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5분이면 충분하다
4. 내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
초등학교 1 학년 학생, 손자와 함께 바둑판 앞에 앉았다. 한 수 가르쳐 주세요, 하면서 손자가 절을 한다. 몇 점을 놓을래 하니, 9 점을 깐다.
준홍아, 너는 왜 바둑을 두려고 하냐? 하고 물었다.
바둑이 두고 싶어서요. 학교에서 바둑교실을 하는데 거기에 들어갔어요.
준홍아, 바둑을 두는 사람은,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단다.
“그것이 뭔데요?”
너는 왜, 바둑을 두냐?
“이기려고요.”
그러면 너는 할아비를 이기려고 바둑을 둔단 말이지?
“예,”
너는 아직 실력이 약하여 9 점을 깔고 두지만, 9 점으로 할아비를 이기면 8 점으로 내려간다. 또 이기면 7 점으로, 6점, 5점........ 2점,
그렇게 하여 모두 이기면, 맞두게 된다.
아무튼 바둑은 이기려고 두는 것이지, 지려고 두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바둑을 두었다 하면, 그 판이 끝날 때 까지는, 졌다고 포기해서는 안된다. 정정 당당하게 싸워서 반드시 이기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이겨야 한다고 해서, 무조건 이기려고만 해서도 안된다. 정정당당하게 나의 최선을 다 해서,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알겠느냐?
“예,”
두는 그 한판의 승부도 중요하다. 그러나 바둑을 두는 사람의 인품 또한 매우 중요하단다. 이기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품위 있게 싸움을 하고, 싸움의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는 것 역시 승부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기면 이겨서 좋지만, 진 쪽은 진 이유(理由)를 찾아내서, 이다음에는 내가 이길 수 있도록 한 수(手)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바둑의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편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이겨야 한단다. 내가 나를 이긴다니 얼른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쉽게 이야기하면 이런 얘기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바둑을 두는 거야.
어제 축을 배웠으면 오늘은 축을 쓰면서 축 머리를 둘 줄 아는 거야. 그리고 어제 했던 실수(失手)는 다시는 하지 않도록 정신(精神)을 바짝 차리는 거야. 그러니까 상대와 싸우면서 나의 수를 높이는 공부를 하는 거야.
또 바둑을 두면서 참는 것도 배우고, 정석(定石)을 두면서 나만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이익을 나누는 것도 배운다. 나만 이로우려고 욕심을 부리면 틀림없이 허점(虛點)이 생기고, 그 허점을 상대가 공략(攻略)하게 되면 두기 힘든 바둑이 될 뿐만 아니라, 지는 바둑이 될 수도 있다.
욕심은 금물(禁物)이라는 것을 이렇게 해서 배운다.
바둑 하면 장기가 생각나는데 장기와 바둑은 판이하게 다르다.
장기(將棋)는 장기 알마다 발휘하는 기능이 달라, 알마다 점수(點數)가 다르다. 점수가 많은 차(車)나 포(包) 같은 말이 있는가 하면, 점수가 작은 상(象)이나 졸(卒) 같은 말도 있다. 점수가 작은 말이 점수가 큰 말을 먹으면 이길 가능성이 커진다.
장기는 포진(布陣)을 만들고 선수 후수로 전투를 한다. 직진(直進)하면서 닥치는 대로 모두 죽일 수 있는 차(車)가 있고, 하나씩 넘어가면서 공격하는 포(包), 날일자(日字)로 가는 마(馬), 쓸용자(用字)로 가는 상(象), 앞과 옆으로 한 칸씩 밖에 못 가면서도 후퇴가 안 되는 졸(卒)과 병(兵), 궁내에서만 한 칸씩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장군과 사(士)를 포진시켜 싸움을 한다.
장기는 아무리 형세가 불리해도 적장(敵將)만 죽이면 이긴다.
그러나 바둑은 장기에 비해 차려진 포진도 없고, 알의 수도 똑같은 것만 200여 개나 된다. 장군도 없고 졸병도 없으며, 차나 포(包)처럼 위력을 가진 기물도 없다. 모두가 똑같은 졸병(卒兵)들 뿐이다. 그러나 치열하게 싸운다. 어떻게 싸우든 집만 넓게 지으면 바둑은 이긴다. 그러나 아무리 영토를 넓혀도, 적군이 들어와서 두 집 짓고 살면, 내 영토는 그만큼 줄어들게 되므로, 허세를 부리지도 못한다. 내 힘으로 확실하게 지은 집 만이 나의 집이 된다.
또한 장기는 적군(敵軍)을 아무리 많이 잡아와도 아군(我軍)으로 써먹을 수가 없다. 잡은 적군의 수(數)가 많아도 우리 장군이 죽으면 그것으로 지고 만다. 그러나 바둑은 잡은 적군의 말도 나의 집으로 인정된다. 적군 하나를 잡으면 내 집 한 집과 같다. 따라서 내가 지은 영토는 내 땅이지만, 내가 잡은 적군은 적군의 집을 메꾸게 할 수 있으므로, 내가 잡은 적군 포로는 아군이 된다.
장기를 둘 때는 차를 먹히면 진 것 같아서 맥이 빠진다. 그러나 외통수를 두어 상대가 꼼짝 못 하게 되면, 통쾌한 승리를 거둔다. 그래서 장기를 두는 사람은 외통수를 즐기면서 차와 포를 중시하고 졸이나 상쯤은 우습게 생각한다. 그러나 바둑에는 이런 통쾌함이 없다. 마지막까지 일일이 집을 계산해서 집이 많은 사람이 이긴다. 한 집 차이로 이기고 진다.
지난날의 나를 돌아다보면, 바둑보다는 장기처럼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전광석화처럼 빠르고 힘센 위력을 중시하는 출세(出世) 가도, 큰 것과 작은 것을 대비(對比)하여 작은 것을 무시(無視)하는 풍조(風潮), 어찌하든지 성공만 하면 된다는 결과 위주의 풍토를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살았다. 그뿐이 아니다. 성과를 빨리 얻기 위해 폭언(暴言)을 밥 먹듯이 하고, 때로는 폭력(暴力)도 불사(不辭)하는 성과(成果) 중심의 사회를 당연시하였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보면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장기와 같은 시대는 지나갔다. 대신 바둑과 같은 시대가 오고 있다.
하나하나의 능력은 미약하지만,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놓임으로써 힘을 발휘하는 팀-웤 (Team Work) 중시의 바둑은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적장(敵將)을 죽이고 승리하는 전쟁의 시대는 갔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실(誠實)하고 다부진 힘의 축적과 상호 협동으로 새로운 영토를 만들어 가는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도 달 라저 가고 있다.
아이들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을 믿고 기다려주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들이 스스로 방향을 찾고 그들 스스로의 창의력으로 앞길을 개척해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그들을 리드하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달처럼 태양의 빛을 되비추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빛을 만들어내는 발광체(發光體)가 되어 암흑을 헤매는 수많은 선박들의 갈 길을 인도하는 등대 같은 역할을 하도록, 우리는 그들을 후원하고 또 그들의 내재력(內在力)을 믿어주어야 한다.
나무를 억지로 자라게 할 수는 없다. 나무가 커 가는 것을 보면서, 부족(不足)한 부분만을 보완(補完) 해 준다면, 나무는 스스로 자라도록 설계되어 있다.
화분(花盆)에 심긴 나무보다 화단에 심긴 나무가,
화단(花壇)에 심긴 나무보다 산(山)에 있는 나무가 재목(材木)으로 쓰인다.
눈에 보이는 사랑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절대적인 믿음과 사랑으로 그들을 보살펴 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