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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Sep 19. 2021

프로작과 그림자에 대하여

<케빈에 대하여> 속 항우울제

린 램지. 미국, 영국. 2011

1.
'에바'는 소파에 늘어진다. 한쪽 발은 책상 위다. 머리칼이 뻗친다. 손질한 흔적 없이 자랐다. 식탁에 약통을 얹는다. 옆 와인 잔을 집는다. 끄덕이던 발가락 움직임이 잦아든다. 눈을 감은 에바 귓가에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 안 돼. 깨우지 마, 깨우지 마.

2.
책상에 알약이 흩어졌다. 와인 잔이 비었다. 잠결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에바는 잠에서 깬다. 아들 '케빈'이 TV 나온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이다. 화면 속 남자가 입을 뗀다.
— 그러니까 지금 당신들은 날 보고 있는 거야. 내가 말 잘 듣는 범생이로 나왔으면 지금쯤 채널을 돌렸을 것 같지 않아?

3.
케빈은 곧 18세가 된다. 성인 교도소 이송을 앞둔다. 에바가 교도소에 찾아온다. 모자가 마주 본다. 에바가 말한다.
— 지금까지 잘 빠져나왔잖니. 미성년자였고, 약 때문이라고 주장했으니(out of your head on Prozac). 한 2년 있다가 나오겠지.



 분침 끝이 두 번째 원을 완전히 그리기 전이다. 죽은 숨을 간신히 안았다. 검은 배경에 감독 이름이 튀어나왔다. 눈을 감았다. 초록 잔상이 남았다. 연이은 붉은빛 탓이다. 토마토, 잼, 페인트, 통조림. 혈장,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혼합물. 그 액상과 고상. 스러지는 에바에 드리운 붉은빛. 붉음은 빛보다 그림자에 가까웠다. 눈을 감고 고개를 쳐드는 상상을 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다. 어지러운 적(赤). 내가 보는 것은 빛일까 그림자일까.


 에즈라 밀러를 케빈으로 처음 만났다. 1시간 52분은 누군가에 빠지기 충분한 시간이다. 사심을 걷어낸 찬사를 쓸 자신이 없다. 리즈 시절 에즈라 밀러가 부럽다. 거울을 볼 때마다 재미있겠지. 이게 내 얼굴이라니. 24년 지기 친구 봄에게 비말을 튀기며 추천했다. 봄은 영화를 며칠에 걸쳐 다 보았다. 꾸역거렸다. 구역을 참는 표정이었다. 남자 주인공을 향한 찬사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 아들놈 한 대 쥐어박고 싶네. 첫 소감이었다. 봄은 영화에서 에바였다. 그럴 만하다. 봄도 에바도 엄마니까.






살인자의 어머니는 살인자가 아니다


 원제는 <About Kevin>이 아니다. <We Need to Talk About Kevin>이다. '케빈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문장에서 화자는 에바다. 그녀는 소시오패스 아들을 두었다. 케빈, 케빈에 대해 말하는 에바. 영화는 둘을 주로 비춘다. 얼굴은 겹쳐 하나가 된다.


 케빈은 북부 소년 교도소에 수감된다.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아홉을 죽였다. 애 일곱에 어른 둘. 여동생과 아빠도 케빈 손에 죽었다. 정정한다. 적확한 사인은 케빈 손이 아니다. '케빈이 쏜 화살로 인한 과다출혈' 정도가 옳겠다. 활촉은 에바를 향하지 않았다. 살아남은 어미는 꼬리표를 달고 산다. 로빈 후드를 사회에 배출한 중죄다. 범법자에 준하는 시선을 받는다.


 젊은 에바는 유능하고 자유로웠다. 사랑을 좇았다. 이후 벌어질 일은 몰랐다. 알은 채 유전자 절반을 건네긴 어렵다. 상대가 장차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라면 더더욱. 어머니는 태어날 자식에 대한 정보가 없다. 무지의 소산으로 행한 잉태, 출산, 양육을 손가락질한다면 누가 어미 되기 자처할까. 에바는 양육자로서 의무를 다했다. 제 아들을 힘껏 사랑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 한들 에바가 살인자인가?



프로작을 삼킨 로빈 후드


 영화를 끝에서 되감는다. 회색 복도를 걷는 에바. 케빈을 안는 에바. 케빈과 대화하는 에바. 케빈을 마주한 에바. 까까머리 케빈. 주황색 죄수복을 입은 케빈. 영상을 멈춘다. 정방향 재생한다. 복역수와 면회자가 교도소에서 대화한다. 익숙한 단어가 들린다. 프로작.

에바가 케빈에게 말한다.

 에바 입에서 돌멩이가 튀어나왔다. 좌반구에 오래 박혔다. 머릿속이 시끄러웠다. 물음표가 연이었다. 에바는 왜 프로작을 언급했을까? 케빈이 프로작을 복용했을까? 우울증 진단을 받았나? 무엇 때문에? 영화는 케빈과 약물을 한 장면에 비춘 적 없다. 호기심이 게으름을 이겼다. 600쪽 넘는 책을 집었다.


그 앤 유독 프로작을 요구했지.

 원작 문장이다. 파장이 시그러졌다. 학살 직전, 케빈은 우울증을 호소했다. 교내 성추행 사건, 부모 이혼 거론을 빌미로 들었다. 소년은 프로작을 청했다. 재판에서 변호사는 약물 부작용을 거론했다. 케빈은 관대한 형을 받았다. 변호사가 에바에게 말했다. 정말 똑똑한 아들을 두셨더군요, 부인.



세로토닌이 흐르는 강가


 성분명 플루옥세틴(Fluoxetine). 제품명은 다양하다. 프로작, 푸로작캡슐.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 치료제다. 신경성 식욕과항진증, 강박반응성 질환, 월경전 불쾌장애를 낫게 한다. SSRI(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에 속한다.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라 풀어 말한다. 임상에서 공통으로 추천하는 항우울제 계열이다.


 세로토닌은 신경 전달 물질이다. 시냅스 전 뉴런에서 분비된다. 후 뉴런에 작용한다. 통증과 긴장을 완화한다. 기분을 향상한다. 임무를 완수한다. 사라진다. 시냅스 전 뉴런으로 다시 흡수되거나, 가수분해 효소에 의해 분해되는 방식이다. 우울증 환자는 뇌에 세로토닌이 부족한 양상을 띤다. SSRI는 세로토닌 재흡수를 선택적으로 막는다. 세로토닌 농도가 증가한다. 우울 증상이 없는 상태를 지속한다. 최소 8주 뒤 효과를 판단한다. 재발 방지는 다음 일이다.


 우울증 끝자락은 자살이다. 항우울제는 우울로 인한 자살을 막는다. 주의사항을 찾는다. 역설이 드러난다. 항우울제는 극단적 사건에 연루한다. 자살, 살인 같은 문제다. 세로토닌이 넘치는 강. 몸을 던진 미성년이 숱하다. 잔뜩 붙은 우울을 씻을 요량이다. 격한 물살은 피해자를 피의자로 바꾼다. 자신을 해하지 않으려 약을 먹는다. 약을 먹어 누군가를 해한다. 로빈 후드는 강가에 섰다. 소용돌이에 휩쓸린 체했다. 연극은 소용에 닿았다. 항우울제는 소년을 변호했다.



항우울제 그루터기


 우울과 불안은 붙어 다닌다. 진득하다. 항우울제는 우울로 인한 불안을 치료한다. 불안장애 1차 치료제는 SSRI 포함 항우울제다. 충분한 용량을 사용한다. 4~6주 치료한다. 불안장애 초기부터 항불안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신속히 작용하나 의존성이 높다. 중독될지 모른다. 오남용이 우려된다. 항우울제만 가지고 효과가 없을 때, 추가로 단기간 사용한다.


 항우울제 아랫동아리를 본다. 그림자가 질척인다. 다시 역설이다. 항우울제는 불안을 치료하는 동시에 야기한다. 우울에 빠진 사람을 끌어올린다. 흥분과 각성을 유도한다. 형형한 눈빛이 지속된다. 잠 못 드는 밤이 온다. 불안으로 뒤척인다. 항불안제에 손을 뻗는다. 항불안제는 진정제라고도 불린다. 수면제와 자주 묶어 칭한다. 진정수면제라는 용어다. 벤조디아제핀(Benzodiazepine, BZD)계 약물을 포함한다. 가바(GABA) 수용체를 활성화한다. 중추신경을 억제한다. 불안이 줄어든다. 안온을 얻는다. 나른해진다. 졸음이 온다. 빠르게 잠든다. 취침을 유지한다.



그림자는 나무와 닮았다


 약물은 에바와 등장한다. 백색 정제가 널브러진다. 소설 구절이다.

난 매일 밤 먹는 엄청난 양의 신경안정제를 탓했지.
난 항상 수면제를 끊으려고 노력했어.


 에바는 진정수면제를 먹는다. 묘하다. 일련이 한 흐름이다. 프로작을 복용하는 환자가 진정수면제를 처방받는 장면처럼. 익숙한 상황이다. 항우울제를 먹은 아들, 항불안제를 먹는 엄마. 케빈 캇챠두리안과 에바 캇챠두리안. 엄마 성(姓)을 물려받은 아들. 관계는 명징해진다. 케빈과 에바는 서로의 그림자다. 떼려야 뗄 수 없다. 지독히 닮았다.






 케빈에 에바가 있듯, 내게도 봄이 있다. 우리는 케빈에 대해 이야기했다. 견해는 비슷한 듯 달랐다. 나는 '케빈은 에바를 사랑했다.'라고 말했다. 봄은 '케빈은 에바의 사랑을 받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케빈이 에바를 사랑함은 마땅하다며. 아들은 가없이 엄마 눈에 들고 싶었다고. 잉태 순간부터 제 것 아닌 마음을 평생 갈구했단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 엄마 눈에 비친 남 아들은 밉고 가엾은 소년이었다.


 에바는 케빈을 저어했다. 활을 잡기 전부터 염오했다. 케빈은 낙원을 파괴한다. 에바 주변은 돌연 와해된다. 에바가 묻는다. 케빈이 답한다.

이제는 말해줘. 왜 그랬어?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에바는 케빈을 품는다. 비로소 아들을 사랑한다. 많이 잃은 당신이 아래를 본다. 저 닮은 어둠을 발견한다. 늘 곁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림자와 대담한다. 살아남은 사람은 삶을 마저 산다. 붉게 얼룩진 채라도. 누군가 죽어져 이야기를 맺지 않는 점. <케빈에 대하여>를 희극이라 여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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