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범죄사회학, 그리고 정상성의 정치성

푸코, 정신의학, 페미니스트 범죄학에 관한 글을 읽고

by 이일리


범죄학을 둘러싼 푸코의 통치성 이론을 다룬 파스콸레 파스퀴노 외(2014)와 사카이 다카시(2011)의 글, 정신 의료 약물 처방 및 서비스의 확대를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문제화하는 제임스 데이비스(2024)의 글, 그리고 페미니스트 범죄학의 관점에서 기존 형벌 담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Marie Fox(2000)의 글을 읽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범죄와 형사 사법 시스템, 정신 의학 등에 관한 기존 담론 및 체계가 자명하거나 보편 타당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형성, 확산, 확립, 학습되어온 역사적 산물이라는 비판의식을 공유한다. 우선 파스콸레 파스퀴노 외(2014)의 『푸코 효과: 통치성에 관한 연구』 12, 14장과 사카이 다카시(2011)의 『통치성과 자유: 신자유주의 권력의 계보학』 2장은 19세기 말 형법이 변화되고 새로운 형벌 합리성이 탄생한 과정을 설명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고전적 형법이론이 ‘형벌인(homo-penalis)’의 형상을 상정하고 ‘위험함’ 관념에 기반해 있던 데에 반하여 19세기 말 이후의 근대적 형법 이론은 ‘범죄인(homo-criminalis)’의 형상을 상정하고 위험함을 ‘리스크’ 관념으로 대체한다.


‘응보(retribution)’의 논리에 기반해 있던 고전적인 형법 정의는 ‘법-범죄-처벌’의 삼각형으로 구성된다. 이때 범죄를 저지른 자 ‘형벌인’은 계약 주체인 시민이자 ‘법률위반자’로 간주된다. 여기서는 범죄인의 형상은 부재하며 시민 개인의 ‘자유의지’가 처벌권의 주관적 근거로 기능하였다. 그러나 19세기 말 새로운 형법 학파의 이론은 범죄자의 범죄행위가 비정상적인 정신적, 도덕적 기질과 같은 ‘범죄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보고, ‘범죄인’의 형상을 형벌 실천의 새로운 대상으로 제시한다. 이들 학파는 ‘사회’를 공격하는 범죄인을 ‘무해화’하여 사회를 ‘방어’하고 ‘사회질서 관리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논리를 취한다. 다시 말해 개인의 자유의지가 아닌 ‘사회’가 처벌의 새로운 근거가 된 것이다. 구체적인 개인이자 시민 주체는 해체되고 그 자리는 리스크 요인들의 조합으로 대체되었으며, 위험함의 구체적인 공간이 리스크의 일반화된 공간으로 전환됨에 따라 ‘예방’이라는 근대적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지고 감시, 효율적 관리, 예방적 통제가 일상화되었다는 것이 두 책에서 드러나는 푸코의 주장이다. 이렇듯 사법이 응보가 아닌 ‘규범을 향한 교정과 규율’로 초점을 이동시킨 것에는 정신의학적인 담론편제의 개입이 있었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형벌적 합리성은 고전적인 법-범죄-처벌의 틀과는 전혀 다른 ‘규범(정상성)-사회-위험성’의 틀을 갖게 되었다.


나아가 사카이 다카시(2011)는 4장에서 새로운 형벌 논리로 확대된 예방적 테크놀로지로 인하여 ‘시큐리티의 논리’가 무기화되었고 권력이 인구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가정하며 작동함에 따라 포함사회에서 ‘배제사회’가 되어가고 있음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의 배제사회는 주권 행사로서의 전쟁이 국경의 내부를 향해 수행되며, 그 결과로 도시가 양극화되고 사회적 불평등이 강화된다. 배제사회의 도시 공간은 정착 및 안정된 인구가 거주하는 ‘중심적 핵’, ‘방역선’, 그리고 태만과 범죄로 특징지어지는 ‘외부집단’이라는 세 구역으로 분절적으로 구성되며, 저개발되고 열악하며 게으르고 자격 없는 인구의 공간은 밖으로 밀려나고 방범 정책, 건축, 기구 등에 의해 그 범죄나 무질서 수행의 공간적 기회를 거세당한다.


이어서 문제화되는 ‘빈자의 범죄화’는 제임스 데이비스(2024) 저서 『정신병을 팝니다』 2장과 11장의 문제의식과 맞닿는다. 저자는 정신 의료 약물 치료와 서비스를 통한 정신의학적 개입이 병리적 건강 상태 저변의 생물학적 이상을 표적으로 삼기 때문에 빈곤, 사회적 불평등, 학대, 물질주의, 차별, 불안정, 소외, 파편화, 과로 등으로 인한 문제들이 단순히 개인적 질병으로 재구성되고 사회구조적 책임은 면제된다고 비판한다. 그러한 이유로 저자는 정신적 고통의 사회적 결정 요인, 사회적 근원들을 다루는 데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여기에는 정신의학적 비정상성이 개인에 내재적인 병리가 아니라 다분히 외재적인 요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적 결과라는 함의가 있으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의 사회적 곤경이 이미 우울이나 범죄와 같은 비정상성을 배태하고 있었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정상성/비정상성에 대한 규정이 지닌 정치성 및 사회구조적 기제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Marie Fox(2000)의 책 역시 맥락을 같이 한다. Fox(2000)의 『Feminist Perspectives on Criminal Law』 3장은 형벌 담론에 여성주의적 고찰이 결여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에 바탕을 두고, 페미니스트 형법 학자들이 처벌을 어떻게 재구성(re-cast)할 수 있을지 탐구하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논하고 있다. 저자는 범죄성 및 국가 기관의 처벌(punishment)에 관한 제한적 논의를 넘어, 여성주의적 차원에서 형벌(penality)을 확장적으로 재개념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형법을 이해하려면 형벌과 신체 및 고통과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형벌의 ‘신체성’을 논하면서, 여성의 신체에 대한 감시와 규율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룬다. 여기서 폭력이나 강압을 통해서가 아닌 모성 규범을 통한 여성 신체의 동원, 성 역할에 기반하여 차별적으로 젠더화된 사회화를 통한 여성 신체의 통제, 사회적 성별 고정관념에 기반한 형법의 차별적 집행,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한 자기 규율의 메커니즘, 여성 범죄자 수감 경험의 특수성 등이 문제화된다. 결론부에서는 형사 사법 시스템의 처벌 기능에 중점을 두기보다 사회적 불평등 해소와 재활에 초점을 둔 회복적 접근(rehabilitative approach)이나 돌봄 기반 접근(care based approach) 등의 페미니즘적 접근의 필요성과 한계를 논한다.


앞서 요약한 네 편의 글들을 읽으면서 『푸코 효과: 통치성에 관한 연구』의 353~354쪽에 제기되어 있는, ‘법은 사회에 선행하는 것인가, 사회가 작동하는 법칙들을 명문화한 부차적 산물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후자에 가깝다는 답을 조심스럽게 내리게 된다. 입법의 요구와 관철, 그리고 사법의 절차는 특정한 사회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따라서 그 어떤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 및 제도나 문화로부터 영향 받지 않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절차일 수 없다. 그러한 맥락에서, 네 편의 글이 공유하는 논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비정상적인 것이 정말 그 자체로 비정상적인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전적으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은 존재할 수 없기에, 어떠한 대상을 비정상적(병리적, 비도덕적, 범죄적)이라고 규정하고 배제, 차별, 처벌해온 관행과 제도를 의식적으로 의심해야 한다. 그것이 그 자체로 구조적이고 거시적인 원인을 거세하는 탈정치적 폭력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범죄자들이 태생적으로 탐욕스럽거나 가난하거나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방기한 여성이거나 흑인이거나 정신질환자이거나 동성애자인 것인가, 아니면 바로 그 소수자성, 차별, 불평등이 이들을 범죄라는 선택지로 경도되게끔 하고 또 범죄자로 낙인 찍는 것인가.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이를 방기하는 탈정치화의 역학이 범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어떻게 조형하고 있는지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다만 네 편의 글들이 다루지 않고 있는 문제들 역시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환경 정의(environmental justice)의 문제다. 국내 대학에서 재학하였던 학부 시절 ‘일탈과 범죄’라는 범죄사회학 과목을 수강하며 그 사례로 살인, 자살, 성폭력, 가정폭력, 재산범죄 등을 배웠었는데, 영국에 교환학생으로 파견 가 수강하였던 ‘Sociology of Crime’ 수업에서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례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환경파괴와 에코사이드를 범죄사회학의 하위 분야 사례로 다루는 녹색 범죄학(green criminology)이다. 관련 논문에서 Rob White(2018)는 기후행동의 핵심 주체가 되는 ‘정부’와 지구 온난화의 핵심 동인인 ‘초국가적 기업’들을 ‘탄소 범죄자(carbon criminals)’라 규정한다. 이러한 녹색 범죄학은 불법적인 환경 해악뿐만 아니라 합법적인 환경 해악(현재 합법적인 것으로 용인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생태적으로 해악이 되는 활동)을 모두 이론화하고 비판할 수 있는 포괄성을 제공한다. 또, 환경 파괴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다름 아닌 빈곤하고 소외된 취약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환경적 해악의 피해가 생태학적, 사회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녹색 범죄학은 기존의 범죄사회학 논의에서 흔히 다루어지지 않고 기후 변화 논의에서도 대개 배제되어 있다. 따라서 범죄를 규정하는 시야를 확장하여 거대한 사회적 해악의 ‘궁극적 가해자’를 규명하려는 시도가 범죄사회학 공부에 중요한 하나의 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덧붙여, 글을 읽으면서 몇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적인 단상들이 남았다. 첫째로, 페미니스트 진영 안에서도 그 시각이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이 있는데 서로 다른 관점들을 어떻게 상호 교섭, 화해시킬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다. 예컨대 일각의 여성주의자들은 성매매의 합법화를 주장한다. 성 판매를 노동으로 규정하여야 하고, 성매매 집결지라는 이유로 성 판매 시설을 함부로 폐쇄해서는 안 되며, 이들이 성매매 산업에 들어서게 된 계기와 성 판매 행위에 대해 포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성매매를 합법화하여야 성매매 산업이 공식적으로 관리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성매매 과정에서의 폭력을 고발하기 쉬워진다는 근거를 들기도 한다. 나는 성매매 합법화에는 반대하지만 그 근거에 있어서는 상당 부분 동감할 수밖에 없는 지점들이 있다고 본다. 성매매 합법화를 둘러싼 논쟁에 있어서 범죄사회학이 각 관점들 간 화해를 위해 어떤 유용한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을까. 둘째로,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는, 극우화된 10, 20, 30대 남성들을 중심으로 한 ‘인셀 범죄’에 대하여 규율적 관리 및 강력한 처벌보다 회복적 정의나 돌봄 기반 접근과 같은 페미니즘적 접근이 과연 더 유용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청년 세대의 경제적 불안정성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의 확산과 같은 단편적인 요인들로만 이들의 범죄를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름 아닌 여성 혐오 문화에서 비롯된 인셀 범죄들에 대하여 범죄사회학 특히 페미니스트 범죄학은 어떤 효용성 있는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까.



• 참고 문헌


- 사카이 다카시. (2011). 통시성과 자유: 신자유주의 권력의 계보학 (오하나 역). 그린비.

- 제임스 데이비스. (2024). 정신병을 팝니다 (이승연 역). 사월의책.

- 파스콸레 파스퀴노 외. (2014). 푸코 효과: 통치성에 관한 연구 (심성보 외 역). 난장.

- Fox, M. (2000). Feminist Perspectives on Criminal Law. SJ Schullhofer.

- White, R. (2018). Ecocide and the Carbon Crimes of the Powerful. The University of Tasmania Law Review, 37(2), 95-115.


keyword
작가의 이전글K-장녀 담론 너머의 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