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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Sep 09. 2021

메타돈을 떠나보낸 블루

<본 투 비 블루> 속 아편 중독 치료제

로베르 뷔드로. 미국, 캐나다, 영국. 2015

1.
쳇 베이커는 제인과 볼링을 치고 나온다. 쳇은 습격을 당한다. 앞니를 거의 잃는다. 입원한 쳇 곁에 제인만 남는다. 의사가 말한다.
— 보호 관찰관과 얘기해보니 약물중독 치료(Methadone treatment)를 시작한다더군요. 이제 진통제도 처방 못 합니다.

2.
쳇과 제인은 침대에 나란히 눕는다. 제인은 말한다.
— 난 좀비랑 사귈 생각 없어. 나랑 있을 거면 약 끊는다고 약속해. 메타돈 잘 복용하고.
— 나도 메타돈 좋아. 없어서 못 먹지.

3.
쳇과 보호 관찰관이 통화한다.
— 담당 보호 관찰관 리드 경관입니다. 담당자 변경 통지는 받으셨을 겁니다. 메타돈 복용 치료에 동의하신 거로 압니다.
— 네, 아주 좋던데요. 중독성이 헤로인 뺨쳐요.
— 그건 합법이고 치료약물입니다.



 파랑을 예찬한다. 바다보다 숲, 숲보다 하늘에 도는 파란빛이 좋다. 낮게 깔린 적운에 비친 여름 바다. 티 없는 가을 광활한 상공. 식어 빠진 첫눈에 어른거린 겨울까지. 파란 냄새에 마음이 엔다. 청량하고 시리다. 내가 사랑한 푸르름은 산란 혹은 반사된 빛이다. '블루'는 다르다. 광원 자체다. 푸르게 태어난 존재다. 영화는 떨리는 여명을 포착한다. 희미하게 일렁인다. 결국 부딪힌다. 낱낱이 흩어진다.


 쳇 베이커(Chet Baker, 1929~1988) 삶을 담는다. 쳇은 음악가다. 재즈계 제임스 딘이라 불렸다. 트럼펫을 연주했다. 시대를 풍미했다. 금관 악기에 숨을 분다. 종파가 퍼진다. 느지막한 선율이다. 휘청인 기류는 스크린을 넘는다. 귓바퀴를 감돈다. 가만히 스며든다. 온몸이 묵직하게 울린다. 마지막 10분. 청자를 압도한다. 첫인상을 능가한다. 잘 맺는다. 드문 작품이다.






메타돈과 찾아온


 1966년. 37세 쳇 베이커는 약쟁이다. 이탈리아 감옥이다. 트럼펫에서 거미가 기어 나온다. 빛바랜 천재에 할리우드가 돈을 쓴다. 쳇은 출소한다. 자전 영화 주연을 맡는다. 스타로 빛났던 과거를 연기한다. 흑백으로 연출한다. 무채색 쳇은 왼팔에 헤로인 주사를 놓는다. 상대 배우는 제인이다. 쳇과 함께 촬영한다. 둘은 가까워진다.

침대에 누운 쳇은 제인에게 말한다.


 색채 띤 제인은 쳇을 돕는다. 쳇은 약물중독 치료를 받는다. 메타돈을 복용한다. 메타돈은 아편 유사 약물이다. 오피오이드(Opioid)다. 구조는 삼차원으로 고정된 모르핀과 유사하다. 경구로 복용한다. 소화관을 통해 잘 흡수된다. 생체이용률이 모르핀보다 높다. 모르핀으로 조절이 안 되는 난치성 통증을 완화한다. 아편 수용체(μ, δ, κ) 중 μ 수용체를 활성화한다. 강한 효능제(agonist)라 부른다. 모르핀, 헤로인, 메타돈. 오피오이드 대부분이 μ 수용체에 주작용을 나타낸다. 진통, 도취, 진정, 호흡억제에 관여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양귀비와 아편은 천연마약이다. 모르핀과 코데인은 추출 알칼로이드다. 메타돈은 합성마약이다. 탐닉하기 쉽다. 의존성, 내성, 금단증상을 일으킨다. 흥미롭게도, 메타돈은 오피오이드 중독을 치료한다. 해독 방법 두 가지를 살핀다.

1. 한 번에 완전히 약물을 끊고, 금단증상이 나타나게 내버려 둔다.
2. 약한 마약으로 대체 후 용량을 줄여 약물을 중단한다.


 헤로인 중독자가 1을 고른다. 갑자기 약물 사용을 억제한다. 금단증상이 심하다. 실패 확률이 높다. 2를 택한다. 메타돈으로 대체한다. 메타돈은 반감기가 길다. 24~36시간이다. 다른 오피오이드보다 효과가 오래 지속된다. 내성과 의존성이 완만하다. 부작용이 가볍다. 헤로인 금단 현상을 피하게 한다. 메타돈 투약 첫날은 소량만 사용한다. 천천히 증량(titration)한다. 금단증상을 24시간 막는 용량까지 올린다. 유지한다. 몇 주에 걸쳐 감량(tapering)한다. 오피오이드를 끊는다.


 옛말대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마약에는 마약이다. 메타돈뿐 아니다. 부프레노르핀(Buprenorphine)도 마찬가지다. 아편 수용체에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μ 수용체를 일부 활성화한다. 부분 효능제(partial agonist)다. δ, κ 수용체는 억제한다. 메타돈과 마찬가지로 반감기가 길다. 오피오이드 의존 치료 목적으로 FDA 승인되었다.



이어지는 1과 0


 아편 수용체에 무엇도 붙지 않은 상태를 0이라 하자. 내인성 물질이 수용체에 결합한다. 반응을 전달한다. 값을 1이라 둔다. 약물은 수용체에 결합하여 생체 내 반응을 유도한다. 효능제 메타돈이 작용한다. 수용체가 활성화된다. 1만큼 반응을 전달한다. 부분 효능제 부프레노르핀이 결합한다. 신호를 0.5 정도만 전달한다. 길항제(antagonist)가 작용하면 어떻게 될까. 수용체 활성에 변화가 없다. 0이다. -1이 아님에 유의한다. -값을 전달하는 약물은 따로 칭한다. 역 효능제(inverse agonist)다.


 해독을 위해 헤로인 1을 메타돈 1로 대체한다. 약물을 끊는다. 끝이 아니다. 재발을 막아야 한다.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다. 0이 이어진다. 날트렉손(Naltrexone)은 재활에 쓰인다. 아편 수용체 길항제다. 모르핀 질소에 치환기가 붙은 구조다. 큰 치환기는 약물이 작용하는 방식을 바꾼다. 마약성 진통제 효능이 사라진다. 오피오이드 효과를 차단한다. 의존 중인 환자는 조심한다. 허우적댈 때는 위험하다. 금단증상이 날카롭고 격렬하다. 완전히 해독한 후 투여한다.



녹슨 트럼펫


 자본은 쳇을 감옥에서 끌어낸다. 할리우드라는 이름표를 단다. 트럼펫을 쥐게 한다. 구원은 못 된다. 구원의 주체는 자본이 아니다. 신(神) 따위 형이상이 아니다. 낮은 곳에 놓인 육체다. 곁에서 곁을 내준 자다. 메타돈과 찾아온 제인이다. 영화 속 허상이다. 세상을 살다 간 쳇 베이커에게 '제인'은 없었다. 감독은 내용을 각색했다. 오아시스를 창조했다. 천재는 부평초처럼 떠다닌다. 신기루를 만난다. 뿌리를 내린다. 지금에 머물 근거를 찾는다.


 제인은 치료 기간 쳇과 함께한다. 쳇은 트럼펫을 바로 본다. 헤로인으로 점철된 삶이다. 금속 위 청동색 먼지가 소복하다. 어디에 푸른 녹이 슬었을지 모른다. 상관없다. 제인은 쳇이 트럼펫을 불게 만든다. 남자는 연주한다. 여자 삶은 간과한다. 뮤즈는 언제까지나 예술가 곁에 가만할 수 없다. 밥벌이를 겸한다. 일상을 영위한다. 배우로서 무대를 찾는다. 오디션을 본다. 성취를 욕망한다. 그리하여, 메타돈과 함께한 쳇은 블루가 아니다. 반짝이지만 빛은 아니다.



블루가 선택한 것


 쳇은 버드랜드 연주를 앞둔다. 경력 최대 기회다. 마지막 동아줄이다. 대기실이다. 쳇은 구토한다. 매니저 딕은 쳇이 긴장한 줄 안다. 아니다. 이틀 전 치료용 메타돈이 동났다. 금단 증세다. 딕은 약을 찾아 나선다. 쳇은 남는다. 눈앞에 헤로인 주사가 보인다. 양초에 불을 붙인다. 딕은 메타돈을 구해 온다. 쳇과 마주한다. 경고한다. 모두 수포가 될지 몰라.


 여태 쳇 눈빛은 몽환을 헤매었다. 각막에 반투명 렌즈를 한 겹 씌운 듯. 슬픈 꿈을 떠도는 모양이었다. 눈을 감고 뜬다. 촛불이 일렁인다. 얼굴 너머 불빛이 깜빡인다. 번짐 없는 푸른 팔각형이다. 선명하고 형형하다. 무대에 선다. 날렵한 파란색 홍채다.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읊조린다. Born to be blue. 쳇은 '블루'를 택한다.






 스타는 흑백사진에서도 청색 빛을 뿜는다. 연인은 옆에서 우울을 품는다. 무대 아래다. 연주를 듣는다. 눈물이 떨어진다. 떠난다. 정정한다. 제인은 쳇을 떠나지 않는다. 쳇은 제인을 떠나보낸다. 누구나 기로에 선다. 선택은 본인 몫이다. 쳇은 이기를 고른다. 1을 바꾸지도, 0을 이어가지도 않는다. 기원한 몰락을 향한다. 블루는 변명이 될까. 딕에게 외친다.

경력 따위 필요 없다니까요!
난 연주가 하고 싶어요. 그게 전부라고요.


 누렇게 바랜 과거는 가루로 퇴적한다. 모래는 해를 받아 다습다. 한 움큼 푼다. 바닷바람이 분다. 황색 알갱이는 흩날린다. 숨을 깊이 분다. 안온한 하루, 속삭일 내일을 멀리 보낸다. 어느덧 사라진다. 파도만 남는다. 나란할 미래가 내쳐진 참담 속, 제인은 오롯이 파묻힌다. 우아한 선율로 푸른 별을 기록한 듯하나, 의외로 퍼진 잔상을 붙잡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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