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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눈 Jun 21. 2019

지리산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함께 살아가야 할 크고 작은 생명을 위한 곳

1967년, 1개, 지리산.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의 단편 소설 '산'에는 사람에게 배신당해 7년이라는 세월 동안 일한 삯도 받지 못하고 쫓겨난 머슴 '중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작가 사후 50년이 지나 저작권이 소멸된 소설이라 인터넷에서도 소설 전체를 찾아 읽어볼 수 있는데, 30분 정도면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짧은 단편 소설이다. 제목과 작가를 보면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이 글은 산과 자연에 대한 묘사가 넘쳐흐르는 글이다. 모든 문장이 달빛에 소금처럼 하얗게 빛나는 메밀꽃처럼 아름답게 살아있다.


 일단 이 글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에 작가의 의도를 분석하거나 글의 주제를 찾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여기서 작가가 이 글을 통해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했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산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산이 정확히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작품에는 산에 사는 다양한 생명이 등장하고, 그만큼 다양하고 생생한 묘사가 등장한다. 덕분에 살을 베면 피 대신 나뭇진이 나올 것 같다는 소설 속 문장처럼 산과 그곳에서 사는 모든 생물들과 하나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7년이나 일한 곳에서 억울한 오해를 산 뒤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쫓겨난 그에게, 산은 유일하게 그를 품어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산은 약속이라도 한 듯, 중실을 받아들인다. 자연은 늘 그렇다. 생명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다면, 기꺼이 제 넓은 품을 열고 받아들인다. 그 넓은 세상에서는 고라니도, 다람쥐도, 나무와 풀도 살아갈 수 있다.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먹고 먹히는 자연의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누구나.




 대한민국에서 2019년 현재 운영되고 있는 국립공원은 총 22개로, 유형에 따라 산악형 국립공원, 해상·해안형 국립공원, 사적형 국립공원으로 나뉜다. 이 중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직접 관리하는 한라산 국립공원을 제외한 나머지 21개의 국립공원은 모두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에서 관리한다. 또한 대부분의 국립공원이 산세가 좋은 산인지라 역사가 긴 사찰이 많고,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경주역사유적지구와 일부 구역이 겹치는 경주 국립공원이 있어 41개의 국보를 비롯해 총 700개가 넘는 문화재가 국립공원 내에 존재한다.


 산악형 국립공원은 18개로 지리산, 계룡산, 설악산, 속리산, 한라산, 내장산, 가야산, 덕유산, 오대산, 주왕산, 북한산, 치악산, 월악산, 소백산, 변산반도, 월출산, 무등산, 태백산 국립공원이 이에 속한다. 단, 변산반도 국립공원의 경우 산과 바다가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어 '변산 국립공원'이 아닌, '변산반도 국립공원'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또한 전 국토의 절반 이상이 산이라는 한반도의 명성에 걸맞게 22개의 국립공원 중 무려 18개가 산악형 국립공원인데, 비율로 계산하면 대략 82%에 달한다. 게다가 1967년에 지정된 제1호 국립공원인 지리산과 2016년에 지정된 제22호 국립공원인 태백산이 모두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해상·해안형 국립공원은 한려해상 국립공원, 태안해안 국립공원, 다도해해상 국립공원으로 총 3개이다. 비율로 계산하면 약 14% 정도로 적어 보일 수 있지만, 면적으로 계산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국립공원공단에서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국립공원 전체 면적에서 해상·해안형 국립공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6년 기준 무려 40.9%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적형 국립공원은 위에서도 언급된 경주 국립공원이 유일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경주 국립공원의 경우 1968년 지리산에 이어 제2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역사가 길다.




수달. 천연기념물 제330호이며, 무등산 국립공원의 깃대종이기도 하다.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국립공원은 우리나라의 자연 생태계와 문화 경관을 대표할 수 있는, 말하자면 대한민국 국가대표와 같은 곳이다. 덕분에 국립공원에는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2016년 기준 국보 41개를 비롯해, 총 733개의 지정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고, 국내 기록 생물종 45,295종 중 무려 45%에 해당하는 20,568종이 서식하고 있다. 국내 멸종위기종으로 범위를 한정하면 말 그대로 국가대표의 위엄을 느낄 수 있다. 총 246종의 국내 멸종위기종 중 160종이 국립공원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비율로 따지면 65%이다.


 그렇다면 국립공원은 어떤 경위를 거쳐 선정되는 것일까. 우선 국립공원은 환경부 장관이 지정하는데, 당연히 환경부 장관이 마음대로 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공원법 제4조에는 국립공원 지정 시 필요한 서류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고, 관할 구역의 지방자치단체장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며, 관계 중앙행정기관과의 협업이 반드시 필요하고, 주민 의견 청취회 및 공청회와 국립공원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비로소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수 있다. 즉, 국립공원은 나라가 지정하는 진짜 '국가대표'인 셈이다.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자연 생태계를 잘 보전하고 있거나 천연기념물, 멸종위기종 등의 보호종이 서식하고 있어야 하고, 자연경관이나 문화 경관이 수려해야 하며, 산업화나 개발로 인해 지형이 변형될 가능성이 없어야 한다. 또한 자연 자체의 역할은 아니지만, 국민들의 접근성과 이용의 편의, 그리고 국토의 보전과 관리를 위해 국립공원의 위치를 조화롭게 배치하는 것 역시 국립공원을 지정할 때 고려해야 할 필수 요소에 포함되어 있다.


 이런 요소를 갖추고 있으니, 국립공원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내몰린 다양한 생물종의 삶의 터전이 되었다 .자연은 상냥하게 감싸고 보호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내쫓고 밀어내지도 않으니까. 이에 국립공원공단에서는 2007년부터 한라산 국립공원을 제외한 21개의 국립공원을 대상으로 총 41종의 깃대종을 지정하고 관리하고, 보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식물 21종, 동물 20종인데, 동물은 포유류 7종, 조류 6종, 파충류와 양서류가 3종, 곤충이 1종, 어류가 3종 깃대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깃대종은 공원의 생태, 지리,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야생 생물을 일컫는 말로, 1993년 국제연합환경계획(UNEP)이 발표한 '생물 다양성 국가 연구에 관한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즉, 깃대종이란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종이다. 따라서 각 국립공원에서 깃대종을 지정할 때, 깃대종 후보군을 선정한 뒤, 설문조사 등의 국민 참여 절차를 걸친 뒤 그 결과를 바탕으로 깃대종을 지정한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국립공원에서는 식물계 깃대종 1개, 동물계 깃대종 1개로 총 2개의 깃대종을 선정하고 있다.




여우. 소백산 국립공원의 깃대종이자, 생태계 복원 사업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다.


 그리고 현재, 국립공원은 생태계 보전을 위해 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주로 멸종위기종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사업인데, 잘 알려진 지리산의 깃대종인 반달가슴곰을 포함해 위의 사진의 소백산의 깃대종인 여우, 설악산의 깃대종인 산양 등에 대해 복원 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2011년부터 멸종위기식물 보존 전담 부서를 신설해 국립공원 내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식물 52종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생물종 뿐 아니라 생물이 살아가는 서식지가 훼손되었을 경우의 복원 역시 국립공원의 생태계 보전을 위한 보전 사업에 포함된다.


 사실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이 가장 유명한 것은 가장 오래되었고, 또 가장 결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반달가슴곰의 경우 2004년부터 복원 사업이 진행되었으며, 2019년 기준 야생에서 64마리가 살아가고 있다. 이미 2009년에 야생에서 번식에 성공한 사례가 보도되었던 만큼 반달가슴곰은 나름대로 지리산 국립공원이라는 환경에 잘 적응한 것으로 보이고, 최소 존속 개체군이 50마리 이상이라는 점에서 현재까지는 성공적인 복원 사업이라고 볼 수 있지만, 아직은 끝이 아니다.


 우선 외부에서 유입된 유전자가 매우 적다. 다양한 유전자가 서로 섞이고, 다른 방향으로 발현하며 다양한 형질을 가진 개체가 많아져야 어떤 환경의 변화에도 대처할 수 있는 개체군이 된다. 사실 60마리 남짓할 뿐인 개체군의 규모도 크지 않지만,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폭이 매우 좁다는 문제가 추가로 드러난다. 이 경우, 어떤 유전자에게 치명적인 질병이 유행한다면, 곰에게는 전멸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게다가 지리산 국립공원, 더 나아가 한반도는 곰에게는 꽤 비좁다. 여기에 곳곳에 위치한 등산로와 산과 산의 맥을 끊어놓는 도로 등으로 인해 안 그래도 좁은 서식지를 더욱 좁게 조각을 내고 있다.


 리고 늘 그렇듯이 인간의 활동이 문제가 된다. 처음 지리산에 반달가슴곰 방사를 시작할 당시에도 그랬지만 현재도 곰이 먹이를 구할 때 등산객을 따라다니며 등산객들이 먹다 남긴 음식 등을 먹는 경우가 있단다. 여기에 곰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기척이나 소리에 매우 민감하다. 등산객들이 정상에서 외치는 '야호!' 라는 외침에도 놀라 무려 20km를 도망치는 것이 곰이다. 그리고 웅담이라는 약재 때문에 2010년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이루어지는 밀렵 또한 큰 문제가 된다.


 참고로, 대부분은 기존의 계획대로 지리산에 터를 잡고 살고 있지만, 일부는 엉뚱하게도 직선거리만 80km 정도 떨어진 가야산 국립공원과 수도산 일대에서 서식하고 있다. 수도산에 서식하는 반달가슴곰은 2015년에 태어났으며, 2017년에 처음 수도산에서 발견되어 포획된 뒤 지리산에 다시 방사되었지만 2018년 유사한 경로로 다시 이동하던 도중 고속도로에서 자동차에 치여 심각한 부상을 입어 수술과 재활을 거쳐야 했다. 결국 2018년에 이번에는 지리산이 아니라 수도산에 방사되었다.




2016년, 22개, 태백산.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온 가족이 무작정 아프리카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를 아직 졸업하지 않은 이제 막 아이를 벗어나 청소년에 진입한 시기였고, 셋째는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지 않은 정말 어린아이였다. 그래도 기억은 생각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더 많이 남아있다. 위대한 인류의 유산이나 예술과는 다르게, 자연은 아이에게도 딱히 제 의도를 감추지 않는다. 아니, 감춰진 의도도 없다. 그저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고, 아는 것이 없는 아이에게도 그 광경은 경이로울 뿐이다.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수많은 기록의 단편 중 정말로 인상적인 장면은 보츠와나의 초베 국립공원이었다. 뚜껑이 겨우 달린, 털털거리는 트럭과 비슷한 사파리 투어 차량을 타고 그냥 무작정 국립공원을 돌아다니는 투어였는데, 우리나라 동물원의 사파리와는 당연하지만 차원이 달랐다. 문이 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자나 호랑이가 늘어져 하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문이 열리지마자 드넓은 초원이 펼쳐지고, 동물을 찾는 것은 관람객의 몫이다. 그러니까, 얼마나 알찬 사파리가 되는지를 정하는 것은 오직 행운의 몫이였다.


 우리는 운이 꽤 좋았던 것 같다. 기린도 보고, 사자도 보고, 물을 마시는 코끼리 떼도 봤으니까. 한가로운 호숫가에서는 당장 1시간 전에 사자와 코끼리를 발견했던 초원에서 사파리 투어 차량 운전자 겸 가이드가 사진을 찍으라며 사람들을 내려주기도 했다. 나름의 경험에서 나온 안전 판단법이 있었겠지만, 겁이 많았던 우리들은 내리지 않고 엄마와 아빠만 붙잡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상하게 인간의 의도를 벗어나 수도산과 가야산에서 살게 된 단 한 마리의 곰에 대한 기사를 읽고 있으니,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이름이 갑자기 떠올랐다. 기사에서는 이미 사라진, 또는 사라질 수순을 밟고 있던 곰이 다시금 생태계에 등장하는 것은 오히려 생태계를 교란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새로운 환경을 자연에게, 그리고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던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곰은 왜 복원 사업의 대상이 되었는가.


 물론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생물종의 보존이지만, 기사가 내린 답은 이렇다. 아직 곰이 살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한 생태계라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인간의 욕심이라고. 참고로 곰은 우산종이며, 활동 영역이 넓고 호랑이나 늑대 등의 대형 육식동물이 멸종한 현재 한반도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기사는 한 사람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다만, 이 글을 쓰는 동안 내 머리에는 초베 국립공원이 계속 떠올랐다. 이유는 글쎄, 지리산에서 홀로 80km를 걸어간 곰 한 마리는 알지도 모르겠다.




김정진 외, "야생동물 서식지 확대 사례 보고: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을 중심으로",『한국환경생태학회 학술발표논문집』,2019, 29(1), 'p. 53-53'


김태욱 외, "잠재적 곰-인간 충돌지역에서 반달가슴곰 출현 양상",『한국환경생태학회 학술대회논문집』, 2018, 28(2), 'p. 100-100'


안건훈, "희귀성 멸종위기동물 복원의 필요성과 그 대책 (3): 반달가슴곰을 중심으로",『환경철학』, 2010, 10(0), 'p. 171-194'


경향신문, 2013. 02. 03 '[오늘]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의 진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302032117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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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화여자대학교 에코 크리에이티브 협동과정 대학원 브릿지 과목인 <에코 크리에이티브> 수업의 최종 과제물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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