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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빈 Jun 12. 2019

복숭아색 작은 아이

감정을 공유하는 일, 세 걸음

잘 닿지 않는 모퉁이 어딘가에 오래 묻어두었던 것들을 떠올려 본 적 있어요?

이제는 꼭 무언가를 동경하는 얼굴로 멀끔히 운동장을 바라보며 회색 시멘트가 굳어진 스탠드에 나란히 등을 기대어, 지금 내 키의 반. 그러니까 허리 춤에 겨우 닿을 만큼의 작은 여자아이들 여럿이 팔짱을 끼고 흙 먼지 이는 땅 위를 걷는 모습이나,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몸을 웅크린 채 조그마한 손가락 틈새로 흘러내리는 모래를 만지는 아이들을 보면서요.

그네를 놓고 먼저 타겠다며 다투는 소리, 곧 해가 저물어 집으로 뛰어가는 뒷모습에 어쩐지 자꾸만 옛날 생각이 아른거려서요.

뒤뚱뒤뚱 걸어왔던 복숭아색 작은 아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어요? 볼에 오른 뽀얀 살을 손가락으로 눌러 본 뒤엔 귀여워서 못 참겠다는 표정을 지었잖아요. 안아달라며 작은 품을 들이미는 모습은 어쩜 그리 사랑스러웠는지요. 가지고 놀던 매실 한 알을 쥔 손은 꼭 금귤 같은거 있죠.

당신의 어릴 적 모습은 어땠어요? 그때도 희게 웃을 때면 두 눈이 가늘게 휘어졌어요? 지금처럼 여름과 파란색을 좋아했어요?

어린 날의 우리가 서로를 마주했다면, 당신은 어떤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을까요. 나는 당신에게 어떤 말을 건넸을까요.

어쩌면 지금보다 지나치게 사랑하게 됐을지도 모르겠어요.

유난스러웠던 운동장에 둘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을 땐, 어느 누가 그네를 타자는 말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우리. 와이어를 잡고 나란히 그네에 앉아있었네요.

높이 올라가는 그네를 타고 눈을 감으면 보고 싶은 것들이 꼭 보이는 것만 같다며, 내려올 때는 발을 디디는 게 아니라 점프를 해야 한다며 장난기 어린 어투로 으름장을 놓기도 했고요.
  
발을 굴러보기도 전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당신이 했던 말은 뜬금없지만 예쁘다, 였네요. 그 어설픈 목소리가 며칠 밤 잠들기 전이면 종종 생각날 것 같은데 어떡하죠.

그거 알아요? 당신이 내는 소리 참 듣기 좋다는 거요. 해맑은 웃음소리도, 깊게 잠긴 목소리로 잠이 안 와, 꼭 그렇게 말하는 것도. 그래도 가장 듣기 좋은 건 효빈, 하고 지그시 내 이름을 불러 줄 때인 것 같아요.

말 예쁘게 하는 건 또 어떻고요. 꼭 그렇게 질투 나게 예쁜 생각만 하는 거 있죠. 그래서 당신을 좋아하게 된 거겠죠.

해가 길어진 걸 보니 여름이 왔나 봐요. 이번 주말에는 우리 근교로 자전거 타러 갈래요? 햇살은 조금 뜨겁겠지만, 간단한 브런치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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