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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받는 자와 쫓겨나는 자 : 이주민 성원권과 시민성

경북 산불에 주민 대피를 도운 외국인에 대한 장기 체류 비자 검토에 부쳐

by 이일리


지난 3월 25일, 인도네시아 국적의 외국인 선원 수기안토(31) 씨는 산불이 덮친 경북 영덕군에서 어촌계장과 함께 마을 곳곳을 돌며 주민들에게 화재 소식을 알렸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업고서 마을 앞 방파제까지 대피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미담은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기사화되었다. 마을 주민들은 “저렇게 훌륭하고 믿음직한 청년과 함께 일하고 계속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고마움을 표했다고 전해진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 ‘x’(구 트위터)에서는 해당 기사를 인용한 ‘이 정도면 국적 주던데’라는 코멘트가 1.8만이 넘는 재게시 수를 달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하루만인 4월 1일, 수기안토(31) 씨에게 법무부가 장기 거주(F-2) 자격 부여를 검토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F-2는 장기 체류 비자로, 그중에서도 수기안토 씨에게 부여가 검토되는 F-2 16 비자는 대한민국에 특별히 기여했거나 공익 증진에 이바지했다고 법무부 장관이 인정하는 사람에게 부여되는 거주 자격이다.


이 일련의 미담은 한편으로, 어떤 이주민이 시민으로 포섭되거나 배제되는가 하는 성원권(成員權)의 문제를 드러내는 괴담이기도 하다. 성원권이란 한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자격이자 권리를 말한다. 성원권을 가진 자는 그 사회 안에서 자기 자리가 있는 자이며, 환대받을 자와 쫓겨날 자를 경계짓는 배제의 테크닉에 의해 밀려난 자들은 성원권을 부여받지 못한다. 김현경(2015)의 『사람, 장소, 환대』는 이러한 성원권의 문제를 ‘환대의 윤리’의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논한다. 저자는 사람이 될 자격이 생득적으로 주어지지 못하며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사회 안에 들어오기를 환대받음으로써 주어진다고 이야기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사람 됨은 장소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고, “물리적인 의미에서 사회는 하나의 장소이며,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곧 이 장소에 대해 권리를 갖는다는 것, 손님이자 주인으로서 환대받을 권리와 환대할 권리를 갖는다는 것”(289쪽)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 안에서 어떤 이주민들이 환대 받을 권리를 가지는가. 또, 이주민의 ‘한국 사람 되기’는 어떻게 수행되고 있나.


남한 사회에서 북한이탈주민에게 요구되는 시민성의 양상을 실천과 에토스의 차원에서 분석한 류연미 외(2018)의 연구는 이주민에게 요구되는 시민성이 “국가가 이주민의 정착과 적응을 규율하는 기제”라 정식화한다. 저자는 북한이탈주민 전문 소식지 <동포사랑>에 대한 분석을 근거로, “실천과 에토스를 통해 형성되는 이상적인 시민 주체란 사회의 빈곳을 채우는 성실한 노동자이자, 자신의 삶을 기획하고 타인을 돕는 안전하고 모범적인 이웃” (264쪽)이라 밝힌다. 한국인의 생명을 적극적으로 구한 수기안토(31) 씨의 봉사 정신이 칭송되며 어떤 경제적 대가도 아닌 국적이나 비자 즉 성원권이 보상으로 거론되는 사태와 맞물린다. 박경숙(2012)의 연구 역시 유사한 논지로 “표면적으로는 공생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한국 가족에의 일방적 동화를 강조”(296쪽)하는 이주민 정책을 비판한다. 요컨대, 외국인 이주자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배제와 분리, 혹은 포섭은 위계적인 시민권과 규범적 시민성에 의해 구조화된 바가 크다.


2020년, 재치 있는 컨셉의 졸업 사진으로 유명한 의정부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Coffin Dance를 패러디하면서 얼굴을 검게 칠하여 흑인을 흉내냈다. 이는 서구권에서는 ‘블랙 페이스’라 불리며 인종차별적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 금기시되는 행위다. 이에 대해 가나 국적의 방송인 샘 오취리는 ‘얼굴을 검게 칠하는 것은 흑인들에게 매우 불쾌한 행위’라고 지적하는 글을 SNS에 게시했다. 그런데 이를 계기로 샘 오취리에 대한 사람들의 반박과 비난이 쏟아졌다. 악의 없는 패러디에 과한 지적이라거나, 한국 교육을 무시하는 발언이라거나, 본인도 성희롱적인 발언을 한 적이 있다거나,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식이었다. ‘비정상회담’, ‘대한외국인’을 비롯한 많은 한국 예능에서 얼굴을 비추며 시청자들에게 ‘흑인이지만 한국을 좋아하는 친근한 예능인’으로 소비되던 샘 오취리는, 한국의 인종차별적 문화를 지적하자마자 순식간에 성원권을 박탈당했다. 권위적, 차별적, 경쟁적인 한국 문화를 비판하며 헬조선, 탈조선을 부르짖는 일은 오직 ‘토종 한국인’에게만 허용되고, 토종 한국인의 심기에 거슬리는 ‘삐딱한’ 이주민은 언제든 배제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라진 샘 오취리의 자리는 콩고 국적의 방송인 조나단이 대체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한국에서 살아왔다는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을 심심찮게 드러내는 조나단의 인기는 한국 사회 내 위계적 시민권의 권력구조와 이주민 성원권에 대한 이중적 시선을 보여준다.


산불로부터 영덕 주민들을 구한 수기안토 씨나 한국을 사랑한다 말하는 방송인 조나단에게 대한 환대는, 국내 총 인구의 5%가 넘는 수백만 이주민에 대한 극렬한 혐오의 목소리에 상당히 대조적이다. ‘국민과 외국인이 똑같이 혜택 받는 게 말이 되냐’, ‘이주민이 자국민 일자리 뺏어간다’, ‘이주민들은 한국 와서 꿀 빤다’와 같은 흔하디 흔한 차별적 발언 말이다. 많은 이들은 오늘날 이주민들이 ‘한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없어선 안 될 인력’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부정하고, ‘잘 사는 나라 한국에 기생하며 자국민들 피를 뽑아먹는 위험하고 열등한 존재’라 여기며 혐오한다. 광업, 제조업, 농업의 경우 현재 이주민 없이는 아예 돌아가지 않는 사업체가 많고, 돌봄 공백 역시 수많은 이주자 여성들의 저임금 간병 노동으로 메워지는 상황임에도 그렇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최저임금이 미적용되는 외국인 가사사용인 시범사업을 강행한다는 뉴스가 나온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산불 피해로부터 한국인들을 구한 외국인 선원에게 장기 거주 비자 부여를 검토한다는 뉴스가 들려오는 현실은, 이 나라가 참으로 가증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김현경(2015)는 선별적이고 차별적인 환대가 아닌 ‘절대적 환대’를 이야기한다. 절대적 환대 개념은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환대, 복수하지 않는 환대를 말한다. 국가 간 위계, 인간들 사이의 위계, 공동체의 경계를 흐리고 오직 사람이라는 이유로 환대하는 것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한 사회를 풍요롭고 번성하게 하는 것은 엄격하고 규율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다양성이 보장되는 느슨하고 유연한 시스템이다. 성원권에 대한 포용적이고 확장된 이해, 그리고 시민성에 대한 탈규범적인 관념이 필요하다. 이익과 손해를 따져 한국 사회 안에서 살아갈 자와 쫓겨날 자를 구분 짓고 셈하는 체제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 참고 문헌


- 김현경. (2015). 사람, 장소, 환대. 서울: 문학과지성사.

- 류연미, 손명아. (2018). 「동포사랑」에 나타난 북한이탈주민의 시민성 실천과 에토스. 사회과학연구, 44(3), 247-270.

- 박경숙. (2012). 탈북이주자 생애사에 투영된 집단적 상흔과 거시 권력구조: 지속된 한인 디아스포라, 가부장제, 위계적 시민권. 경제와 사회, 95, 288-332.

- 산불에 할머니 업고 뛴 외국인, 법무부 “장기거주 자격 검토“. (2025, 4월 1일). 한겨레.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738705?cds=news_edit

- 안창혜. (2016). 국내 이주민 집단의 사회적 구성: 체류자격 구분을 통한 위계적 성별화와 인종화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중앙대학교, 서울.

- “우리도 살기 힘든데 받나” 항의 빗발…이주민들 사라진다면 괜찮을까요?. (2022. 4월 20일).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article/202204200600045

- 정부, 최저임금 못 받는 ‘외국인 가사사용인’ 시범사업 강행. (2025. 3월 2일).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1184973.html

- 제2의 관짝소년단, 차별주의자들에게 승리의 경험을 줄 때 벌어지는 일. (2020, 8월 15일). 경향신문. https://m.khan.co.kr/article/2020081506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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