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를 짓게 된 남자.
나도 요새 따윈 짓고 싶지 않았다고...
나도 따뜻한 야외집을 짓고 싶었어.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고 흔들의자에 앉아 오순도순 얘기할 수 있는 집을 짓고 싶었다고.
그런데, 당신들이 그렇게 만들었잖아.
내게 상처를 입혔잖아. 험한 말을 하기도 했고, 나를 고립시켰잖아. 한 때는 배제시켰잖아.
판단이 난무하고, 나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고, 나에 대해 안다고 자부하고.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지 의심하게 되고,
그 말들에 나를 맞춰야할 것 같고,
내가 그렇게 되야만 할 것 같았다고.
그런 '거짓'들이 '진실'인줄 착각할 때도 있었고,
그게 정말 '거짓'인 걸 알게 되었을 때는,
나는 문을 하나 만들었다고.
거짓과 진실 중에 진실만 들어갈 수 있도록.
그런데 중요한 건, 다른 사람에게만 적용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도 적용하게 되어서 피곤해진거야.
나도 스스로를 검열하기 시작하니까,
사람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한다니 웃기지 않아?
사람은 부족하고 뭐가 없고, 찌질하고 추악하기도 한데.
자꾸 상처받지 않은 척 어른인 척하고 싶었는데,
실상은 애다.
나는 이제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었어.
나는 너 절대 안믿어란 말이 아니야.
너가 하는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파악하려고 하니까
당신을 믿기 위해선 엄청나게 많은 검증이 필요하게 된거지.
솔직히 말하면,
내가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0'에 가까워.
대화는 할 수 있고 깊은 얘기도 할 수 있지.
하지만 언젠가 그 사람이 배신할 수도 있단 생각과,
어쩌면 '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가진 '능력'이 중요할 수도 있단 생각을 한거지.
나는 '나'를 좋아해주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내 '능력'이였던 경우.
꽤 있었다고.
나는 이미 견고해진 내 요새를 어떻게 해야할지,
나도 사실 사람과 어울리고 싶고,
정말로 사랑하고 싶고,
무엇보다 행복하고 싶다.
그러나 이 요새가 있는 한, 우린 왕래할 수 없을 거야.
이 요새의 문은 한 개가 아니야.
아마 근 10년동안 만들어진 문들.
정말 많은 문을 열어야 나에게 도달할 수 있다.
가능할까.
내 스스로도 이 모든 문들을 열고 당신에게로 다시 한번 가는 것이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