 것이다.
시간의 소중함에 대하여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알아야겠고, 도전도 해보고 싶다.
그리고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을 추구해야겠다.
오래전부터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수필 쓰는 법” “글쓰기 로드맵 101” “글쓰기에 성공하는 책”등을 사다 놓고는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책장만 장식하고 있다.
몇 번인가 글쓰기를 시도해 보았지만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났다.
지금 내 나이가 일흔일곱인데, 지금 글을 쓰지 못하면, 나도 저 노인들과 똑같은 후회를 할 것이 아닌가, 생각하니 서글픈 생각이 든다.
아파서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갈 때는, 아프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가는 것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아프면 약 먹고, 안 나으면 병원에 가는 것은, 마치 약 먹기를 좋아하고 병원 가는 것이 좋아서, 그렇게 하는 것과 같다.
약을 먹을 때는 “내가 왜 약을 먹어야 하는지?”
“무엇을 잘못해서 병이 생겼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반성하면서 약을 먹어야, 재발(再發)을 막을 수가 있다. 좀처럼 낫지 않고 점점 심해지는 경우에는 더 큰 병원에도 가고, 약을 바꾸면서 아픈 것을 관리(管理)하게 된다. 아픈 것을 관리한다는 것은 나를 관리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위해서 아픈 것을 치료하기 때문이다.
아픈 것을 관리(管理)하는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내’가 되어야 한다.
아프니까 무조건 약을 먹는 것이 아니라, 왜 아픈지를 먼저 살피고, 내 힘으로 치유가 가능하면 자가 치료를 하지만, 내 힘으로 안되면 약물이나 병원의 신세를 진다.
그러나 내가 하는 행동의 책임(責任)은 ‘나’에게 있는 것이지, 약물이나 의사에게 그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병이 깊어지면, 전문 의사에게 상담도 하고, 치료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나의 건강관리(健康管理)는 의사나 약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한다.
내가 나를 치료하지 못하니까 전문가인 의사에게 의뢰는 것이지만, 영양 섭취나 운동은 ‘나’ 스스로가 하면서, ‘나의 책임’하에 건강을 관리 유지한다.
약은 ‘약을 안 먹기 위해’ 먹는 것이고, 병원은 ‘병원에 안 가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병이 다 나으면, 약은 더 이상 먹지 말아야 하고, 병원에도 더 이상 가지 않아야 한다. 만약 병이 다 나았는데도 계속해서 약을 먹으면 또 다른 병이 생겨, 문제를 만듦으로 약을 끊어야 한다.
전문가를 찾는다는 이유(理由)로 나의 건강을 약사나, 의사에게 맡겨버리고, 건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후회’도 마찬가지다. ‘후회를 안 하기 위해' 후회를 해야지, 후회하고 나서 또 후회를 반복한다면, 그 후회는 쓸데없는 후회가 되면서, 헛된 인생을 사는지도 모른다.
후회도 내가 주인공이 되어서 관리만 한다면 보약이 될 수 있다.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아무런 저항도 없이 쑥 쑥 하는 후회는,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후회하고 있는 “책 쓰기”는 어떻게 후회하면 좋을까?
나는 꼭 책을 꼭 쓰고 싶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경영을 하다 보면, 어떨 때는 사고(事故)를 내기도 하고, 적자(赤字)를 보는 수 도 있다.
그러나 이때에는 반드시 ‘재발 방지책’(再發 防止策)을 만들어야 한다. 연속(連續)으로 사고가 나고, 적자를 보면, 결국 회사가 망(亡)한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병이 들거나 사고로 인하여 건강이 계속 악화(惡化)되어, 결국은 사망(死亡)에 이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파산(破産) 하기 전(前)에 그 잘못된 원인(原因)을 찾아서 사장(社長)은 조치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도 더 늦기 전에, “후회하는 원인을 찾아” 조치를 해야겠다.
후회에도 ‘재발 방지책’을 만들어야 한다.
글쓰기 후회를 하는 나의 원인(原因)은, “발심(發心)이 약(弱)하기” 때문이다.
발심이 약한 이유는, 글을 쓰지 않아도 밥 먹는데 지장이 없으니까 글쓰기에 소극적이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피일 차일 미루는 것이다. 글을 쓰면 나에게 생기는 이익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을 써야겠다는 미지근한 생각에서 벗어나, 작가들은 왜 작가가 되었는지를 알아봐야 하겠다.
나의 재발 방지책은 “작가가 되겠다는 강한 결심(決心)을 하는 것”이다.
작가가 되면, 글을 쓰지 않고는 못 견디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고 했다.
나의 이런 생각을 사전에 알기라도 한 듯, “포항공대”에서 포항시민(市民)들을 상대로 하는 글쓰기 수업이 열렸다. 포스텍에서 주관(主官)하는 “나는 작가다”라는 수업에 동참함으로써, 반드시 작가가 되어야겠는 결심을 굳혀야겠다. 이런 기회는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수강신청을 했다. 그리고 젊은이들과 함께 열심히 수강을 했다.
숙제를 꼬박꼬박 하면서 강의를 성실하게 들었다.
그런데 호사(好事)에는 다마(多魔)라고 했던가?
코로나 19가 수업을 가로막는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만 같았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그동안에 내가 쓴 글을 부란치에서 인정하여, 이렇게 공개하게 되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글을 쓰고 있다. 아직 부족하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계속하여 글을 쓸 것이다.
글을 쓰는 일이야말로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남들을 위해서 내가 해야 할 마지막 일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다음은 그동안 내가 글을 쓰면서 발견한 보람들이다.
1) 문제(問題)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상황(狀況)으로 바뀔 수 있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이 따로 정해저 있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기로 작심(作心)하면, 그때부터 관계없던 시간에도 관심이 가고 유기적으로 연결이 된다.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의식(意識)에 잠재(潛在)되어 있다가, 글쓰기와 연결하도록, 나를 이끌어 준다는 것을 알았다.
2) 글 쓰는 것은 도전(挑戰)이 아니라 소명(召命)이다.
글을 쓰는 것은, 가방에서 책을 꺼내는 것처럼 단순하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나의 생(生)을 대변하는 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기성품을 파는 상행위(商行爲)나 표준화(標準化) 된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 같은, 단순한 반복(反復)이 아니다.
그때, 그곳, 그 사람에게, 가장 어울리는 그 사람만의 정장을 맞추는 맞춤 작업과도 같아, 순간순간 깨어 있어야 비로소 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글을 쓰는 사람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3) 영원한 가치(價値)가 있는 유품(遺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일생을 가치가 있도록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 일이다.
*나는 누구인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한 때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에 대하여 추구하고 싶은 마음을 가졌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까 나의 모든 삶이 온통 “영원한 가치 추구를 위한 발버둥, 그 자체(自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소중한 것을 발견한 것인지, 발견한 나를 칭찬하고 싶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나는 아직까지 살아왔고, 그래서 나의 삶은 필연(必然)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이런 글을 쓰도록 인연(因緣)이 되어준 주위의 사람들과, 이 글을 읽는 분들, 그리고 내 삶의 도상(途上)에서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끼친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