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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Sep 29. 2021

소라진이 남긴 만년필

<뷰티풀 마인드> 속 항정신병 약물

론 하워드. 미국. 2001

1.
하버드 대학교 전국 수학 학회. 초청 강연이다. 존 내쉬는 단상에 오른다. 리만 가설을 강의한다. 양복 입은 남성을 본다. 직감한다. 소련 특수요원이다. 자신을 죽이러 왔다. 강연을 멈춘다. 도망한다. 실패한다. 정장 입은 남자들에 둘러싸인다. 한 남자는 자신을 소개한다.
— 제 이름은 로젠입니다. 로젠 박사죠. 난 정신과 의사예요.
존은 로젠에 주먹을 날린다. 냅다 달린다. 사지가 붙잡힌다. 존은 버둥거린다. 로젠은 은색 펜을 꺼낸다. 주사를 놓는다. 존이 차분해진다. 차로 이송한다.

2.
존은 정신을 차린다. 의자에 수족이 묶였다. 로젠이 다가온다.
— 이제 걱정할 것 없어요. 소라진(Thorazine)은 깨는 데 시간이 좀 걸려요.

3.
존은 조현병 진단을 받는다. 약물치료와 인슐린 혼수 요법을 병행한다. 아내 알리샤는 존에게 분홍 알약을 준다. 방을 나간다. 존은 서랍을 연다. 금속 통을 꺼낸다. 정제가 여럿 들었다. 두 알을 더한다. 눈에 암호와 숫자가 다시 들어온다.



 중학생이었다. 수학 시간이었다. 시험이 끝난 주였다. 선생님은 영화를 틀어주셨다. 아랑곳없었다. 문제집을 풀었다. 쎈 수학 따위였다. 고개를 슬쩍 들었다. 칠판 옆 TV를 보았다. 침침한 화면이었다. 비바람이 몰아쳤다. 여자는 소리쳤다. 아기는 악썼다. 남자는 입을 뻐끔거렸다. 슬픈 얼굴이었다. 눈썹이 퍽 억울해 보였다. 불안하고 시끄러웠다. 귀마개를 꼈다. 다시 샤프를 놀렸다.


 얼추 자랐다. 대학생이 되었다. 영화를 추천받았다. 수학자 존 내쉬(John F. Nash, 1928~2015) 생애를 담았단다. 초반에 피식거렸다. 전개가 풀어졌다. 명치께가 덜컹거렸다. 관자놀이가 왁자했다. 익숙하게 혼란했다. 폭풍우가 불었다. 깨달았다. 6년 전에 본 영화구나! 지구는 태양을 세 바퀴 돈다. 어린 대학생은 늙은 대학생이 된다. 약물치료학을 배운다. 조현병 단원이다. 팔자 눈썹을 한 남자가 떠오른다. 비를 맞아 이마주름이 더 선명해졌던가. 이제 원통한 입매를 이해한다.






접선은 기운다


 알리샤는 MIT 학생이다. 존을 교수로 접한다. 몹시 더운 날이다. 바깥은 공사로 소란하다. 존은 창을 닫는다. 소음을 차단할 요량이다. 강의실은 찜통이다. 학생들은 익어간다. 알리샤는 창을 연다. 공사 간부들에게 소리친다. 수업 중이니, 이따 재개해 달란다. 남은 시간은 쾌적하다. 소음도 더위도 한풀 꺾인다. 알리샤는 지혜롭다. 혜안은 없었다. 영민과 사랑은 별개다. 괴짜에 빠져든다. 언니 그 남자 만나지 마요. 외침이 목젖까지 차오른다. 속수무책이다.


 그 남자는 두뇌가 기발하다. 천재성이 번뜩인다. 이성은 녹는다. 눈길이 얽힌다. 연인이 된다. 어찌어찌 결혼한다. 존은 소련 암호를 해독한다. 기밀 프로젝트다. 알리샤에게 말하지 못한다. 진땀을 뺀다. 고개를 희뜩거린다. 눈동자를 희번덕댄다. 소련 스파이가 어른거린다. 미행당한다. 살해위협에 시달린다. 반복에 몸서리친다. 손바닥은 흥건하다. 정신은 말라간다. 더불어 살 앞날은 기운다. 하향 곡선이다. 알리샤는 근심한다.



줄을 조율하는 수학자


 과거 병명은 정신분열증이었다. 어감이 편견을 만든다 여겼다. 바꾸었다. 조현병(調絃病). 현악기 줄을 조율한다는 의미다. 약으로 뇌 신경망을 조절한다. 정상 생활을 위한다. 남성은 발병 시기가 여성보다 이르다. 주로 20대 초다. 존도 그즈음 병에 걸렸다. 존과 찰스는 룸메이트였다. 찰스 조카, 마샤도 더불어 보았다. 긴 세월이었다. 찰스와 마샤는 늙지 않았다. 환각에 기인한 우정이었다. 존은 1인실 기숙사에 살았다. 외계에 없는 자극을 감각했다. 조현병 양성증상이다. 양성증상은 질환자에만 나타난다. 정상인은 환각을 느끼지 않는다. 망상도 마찬가지다. 존에게 임무는 없었다. 핍박도 없었다. 흩뜨려진 신경 전달 물질은 서사를 창조한다. 환자는 비현실에 산다. 개념은 와해된다.


 나이를 먹는다. 양성증상이 줄어든다. 음성증상이 두드러진다. 정상인에 당연할 굴곡이 죽는다. 감정 기복과 희로애락이 사라진다. 논리가 없다. 쾌락을 잊는다. 의욕을 잃는다. 씻지 않는다. 먹지 않는다. 대소변을 그 자리에서 본다. 인지증상도 대동소이하다. 주의력이 핍진하다. 기억이 동강 난다. 행동에 따른 결과를 예측 못 한다. 상황에 맞는 언행이 불가하다. 개선할 일이다. 일상을 영위해야 한다. 사회에 복귀해야 한다. 우선은 양성증상 제거다. 리만 가설 초청 강의 날이다. 존은 검은 양복을 본다. 뛴다. 포위된다. 주사를 맞는다. 소라진이다. 성분명 클로르프로마진(Chlorpromazine). 최초의 정신병 치료 약물이다.

로젠 박사는 존에게 말한다.



틀과 뒤틀림


 1950년대다. 항히스타민제를 개발한다. 투여한다. 맥락 없는 효과를 확인한다. 조현병이 개선된다. 정신병 치료에 사용한다. 클로르프로마진이다. 신경이완약(neuroleptic)이다. 정형 혹은 1세대 항정신병 약물이라 부른다. D2 수용체 길항제다. 중뇌 변연계에 작용한다. 시냅스 후 도파민 수용체를 봉쇄한다. 도파민 영향이 감소한다. 양성증상을 완화한다. 다른 도파민 경로에 영향을 미친다. 부작용이 화려롭다. 약물이 중뇌 피질계에 닿는다. 음성증상은 짙어진다. 흑질 선조체까지 미친다. 추체외로 증상(EPS, extrapyramidal symptoms)이 생긴다.


 뇌는 신호를 전달한다. 길을 둘로 나눈다. 추체로와 추체외로다. 추체로는 대뇌피질에서 기인한다. 흔히 아는 신경전달 방식이다. 추체외로는 추체로를 제외한 경로다. 정형 항정신병 약물은 추체외로 부작용이 흔하고 심하다. 약을 먹은 지 3시간 이내다. 입이 쉬이 닫히지 않는다. 혀가 막 튀어나온다. 못 집어넣는다. 급성 근육 긴장 이상증이다. 정좌 불능증도 생긴다. 가만히 앉질 못한다. 점차 파킨슨병을 닮는다. 가만해도 떨린다. 근육은 뻣뻣하다. 느리게 움직인다. 자세가 불안하다. 정교한 동작이 불가하다. 치료 몇 년 후다. 움직임이 멋대로다. 마음 같지 않다. 윗몸이 휘딱한다. 다리가 비틀린다. 무도병처럼 보인다. 지연 운동 이상증이다. 조현병이 나아도 운동 이상은 남는다.


 최근 1세대 약물은 거의 안 쓴다. 2세대 약물을 개발했다. 비정형 항정신병 약물이다. 부작용을 줄이고자 했다. 도파민뿐 아니라 세로토닌 수용체에도 관여한다. 5-HT2A 길항제로 작용한다. 음성증상에 효과를 보인다. EPS 부작용은 줄어든다. 대신 살이 찐다. 피가 엉망이다. 지질과 당이 솟는다. 시선을 돌린다. 얼룩진 욕조를 본다. 틀에 약물명이 어지러이 새겨졌다. 부작용을 그득 담았다. 질척하고 차가운 초록이다. 귀퉁이에 걸터앉는다. 발을 담근다. 몸을 구긴다. 뻐끔거린다. 녹색 겔은 튀어나온다. 몸뚱이만큼 뱉는다. 어떤 구석도 마찬가지다. 사지를 뒤튼다. 그나마 나은 방향으로 웅크린다. 안타깝다. 존은 옴짝달싹 못 한다. 당시는 비정형 항정신병 약물 개발 전이다.



사라진 알약


 정형 항정신병 약물은 결절 누두체에도 작용한다. 프로락틴 혈중농도가 증가한다. 출산 없이 젖을 분비한다. 남성 유방이 커진다. 성욕이 감퇴한다. 성 기능에 장애가 생긴다. 존은 틀에 전신을 누인다. 썩은 풀빛에 고스란히 빠진다. 알리샤와 관계를 거부한다. 알리샤는 욕조 아래 스러진다. 잉여에 매몰된다. 기진한 삶이 온전히 전이된 참담. 먹먹하다. 갑갑하다. 축축하다. 지루하다. 덜미에 이끼가 낀다. 한때 애정이라 부른 목줄이었다. 애는 빠진다. 정마저 퇴색한다. 차츰 기도를 죈다. 긴 굴을 맨발로 걷는다. 살갗이 따갑다. 뺨에 방울이 떨어진다. 핏물인지, 빗물인지, 눈물인지. 광장은 아득하다. 막연히 가상한다. 삐걱댄다. 터덜댄다.


 약은 머리꼭지까지 콘돔을 씌운다. 발아는 단절된다. 존은 염증을 느낀다. 분홍 정제를 숨긴다. 복약순응도가 바닥을 친다. 허다한 일이다. 몇 환자는 병을 인정하지 않는다. 약을 삼키는 척한다. 뺨 사이 머금는다. 몰래 뱉는다. 안 된다. 조현병은 진행성 질환이다. 치료하지 않으면 평생 나빠진다. 불쏘시개 효과다. 완치가 어렵다. 먹여야 한다. 다양한 제형이 개발되었다. 구강붕해정이다. 입에 넣자마자 알약이 부서진다. 물이 필요 없다. 침으로 충분하다. 지속 작용 주사제다. 근육에 주사를 놓는다. 약물 효과를 1~3개월간 유지한다. 다시 시대를 탓한다. 마뜩잖다. 평범한 알약이다. 별 탈 없이 사라진다. 증상은 오롯이 재발한다. 알리샤 흉강에 바람이 분다. 몹시 세차다. 하늘은 큰비를 쏟는다.



만년필의 행방


 지난한 울음이 지난다. 존은 잔뜩 젖는다. 정신을 다잡는다. 왼손에 병, 오른손에 약을 그러쥔다. 놓지 않는다. 함께 걷는다. 리만 가설을 연구한다.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다. 프린스턴 대학교다. 카페테리아다. 학자들은 존에게 만년필을 건넨다. 테이블에 가지런히 놓인다. 수상식 날이다. 존은 알리샤를 바라본다. 연설한다. 당신 덕분에 이 자리에 섰다고. 당신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내 모든 이유는 당신이라고. 영화로운 말미는 영화로 영구하다.


 현실은 꼬리가 길다. 손뼉 칠 때 막을 내리지 않는다. 2015년이다. 존은 아벨상을 받는다. 귀갓길이다. 알리샤와 택시를 탄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동시에 세상을 떠난다. 존은 영예를 남겼다. 만년필이 오른 식탁에 앉았다. 의아하다. 알리샤는 무엇이 남았나. 입을 모아 칭송한다. 숭고한 삶이다. 곁을 지켰다. 죽음마저 함께다. 아름다운 영혼이다. 그뿐이다. 보상을 받았단다. 결과로 과정을 미화한다. 비약이다. 상은 남편이 탔다. 아내 아닌 알리샤에 독립한 언급은 없다. 헌신 후에 헌신짝 안 된 삶이 사랑이라면. 고작 사랑으로 일축한다면. 사랑은 참 편리한 말이다. 쓴 단어다. 못 삼킨다. 퉤. 뱉는다.






모든 성공한 바보 뒤에는 훌륭한 여자가 있다.

 비틀즈, 존 레논이 말했다. 자랑할 성공담은 아니다. 평강공주에게 묻는다. 바보온달 뒤에 서고 싶었나요? 탁자 끄트머리였다. 샤인 머스켓이 놓였다. 병이 기울었다. 잔은 투명했다. 다가온 조명을 여럿으로 쪼갰다. 여자 얼굴이 일렁였다. 푸념이 샜다. 짠내가 섞였다. 똑같이 아등바등 살았다. 24년이었다. 네 아버지는 연차가 쌓였다. 직급이 높아졌다. 학위가 남았다. 나는 뭐냐.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불공평한 게임이다. 너는 나처럼 살지 말아라. 문장은 한숨처럼 쏟아졌다. 아무 대답 못했다. 혀가 비릿했다.


 이룩한 남성은 애썼다. 선연한 고군분투를 폄하할 생각 없다. 기운 운동장이 미울 뿐이다. 여성은 같은 시간 다른 영역에서 싸웠다. 인정받지 못했다. 평강공주에게 딸이 있다면. 딸과 술잔을 부딪는다면. 얼큰하게 취한 채 딸에게 제 인생을 추천할까. 뒤안길에 거룩하라 당부할까. 딸은 알리샤에서 자신을 본다. 엄마를 본다. 엄마의 엄마를 본다. 그래서 그렇게 서럽다. 내가 만년필을 쥔다면. 주저 없이 건네겠다. 알리샤 내쉬 말고, 알리샤에게. 덕분에 눈시울 붉혔다고. 고생 많았다고. 푹 쉬라고. 꽃다발, 아니 펜 다발을 바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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