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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눈 Jun 21. 2019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죽음

흰 날개와 바람만 있다고 해서 어디든 갈 수 있지는 않아

날개를 펼친 새.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파괴하는 생명 중 하나.


 어린 시절, 엄마와 아빠를 따라 금강 철새 도래지에 종종 새를 보러 갔었다. 자동차를 타고 마트를 지나고, 지금은 사라진 화력 발전소의 낡은 굴뚝과 매캐한 연기를 지나, 잘 마른 지푸라기처럼 바싹 마른 풀이 무성하게 겨울을 나던 방둑 주변에 차가 멈추면, 도착이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엄마가 준 목도리와 장갑으로 무장을 하고도 춥다고 칭얼거렸고, 둘째와 막내는 제법 긴 이동에 잔뜩 심심했던지 거의 차에서 발사되어 신나게 방둑을 뛰어다녔다. 무심하고 투박하게 툭 방둑에 세워진 바람만 겨우 막아주던 나무로 된 구조물에서 동생들과 장난을 치고, 아빠가 사 준 풀빵 봉지를 괜히 뒤적거리며 기다리다 보면.


 수면 전체를 시꺼멓게 뒤덮고 쉬던 가창오리 떼가 시끄럽게 울며 이동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변에 카메라나 쌍안경을 가지고 보던 사람들이 바빠지기 시작했고, 엄마와 아빠는 마구 뛰어다니던 나와 동생들을 불렀다. 물 위에 둥둥 떠 있던 욕조 속 고무 오리 장난감처럼 물의 흐름에 몸을 맡겼던 새들이 날개를 펴고 기지개를 켜듯 몇 번 펄럭거리면, 주위의 모두가 잔뜩 기대하며 침묵했다. 그리고, 한 두 마리가 물을 박차나 싶더니,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일제히 중력을 거스르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 장면은 보자마자 눈이 아니라 뇌에 저장이 된 모양이다. 날씨도 춥고, 멀미를 하던 나에게 금강 철새 도래지는 조금 멀었고, 그 광경을 그저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 좀이 쑤시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그 활짝 펼친 날개와, 시끄럽게 울어대던 소리, 그리고 수십만 마리의 날개의 깃털이 일제히 부딪히며 내던 거대한 소음은 내게는 그야말로 생명력이라는 단어를 현실에 그려낸 것 같은 광경이었다.




새의 죽음. 수많은 원인 중 하나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투명한 유리이다.(ⓒ에이)


 그 넘치는 생명력이 사라지고 있다.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고속도로 투명 방음벽, 전면 유리 건물, 유리창 등의 유리에 충돌해 죽는 새는 대한민국 기준 하루 2만 마리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1년으로 계산하면 대략 800만 마리의 새가 유리에 부딪혀 죽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는 한 해에만 3억에서 10억 마리의 새가 유리에 충돌해 목숨을 잃는다고 추정하며, 캐나다의 경우 1년에 2천 5백만 마리의 새의 목숨을 유리가 앗아간다고 추정된다.


 이는 고양이 등의 천적에 의한 사망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사망 원인이다. 실제로 유리벽 충돌은 2011년 국립공원연구원 철새연구센터에서 조사한 결과 흑산도에 서식하는 육상 조류의 사망 원인 중 포식자에 의한 피식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사망 원인으로 밝혀졌다. 사태가 이러하니 2018년 11월 1일부터 국립생태원에서는 '유리벽에 쿵! 새들을 지켜주세요.' 라는 제목의 온라인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고, 조류의 유리벽 충돌 방지를 위한 가이드를 만들어 홈페이지를 통해 배포하고 있다.


 이렇게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사망 원인이지만, 애석하게도 이를 걱정하기는커녕 이를 아는 사람조차 많지 않다. 처음 국립생태원 홈페이지에서 조류의 유리창 충돌에 관한 카드 뉴스를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가장 처음 느낀 충격은 문자 그대로 엄청난 숫자가 안겨주는 무시무시한 파괴력. 그리고 숫자에 적응하고 난 뒤 다시 뒤통수를 강타한 충격은 이렇게 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고, 실제로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새를 보지 못한 것도 아니였는데, 지금까지 현실을 몰랐던 나 자신의 무지에 대한 놀라움.




정면을 보는 새의 사진을 보면, 새의 눈은 머리의 양 옆에 달렸음을 알 수 있다.


 새가 유리에 약한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속도가 빠르다. 사람이 일반적으로 걷는 속도는 시속 5km 정도인데, 새의 경우 보통 시속 30km를 훌쩍 넘는 속도로 비행한다. 현재 100m 달리기 세계 기록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 선수의 기록을 시속으로 계산하면 시속 약 37.6km 정도이므로 그가 100m를 달리는 속도가 새들의 평균적인 비행 속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우사인 볼트 선수가 100m를 달리는 그 속도 그대로 달려 유리창에 부딪히면 어떻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어디 한 군데 부러지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사방이 유리창 천지인 도심을 나는 새들은 비행의 순간마다 이런 위협을 느끼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새는 가볍다. 비행을 위해 몸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진화한 결과다. 새의 뼈는 비어있고, 무거운 이빨은 퇴화했으며, 새의 몸을 뒤덮은 깃털 역시 케라틴으로 만들어져 문자 그대로 깃털처럼 가볍다. 뇌를 보호해야 하는 두개골 역시 스펀지와 같은 구조로 되어있어 충돌에 취약하다. 사실, 인간이 마천루를 짓기 이전에는 하늘은 온전히 새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딱히 충돌에 대비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새의 시야 문제까지 추가된다. 위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새의 눈은 사람처럼 정면을 향하고 있지 않다. 올빼미목(目)을 제외한 모든 새는 새의 머리의 양 옆에 눈이 달려있는데, 덕분에 새는 매우 넓은 시야를 갖게 된다.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진화한 결과로, 양 옆에 눈이 달려 광각으로 볼 수 있어서 뒤나 옆에서 덮치는 포식자는 금방 알아채고 피할 수 있는 반면, 원근감을 느낄 수 있는 거리는 부리 끝 정도가 한계라고 한다. 새의 세상은 3D가 아니라 2D에 가까운 셈이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새는 유리창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부딪히는 순간 치명적인 일이 벌어지게 된다. 여기에 특정한 시간이나 조명 등의 조건이 맞아서 유리벽이 주위의 풍경을 반사하는 순간, 새에게는 좀 더 위험한 상황이 펼쳐진다. 일반적으로 조류는 좁은 틈이나 어두운 구멍을 발견하면 통과하려는 습성이 있다. 사실 숲의 나무와 나무 사이를 날아다닐 때에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기 때문에 덩치가 큰 포식자를 피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어 전략일 수 있지만, 만약 유리벽이 주변 풍경을 반사하고 있다면, 새의 입장에서는 틈새를 발견하고 통과하려는 순간, 갑자기 보이지 않는 벽에 강하게 충돌하게 되는 것이다.


도심의 유리벽이 주위의 풍경을 반사하는 순간, 새의 비행은 좀 더 위험해진다.




충돌 방지 패턴을 그리는 규칙. 가로 10cm 미만, 세로 5cm 미만.


 무의미한 살생을 방지하는 방법은 물론 있다.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은 맹금류 모양 스티커를 부착하는 것이다. 실제로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투명한 방음벽에 맹금류 모양 스티커가 붙어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런 맹금류 모양 스티커는 그닥 효과가 없다. 새가 맹금류를 천적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천적을 피하기 위해 유리창에 부딪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충돌 방지법인데, 새의 뛰어난 시력을 과소평가한 대책이다. 새는 맹금류가 실제 맹금류인지 맹금류 모양 스티커인지 보고 알 수 있다.


 이보다 훨씬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위의 사진에 나온 규칙대로 유리창에 스티커를 붙이거나 8mm 이상의 크기의 점을 찍는 방법이다. 6mm 이상의 굵기의 줄을 10cm 간격으로 늘어뜨리거나, 그물을 설치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위의 10cm 미만, 세로 5cm 미만의 규칙은 일반적으로 박새나 참새 등 우리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은 새가 자신이 지나갈 수 있는 틈이라고 인식하는 가장 좁은 틈으로, 규칙을 지켜 점을 찍거나 스티커를 붙이면 새는 자신이 지나갈 수 없는 틈으로 인식해서 유리에 부딪히지 않고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의할 점은 건물의 경우 실내가 아니라 실외에서 패턴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실내에 있는 패턴은 유리벽이 외부의 풍경을 반사하는 것을 전혀 막지 못한다. 또한, 그물을 설치할 경우 그물이 너무 얇으면 새가 엉킬 수 있으므로 충분히 굵은 굵기의 그물을 설치해야 하며, 유리와 최소 5cm 이상은 떨어뜨려 설치해야 한다. 국립생태원에서는 온라인 캠페인을 진행한 뒤 국립생태원 내 모든 건물의 유리벽에 조류의 충돌을 막기 위해 자외선 반사 스티커를 붙였고, 군산과 장항을 잇는 동백대교의 투명 방음벽에 자외선 반사 스티커 부착 행사를 진행했다.




 어린 시절 내 눈으로 직접 본 경이로운 생명력을 기억한다. 30만 마리의 새가 강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르던 놀라운 장면은 왜 자유를 잃은 이를 새장에 갇힌 새에 비유하는지 단박에 이해시켰다. 사실 그래서인지, 여전히 도심에서 자주 마주칠 수 있는 참새나 까마귀, 까치, 비둘기 등이 날아오르는 장면은 놀랍다. 그렇게 땅을 박차고 도심의 하늘을 누비지만, 그들에게는 이 도심은 지뢰밭이고, 유리창은 시속 30km가 넘는 엄청난 속도로 피할 틈도 없이 갑작스럽게 허공에 등장한 죽음과도 같다.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지만, 조류 충돌 방지 대책이 잘 시행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실내의 사람이 밖의 풍경을 보는데 점과 선이 시야를 가리기 때문이다. 최대한 예쁜 스티커를 붙이고, 비가 와도 잘 지워지지 않는 아크릴 물감으로 최대한 화려하게 알록달록한 점을 찍어도, 갑작스럽게 확 좁아진 시야와 시야 끝에 걸리는 무언가를 반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은 부끄럽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부터도 그렇다. 바깥을 보기 위해서, 해가 좋아서 일부러 창가에 앉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누구나 비슷한 심정이리라.


 2016년에 보도된 자료에 따르면 겨울마다 약 30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금강호를 방문한다고 한다. 위에서 조사된 자료를 토대로 계산하면 유리벽의 늪에서 그 수많은 새가 목숨을 잃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15일이다. 보름만에, 넘치는 생명력은 넘치는 죽음으로 바뀌는 것이다. 올 겨울에는 다시 한번, 가창오리를 보러 가야겠다. 새의 하늘을 빼앗은 내가 바깥의 경치를 보기 어렵다고 투덜거릴 자격이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러 가야겠다. 박노해 시인의 말처럼, 온 하늘은 새의 길이 아니던가.




한국일보, 2017. 12. 21 '빨리 나는 새들은 유리창이 아프다'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171220/1094304


경남일보, 2019. 02. 17 '[에나NIE] 6. 버드세이버 스티커'

http://www.g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3544


국립생태원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저감 캠페인_카드뉴스'

http://www.nie.re.kr/brdartcl/boardarticleView.do?menu_nix=Br19OpRW&brd_id=BDIDX_uTjsz25Vt32d0B42lQl0o1&subnix=Br19OpRW&cont_idx=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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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화여자대학교 에코 크리에이티브 협동과정 대학원 브릿지 과목인 <에코 크리에이티브> 수업의 최종 과제물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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