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부 : 신전의 조각상 무너뜨리기
이전 글에서 다뤘던 가치들은 오로지 사회적 맥락에서 작동하는 가치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철저히 개인적인 맥락에서 작동한다고 믿는 사랑과 오로지 개인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는 희생이라는 가치들 또한 사회가 가르쳐준 상징체계임을 보게 될 것이다.
사실 조금은 뜬끔없는 개념이 나와 당황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사회와 공익에 대해서 면밀히 살펴보다가 갑자기 지극히 개인적인 개념인 사랑에 대해서 다루겠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사랑은 절대로 개인적인 수준에서만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가 느끼는 고차원적인 사랑이라는 감정은 철저히 사회적인 맥락에서 작동하는 개념이다.
넓은 의미에서의 사랑이라는 개념은 보편적이다. 특정한 타인에 대해 더욱 높은 유대감을 느끼는 것. 이런 사랑은 우정, 전우애, 정 등,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곤 한다. 우리가 다룰 것은 좁은 의미에서의 사랑이다.
성이라는 개념은 유전적 특질을 보다 유리하게 재조립하고자 하는, 생명진화의 정수 중 하나이다. 이를 통해서 유전자 풀을 압도적으로 넓힐 수 있었으며, 환경에 적응하여 생존해나갈 자손들을 생산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사회는 이 기작에도 당연히 간섭하였다. 사회의 시선으로 볼 때, 통제되지 않은 무분별한 번식은 후대의 안정적인 양육과 사회화에 치명적이며, 사회의 불안정성을 가속하는 요인이다. 사랑이라는 상징체계는 이를 위해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제시하는 ‘번식’의 가이드라인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결혼은 사회가 설정한 대표적인 ‘사랑’의 구현 방식이다. 사회는 자신의 특성에 맞는 사랑의 방식을 선택하였으며, 이는 결혼의 다양한 형태와 방식 등으로 증명된다. 어느 사회에서는 일부 다처제를 요구하며, 어느 사회에서는 일부일처제를 요구하는 방식이다. 가문과 왕실은 전략적으로 결혼을 사용하였으며, 이는 결혼이 철저히 사회적 맥락으로 사용되는 경우의 극단적인 예시라 하겠다.
또한, 정말 ‘본능적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은 사회적으로 배척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불륜은 많은 사회에서 처벌하던 행위였으며, 과부와 같이 특정한 조건을 가진 구성원들을 상대로 한 사랑은 터부시되는 경우도 많았다.
희생은 가장 고차원적인 단계에서 작동하는 가치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타인에게 보상없이 제공한다는 것은 우리의 본성과 너무나도 강력하게 배치되는 행동이다. 하지만, 사실 이미 자연에서도 희생이라는 가치를 인간보다도 훨씬 노골적으로 사용하는 생명체들이 많다.
벌, 특히 꿀벌은 대부분 한 번 독침을 사용하고 나면 죽는다. 심지어 이를 자각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꿀벌은 대부분 먼저 공격하는 일이 극히 드물다. 이것마저 부인하는 사람들은 ‘봉구’를 검색해보길 바란다. 꿀벌은 말벌을 둥글게 감싸 열을 내어 죽인다. 꿀벌은 말벌보다 조금 더 높은 온도에서도 버틸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꿀벌들의 수명이 크게 단축된다. 꿀벌들은 죽을 때가 되면, 자신의 벌집이 들키지 않게 벌집과 멀리 떨어져 생을 마감하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사회는 모든 경우에서 구성원에게 공익을 향상시키는 행위에 대한 보상을 제공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 희생은 사회의 보험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국가적 대의’라는 형태로 말이다. 사회가 위험에 빠지거나, 직접적으로 개인의 행동을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에서 개인에게 공익을 요구하는 기작인 것이다.
그렇다고 개인 레벨에서 정말로 희생이 비합리적인 행동도 아니다. 개인에게는 ‘보험’과 ‘투자’의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희생’ 또한 지극히 합리적인 전략이기 때문이다. 고도화된 사회에서는 구성원이 독립적으로 생존하는 것은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사회의 유지 또한 개인의 사익과 큰 맥락에서는 결국 일치하며, 이는 사회와 개인 사이에 암묵적인 거래가 체결된다고 볼 수 있다.
희생은 사익을 포기하여 공익을 향상하는 행동이다. 공익의 향상은 결과적으로 사익과도 직결된 경우가 많다. 즉, 희생은 개인과 사회 사이의 가장 고차원적이고 고도화된 사회 계약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후의 보루와 같은 사랑과 희생 또한 해체되어버렸다. 휴머니즘이라는 신전은 이로써 공략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체되어버린 신전 위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그것은 이어질 4장에서 같이 논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