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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Jan 29. 2022

토 나오는 막대 사탕

<퀸카로 살아남는 법 2> 속 최토제

멜라니 메이론. 미국. 2011

1.
조는 학생이다. 대학 진학을 앞둔다. 노스 쇼어 고등학교로 전학한다. 친구로 애비를 사귄다. 애비는 왕따다. 주동자는 캔디다. 플라스틱이라는 퀸카 무리를 이끈다.

2.
조는 애비를 위한다. 복수를 계획한다. 맨디 생일 파티 날이다. 조와 애비도 파티를 연다. 애비 집은 성황이다. 플라스틱 삼인방은 분노한다. 애비네 파티를 망치려 든다. 배달부를 매수한다. 피자에 구토제(Ipecac)를 뿌린다.

3.
조는 피자 냄새를 맡는다. 이상을 눈치챈다. 다른 식사를 준비한다. 참사를 막는다. 난장판이 벌어질 뻔했다. 닉은 피자를 먹은 유일한 사람이다. 토를 쏟는다. 맨디 드레스는 얼룩진다.     



첫째, 매력적 악역 부재

둘째, 권선징악을 위한 평면적 대치 구도

셋째, 못난 클리셰와 뻔한 전개 양식

넷째, 사건 발생 인과 부족 및 떡밥 불완전 회수

다섯째, 주인공 커플 댄스파티 키스 엔딩 전형성

 영화가 끔찍했던 이유를 다섯으로 추렸다. 여섯 번째 이유를 추가한다. 영화에 약물이 나온다.


 오랜만에 OTT 서비스를 재등록했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을 신나게 감상했다. 후속편을 이어보았다. 생각 없이 쉬고 싶었다. 두 가지 측면에서 실패했다. 우선, 생각을 비우지 못했다. 재미가 없었다. 원인을 분석했다. 다음으로, 쉬지 못했다. 관성은 강했다. 정지했다. 메모했다. 검색했다. 생약학 수업자료를 찾았다. 재생했다. 머리카락을 쥐었다. 잡아당겼다. 소리쳤다.

 ― 영화 편하게 보고 싶어!





먼 나라 하이틴은


 하이틴(high-teen). 성년에 근접한 나이대를 일컫는 콩글리시다. 대략 열일곱에서 열아홉 살 청소년이 범주에 든다. 떠오르는 스냅숏은 너도나도 비슷하다. 핑크 방이다. 화장대 중앙은 거울이 큼직하다. 인화된 사진을 덕지덕지 붙였다. 한 뼘짜리 테니스 스커트를 입는다. 밝은 색감이다. 노랑 또는 분홍이면 합격이다. 가끔 밑위가 짧은 청바지를 고른다. 찢어지고 물빠진 상태여야 한다. 나시는 잔뜩 파였다. 여러 겹 레이어드 한다. 목걸이는 치렁치렁하다. 귀걸이 링은 귀보다 크다. 스텔레토 힐을 신는다. 골반이 중립 상태이면 안 된다. 전반 경사 혹은 후반 경사로 선다. 가슴은 내민다. 턱은 쳐든다. 팔짱을 낀다. 다리를 X자로 교차한다. 걷는다. 규칙적으로 또각댄다. 백인에 찰랑이는 금발이면 금상첨화다.


 2011년 영화다. 고등학교 입학 전이다. 한창 중학교에 다닐 무렵이다. 동양 코흘리개는 책가방을 멘다. 교복 넥타이를 맨다. 성실히 등교한다. 내신 점수 따려 애쓴다. 급식을 먹는다. 멀리 본다. 태평양을 건넌다. 북아메리카 대륙이다. 언니들은 싸운다. 차원 다른 전쟁을 치른다. 육탄전을 넘었다. 약까지 쓴다. 요즘 애들 무섭네, 라는 말은 무색하다. 옛날 애들도 무서웠다.



토근(吐根)을 먹인다


 구토한다. 위산과 담즙(bile)이 올라온다. 입 안에서 쓴맛이 느껴진다. 불쾌감(vile)이 든다. 맨디는 호프에게 묻는다.

 — 호프, 의사에게 받은 약(vile medicine) 남았어?

 — 구토약(Ipecac)? 당연하지.

 미니 드레스를 입은 셋은 모략을 꾸민다. 노란 옷은 파란 옷에 약병을 건넨다. 라벨지는 클로즈업된다.

EASY UPCHUCK
Great Taste • Works Fast
Emesis Accelerator
호프(노란 옷)는 채스티티(파란 옷)에게 구토제를 건넨다.


 바로 토해요, 맛이 좋아요, 효과가 빨라요, 구토 촉진제. 자막은 친절했다. 대화 속 토근(Ipecac)을 구토제로 직역했다. 꼭두서니과(Rubiaceae) 식물 토근(Uragoga ipecacuanha) 뿌리를 사용한 생약(Ipecacuanhae Radix)이다. 주성분은 에메틴(Emetine), 세파엘린(Cephaeline)이다. 닉은 맨디 남자 친구다. 영문을 몰랐다. 한 조각 먹었다. 토근 드레싱을 뿌린 피자였다.



입 속 흙을 뱉는


 에메틴은 위점막을 자극한다. 반사적으로 구토를 일으킨다. 세파엘린은 에메틴보다 강하게 구토를 유발한다. 닉은 구토의 3단계를 몸소 보였다. 1단계, Nausea. 메스껍다는 주관적 느낌이다. 토를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2단계, Retching. 헛구역질한다. 복부 근육이 규칙적으로 수축한다. 실제 구토는 없다. 3단계, Vomiting. 게워낸다. 입을 통해 위장관 내용물을 분출 또는 배출한다. 빨간 원피스는 토를 받아냈다.


 토는 약이 된다. 독을 삼켰을 때 유용하다. 응급 상황이다. 어린이가 실수로 화학물질을 삼켰다. 토근 시럽을 먹인다. 바로 뱉어낸다. 몸에 독극물이 흡수되지 않는다. 토근은 가래 제거에도 쓰인다. 최토성 거담 작용이다. 구토 유발 용량보다 적게 사용한다. 옛날 가정상비약에도 들어갔다. 도버산(Dover's powder)이다. 토근과 아편 배합이다. 열이 끓을 때 먹었다. 땀을 냈다. 체온을 내렸다. 의문이 생겼다. 플라스틱은 왜 구토제를 가지고 있었을까. 가설 셋을 세웠다.



뿌리의 쓸모


 첫째, 피자에 뿌린 용도와 같다. 퀸카 무리는 다른 세력을 견제한다. 마음에 안 들면 괴롭힌다. 뜻을 안 따르면 골탕 먹인다. 토근을 챙겨 다닌다. 토 바다를 만들기 안성맞춤이다. 정황상 영향력 지수가 가장 높다.


 둘째, 과식 후 토할 요량이다. 플라스틱 삼인방은 다이어트를 한다. 낮은 칼로리에 집착하는 작중 설정은 가설을 약하게 뒷받침한다. 섭식 장애 환자는 종종 토근을 오용한다. 신경성 식욕 부진증이다. 음식을 먹는다. 살이 찔까 두렵다. 토근 시럽을 먹는다. 토한다. 체중을 줄이려 한다. 쓸모가 건강하지 못하다.


 셋째, 이질아메바(Entamoeba histolytica)에 감염되었다. 원충은 장내에 기생한다. 조직을 분해한다. 설사를 유발한다. 질병은 개발도상국에서 흔히 발생한다. 위생이 나쁜 탓이다. 토근은 아메바성 이질 설사를 치료한다. 가설 근거 수준은 미비하다. 가능성이 희박하다. 오픈카 타고 등교하는 미국 고등학생이다. 설사 때문에 토근 시럽을 들고 다닐 필요 없다. 메트로니다졸(Metronidazole)이라는 항생제를 쓰면 된다.



플라스틱 막대 사탕


 물을 많이 먹는다. 죽는다. 토근도 그렇다. 다만, 토근은 물보다 위험하다. 다량 복용한다. 위장을 과하게 자극한다. 위염, 위경련, 위궤양을 일으킨다. 설사한다. 쇠약해진다. 근육통이 생긴다. 심하면 심장 근육에 염증이 생긴다. 급성 중독증에 토근 처치가 마냥 좋다고 하기도 어렵다. 토가 멎지 않는다. 해독제까지 토한다. 기면 상태가 지속된다. 증상 진단과 치료에 혼란을 빚는다. 발상에 놀랐다. 파티를 망치려 최토제를 쓰다니. 플라스틱은 선을 넘었다.


 하이틴 영화는 알록달록한 불량식품이다. 캔디류에서 삼대 영양소를 찾지 않는다. 감독 철학, 벅찬 감명, 심금 울리는 진리 따위를 기대하지 않는다. 가볍고, 달콤하고, 예쁘면 그만이다. 다들 아는 클리셰 범벅이다. 적당히 달고 사뿐한 즐길 거리나 눈요깃거리 따위를 얻으면 족하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클래식다웠다. 레이첼 맥아담스는 악역을 맡았다. 끝내주게 사랑스러웠다. 곰살맞은 눈웃음은 개연성이 되었다. 밉다가도 흐뭇했다. 광대가 볼록했다. 후속작은 달랐다. 겉은 번지르르했다. 핥았다. 맛이 안 났다.






 보통날이다. 점 하나가 반짝인다. 포착한다. 확대한다. 살을 붙인다. 피조물을 만든다. 작품이 된다. 작품은 작품에 불과하다. 타인 일상은 흥밋거리 환상이 아니다. 섣부른 재단은 무례다. 미국인이 한국 고등학생 학창을 입시 드라마에 투영하면 난감하다. 성적 경쟁은 실화를 딛고 섰으나, 치열한 틈에도 떡볶이 먹을 짬은 있었다. 마찬가지다. 한국인이 미국 고등학생 일과를 하이틴 영화와 동일시해도 곤란하다. 창작물일 뿐이다. 그래도 그렇지. 두 번째 편은 심했다.


 싸구려 분홍 색소를 썼다. 흰색 무늬는 영 흐렸다. 코를 대었다. 오래된 전분 냄새가 났다. 혀로 가져갔다. 단 것도 짠 것도 아닌 맛이었다. 굴렸다. 빨았다. 맛은 흐려졌다. 머금을수록 침이 떫었다. 입에서 꺼냈다. 전혀 녹지 않았다. 막대 사탕을 닮은 플라스틱이었다. 애비의 성장은 유일하게 성에 찼다. 나머지 부분은 뱉어도 좋겠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 2>는 맛없는 막대를 한 시간 삼십육 분간 물고픈 관객에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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