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인을 위한 진혼곡
<레퀴엠> 속 아편 유사 효능약
대런 아로노프스키. 미국. 2000
1.
여름이다. 해리는 친구 타이론과 TV를 옮긴다. 중고 점에 들른다. TV를 판다. 약 살 돈을 구한다. 주사를 놓는다. 노래를 튼다. 춤을 춘다. 웃음이 섞인다.
— 제기랄, 이거 죽여준다. 장난 아냐. 대단하다니까.
2.
타이론은 봉지를 가져온다. 헤로인(Heroin)이 들었다. 해볼지 권한다. 해리는 말린다.
— 이건 우리가 돈을 벌 기회야. 제대로 해야 해. 큰 거 한 방 하게. 근데 우리가 중독되면 망치게 될 거야.
— 그냥 우리가 조금 해 봐야 얼마씩 섞을지 알 거 아니야. 일이야.
타이론이 답한다. 흰 가루를 액체에 녹인다. 불을 붙인다. 헤로인을 주사한다. 실소한다.
3.
여름 동안 해리와 타이론은 마약 딜러로 일한다. 돈을 번다. 가을, 겨울은 다가온다. 둘은 헤로인에 중독된다. 약이 부족하다. 물량을 구해야 한다. 플로리다로 향한다. 차 안이다. 해리는 인상을 찌푸린다. 왼팔 혈관이 썩었다. 검은 상처에 주삿바늘을 찌른다.
첨예한 연출이다. 화면을 이분한다. 연인이 양측에 자리한다. 손길이 흐른다. 서로를 스친다. 살갗이 떨린다. 배꼽 아래 열감이 부푼다. 습기가 팔뚝에 엉긴다. 눅진한 비린내를 본다. 희뿌연 연기가 퍼진다. 매캐하다. 영상에 없을 후감과 촉감이 피어난다. 관객 후기를 찾는다. 마약 수렁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기분이란다. 정신이 피폐해졌다고.
넷이 약에 탐닉한다. 셋은 헤로인 중독이다. 주인공 해리 골드팝, 애인 마리온, 친구 타이론. 하나는 암페타민 중독이다. 해리 어머니 사라 골드팝. 영화는 '주관적 마약중독 체험'을 재현하고자 했다. 감독은 배우에게 30일간 성관계와 설탕을 금했다. 섬찟한 연기는 갈망한 산물이었다. 자취방이었다. 혼자 보았다. 헤드셋을 꼈다. 손뼉을 쳤다. OST를 따로 찾았다. 하염없이 들었다. 침대에 누웠다. 귓가에 레퀴엠이 맴돌았다. 깊이 잠들었다. 꿈은 꾸지 않았다.
양귀비가 보낸 초대장
러닝 타임 100분. 연회가 열린다. 성대하다. 각양각색 마약류가 등장한다. 마약류란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및 대마를 말한다. 눈인사한 친구만 여럿이다. 대마, 암페타민, 코카인, 헤로인. 주최자는 양귀비(Papaver somniferum)다. 진통제로 사용된 약초다. 화려한 꽃이다. 당나라 미인 이름에서 따왔다. 익지 않은 열매에 상처를 낸다. 유즙을 받는다. 섭씨 60도 이하로 건조한다. 아편(Opium)이 된다.
아편은 진정 효과가 두드러진다. 고통이 준다. 깊은 잠에 빠진다. 담배와 함께 핀다. 몽롱하다. 마취 상태가 된다. 아편 알칼로이드(Opiate alkaloids) 작용에 의한다. 아편에 자연히 존재하는 알칼로이드와 반 합성품을 두루 칭한 용어다. 모르핀, 헤로인, 코데인, 노스카핀, 파파베린이 해당한다. 일부는 약으로 쓰인다. 코데인(Codeine)과 노스카핀(Noscapine)은 진해제다. 기침반사를 억제한다. 파파베린(Papaverine)은 진경제다. 경련을 멎게 한다. 평활근을 이완한다. 발기부전 치료에 활용한다.
고통을 잊은 모르핀의 무도
아편 알칼로이드 중 모르핀(Morphine)이 가장 유명하다. 모르핀은 아편 주성분이다. 독일 약사 프리드리히 제르튀르너(Friedrich Sertürner, 1783~1841)가 최초로 분리했다. 흰색 결정이다. 강력한 진통제다. 내장통을 완화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줄인다. 말기 암 환자에 사용한다.
모르핀과 작용이 유사한 천연 또는 합성 약물을 오피오이드(Opioid), 아편 유사 약물이라 한다. 아편 수용체(μ, δ, κ)에 결합한다. 수용체는 뇌와 척수에 주로 발현된다. 통각 자극이 온다. 오피오이드가 시냅스 전 뉴런에 작용한다. 칼슘(Ca2+) 채널을 차단한다. 흥분성 신경 전달 물질 방출을 억제한다. 시냅스 후 뉴런 수용체에 결합한다. 칼륨(K+) 채널을 연다. 세포막이 과분극된다. 신경전달을 억제한다. 마취 효과를 낸다.
모르핀은 뇌에서 가바(GABA) 방출을 억제한다. 정상보다 많은 도파민이 나온다. 행복감을 맛본다. 뇌는 스스로 모르핀과 비슷한 물질을 생성한다. 내인성 오피오이드다. 엔도르핀(Endorphin)이 유명하다. 극한 고통에 분비된다. 감독의 다른 작품 <블랙 스완>이 떠오른다. 흑조가 춤춘다. 소리 없이 웃는다. 복부에 피가 스민다.
헤로인이 장식한 피날레
주인공은 따로 있다. 헤로인이다. 가장 마약성이 강하다. 영웅적(heroic) 기분으로 명명되었다. 다른 이름은 디아세틸모르핀(Diacetylmorphine)이다. 모르핀에 아세틸기(acetyl group) 두 개가 붙은 구조다. 지용성이 증가한다. 뇌에 쉽게 도달한다. 뇌 속 효소가 아세틸기를 제거한다. 모르핀을 과량 투여한 효과가 난다. 의약용으로 쓰지 않는다.
헤로인은 백색 분말이다. 정제가 잘 된 경우다. 보통은 순도가 낮다. 갈색 가루 형태다. 숟가락에 올린다. 물에 갠다. 알칼로이드라 잘 녹지 않는다. 식초나 레몬즙을 섞는다. 불에 가열한다. 산염기 반응을 보낸다. 수소 이온을 붙인다. 염 형태로 만든다. 녹인다. 주사제가 된다. 정맥에 놓는다. 몇 초 내 무아지경에 빠진다. 근육이 풀린다. 쾌감에 젖는다. 헤로인은 뇌교와 연수 호흡중추에 직접 작용한다. 호흡을 억제한다. 심박은 느려진다. 위장관 움직임은 잦아든다. 수면을 유도한다. 동공은 수축한다. 영화는 동공이 커지는 장면만 비춘다. 옥에 티일까, 다른 까닭일까.
해리 동공이 확대된다.폐막을 알리는 레퀴엠
해리, 타이론, 마리온은 찬란한 여름을 보낸다. 영원은 없다. 계절은 바뀐다. 가을이다. 검은 화면에 단어가 튀어나온다. FALL. 추락(fall)을 알린다. 착실히 파멸한다. 정신착란, 현기증, 불안, 불면. 난생 경험 못한 통증이 따른다. 끊임없이 헤로인을 찾는다. 약을 얻기 위해 범죄나 성매매에 연루된다. 타이론이 해리에게 말한다.
지난여름은 정말 좋았는데, 짐.
지난여름이 한 1,000년은 지난 기분이야.
겨울이다. 해리 팔이 썩었다. 혈관이 망가졌다. 주사에 섞은 산성 물질 탓이다. 고통을 잊으려 한다. 다시 피스톤을 당긴다. 검은 구멍에 바늘을 찌른다. 투명한 액체에 핏물이 섞인다. 레퀴엠(requiem)이 흐른다. 깊고 짙고 차다. 심연 빛 선율은 약물이 흩뜨린 영혼을, 고꾸라진 말로를 위로한다.
빈 무대에서
약은 네 사람을 꿈꾸게 한다. 성한 셋은 먼발치를 바라본다. 쇠한 사라는 지난 때를 그린다. 지퍼가 끝까지 잠기던 시절. 오래된 꿈이다. 오래도록 꿈꾼다. 알약을 먹는다. 커피를 내린다. 홀짝인다. 안절부절못하다. 땀이 흥건하다. 눈이 희번덕거린다. 이를 간다. 입이 마른다. 잔뜩 여윈다.
그른 방식으로 이상을 좇는다. 심신에 이상이 생긴다. 사라는 입원한다. 전기 충격 요법을 받는다. 허공에 솟는다. 추락한다. 냉담한 침상 위다. 꿈 깰 시간이다. 약물이 빠져나간 연회장. 격정 후 정적만 남는다. 낡은 몸뚱이가 스러진다. 붉은 드레스가 헛돈다. 주름이 버스럭거린다. 약은 꿈을 위한 수단이 못 된다.
해리는 TV를 중고로 팔았다. 사라가 매일 틀던 애장품이었다. 새 TV를 선물했다. 벽면이 그득했다. 사라는 소파에 앉았다. 침침한 상자를 멀뚱히 보았다. 켜지 않았다. 약학대학에 입학한 직후였다. 수험기간 버킷리스트를 이뤘다. 과잠 입고 도서관 가기. 꿈꾼 만큼 행복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후배를 만났다. <레퀴엠>을 추천한 친구였다. 행복의 물성에 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각자 비커를 지닌다. 금빛 유체가 찰랑인다. 눈금을 읽는다. 측정값은 매번 바뀐다. 참값은 일정하다. 갈망을 이뤄도 찰나다. 결국 황금색 정량만큼 행복하다. 일부는 꿈에 중독된다. 꿀이 솟는 분수를 믿는다. 쾌를 향한다. 허튼 도움닫기에 발밑이 무너진다. 액체는 깨지지 않는다. 고체는 깨진다. 유리 혹은 우리는 산산조각 난다. 헛발질 직전이다. 진혼곡은 경적을 울린다. 발붙인 현실을 감각하게 한다. 유리를 빈틈없이 쥐여 준다. 지금을 비커에 따른다. 소중히 다루어라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