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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도시에서 길을 잃다, 타락천사

네온 불빛 속, 길을 잃은 영혼들

by 라내하
VmZrdpSuGgBflzUyccKpSiC839JSzx_large.jpg 출처 Criterion Collection - Fallen Angels


어느 순간, 도시는 더 이상 피난처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분주히 움직였지만, 그들의 발걸음은 서로에게 닿지 않았다. 타락천사 속의 인물들도 그랬다. 그들은 같은 도시를 살아가면서도, 마치 서로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듯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그 고독한 거리를 걸으며 잃어버린 감정을 찾아 헤매는 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킬러(이자웅)다. 그는 자신의 직업에 지쳐가며, 더 이상 삶에 목적을 찾지 못한다. 그의 파트너인 여인은 그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끝내 고백되지 못한 채 도시의 어둠 속에서 길을 잃는다. 그녀는 그와의 만남을 갈망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서로를 바라보지만 결코 닿지 않는 평행선처럼 이어진다.

두 번째 이야기는 말을 잃은 청년(금성무)이다. 그는 말 대신 다른 사람들의 삶에 무작정 뛰어들며 그들의 감정을 흉내 낸다. 하지만 그런 그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것은 오히려 깊은 고독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간섭하며 스스로의 공허함을 메우려 하지만, 그 역시도 끝내 길을 잃고 만다.


4ffefa308385b73db30a2865a6850295.jpeg 출처 Criterion Collection - Fallen Angels

타락천사는 파편화된 이야기와 감각적인 장면들이 이어지는 영화다. 왕가위 감독은 도시의 복잡하고도 외로운 공간을 무대 삼아, 인물들의 내면 깊숙이 숨겨진 감정을 화면에 투영한다. 카메라는 그들의 움직임을 가까이 따라가면서도,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거리감을 유지한다. 이 영화 속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정작 그들의 감정은 제자리를 맴돈다.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그 강렬한 시각적 스타일이다. 빠르게 전환되는 화면, 강렬한 색채, 그리고 불규칙한 카메라 움직임은 인물들의 혼란과 고독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홍콩의 밤은 네온사인으로 가득 찬 차가운 도시지만, 그 속에 담긴 인물들의 감정은 그 어떤 곳보다도 뜨겁고, 고통스럽다.


타락천사는 결국 사랑을 갈망하지만 결코 그 사랑을 완성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삶은 도시의 어두운 뒷골목처럼 복잡하고, 그 속에서 길을 잃은 그들은 끝내 서로를 찾지 못한 채 헤어진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끝없이 반복되는 도시 속의 고독과 사랑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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