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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Aug 19. 2021

무지개 끝 마리화나 피우기

<플로리다 프로젝트> 속 대마

션 베이커. 미국. 2017

1.
무니는 6살 소녀다. 플로리다주 디즈니월드 인근 모텔 매직캐슬에 산다. 어느 여름, 근처 모텔 퓨처랜드에 처음 보는 차가 도착한다. 푸른 차다. 무니는 친구들과 차에 침을 뱉는다. 차 주인은 화가 난다. 침 뱉은 아이들을 나무란다. 차 유리창을 닦게 한다. 젠시는 차 주인 손녀다. 처음 본 또래와 함께 차를 닦는다. 할머니는 젠시를 말린다. 무니 엄마 핼리가 말을 건다.
— 놔둬요. 저렇게 어울려야 사교적인 사람이 되죠. 스트레스 심해 보이는데 마리화나(Marijuana) 하나 드려요?

2.
핼리와 무니는 모텔 방을 전전한다. 하루는 젠시네 집에 들른다. 무니와 젠시는 재잘거린다. 핼리는 소파에 기댄 채 젠시 할머니에게 묻는다.
— 이제 잘 거니까 밖에서 마리화나 한 대 피워도 돼요?

3.
핼리는 머물던 방을 정리한다. 아동국에서 조사가 있을 예정이다. 세탁실에 들른다. 세탁실 근무자에게 마리화나를 피는지 묻는다. 가끔 피운다는 답을 듣는다. 핼리는 가지고 온 봉지를 건넨다. 마리화나가 들어있다.
— 선물이 있어요. 혼자 피워야 해요. 전부 다. 대신 즐겨 줘요.
— 고마워, 이봐. 걱정 마, 잘 될 거야.
세탁실 여자는 핼리를 안아준다.



 플로리다주 디즈니월드 근처다. 엄마와 딸은 모텔촌에 산다. 하늘은 청명하다. 낮게 내린 구름은 동화를 연상한다. 연보랏빛 건물이 펼쳐진다. 아이들이 뛰논다. 현실을 살기도 벅찬 세상이다. 지독함을 지독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삶에 예술이 왜 필요한지 알려준다.


 핼리는 20대 미혼모다. 6살 딸 무니가 있다. 장면은 주로 무니 시선을 따른다. 아이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자연스레 담긴다. 무니에게 가난은 그늘 속 어둠이 아니다. 눈이 시릴 푸르름이 아니다. 앳된 노랑만큼 마냥 천진하지 않다. 구름 너머 빛줄기처럼 찬란하지 않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색, 차가운 듯 따뜻한 색. 무니 눈에 비친 가난은 보랏빛이다. 영화 덕에 생에 처음으로 보라색을 제대로 보았다.






무지개가 뜨는 곳


 모텔 너머 무지개가 떠 있다. 무니와 젠시는 이야기한다.

무지개 끝엔 황금이 있대.
근데 황금 옆에 난쟁이 요정이 있어서 못 가져가게 한대. 착한 요정이면 정말 좋겠다.

 무지개는 빛과 물방울로 만들어진다. 빛이 물방울에 두 번 굴절되고 한 번 반사된 결과다. 빛 현상일 뿐인 무지개는 어딘가 환상과 닮았다. 끝을 상상하고 황금을 꿈꾸게 한다. 다가갈 수도, 만질 수도, 가질 수도 없다. 바라만 보는 존재다. 무니는 무지개가 뜨는 곳에 산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장소'가 눈앞에 있다. 닿지 않는다.


 무지개가 뜨는 모텔촌은 '플로리다 프로젝트'로 생겼다. 무니가 사는 매직캐슬, 젠시가 사는 퓨처랜드 같은 건물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디즈니사 사업명이다. 디즈니사는 1965년 플로리다주 땅을 매입했다. 디즈니월드를 건설했다. 완공 후 고속도로 건너편에 모텔이 들어섰다. 마법의 성을 흉내 낸 모양새였다. 관광객을 받으려 했다. 모여든 사람은 의도와 달랐다. 히든 홈리스(hidden homeless)가 대다수였다. 홈리스는 주 단위로 단기 숙박 시설을 전전했다. 모텔을 주거용으로 사용했다. 개발정책으로 시작했던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홈리스 주거 마련 정책이 되었다.



마리화나를 피우는 엄마


 핼리가 마리화나를 흡연하는 연출은 없다. 대화와 제스처로 추측할 따름이다. 핼리는 젠시 할머니에게 마리화나를 권한다. 본인이 피우고 싶다고도 한다. 아동국 조사 전, 핼리는 갖고 있던 마리화나를 처분한다. 비닐봉지 안에 든 초록 풀 뭉치다. 브리아 비나이테(핼리 역)는 캐스팅 전 패션 디자이너였다. 마리화나를 테마로 의상을 디자인했다. 대퇴이두근 상부 마리화나 타투가 눈에 띈다.

세탁실 근무자는 핼리에게 마리화나를 받는다.


 마리화나는 대마초(Cannabis Herba)의 다른 이름이다. 삼(Cannabis sativa)이라는 식물에서 기원한다. 삼은 마 또는 대마라고 불린다. 대마는 진정제와 흥분제로 동시에 작용한다. 진정 효과는 불안과 긴장을 완화한다. 깊은 수면을 이루게 한다. 흥분 효과는 행복감을 솟게 한다.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말이 많아지기도 한다.


 대부분 약물은 진정 혹은 각성, 둘 중 한 가지 성격만 갖는다. 대마는 상반된 성격이 섞여 있다. 카나비노이드(Cannabinoids)라는 화합물 덕이다. 카나비노이드는 카나비노이드 수용체(CB1, CB2)를 활성화한다. 신체 반응을 이끈다. 여러 종류가 있다. THC(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가 유명하다. 대마 향정신성 작용 주성분이다.



멀리서 보면 나쁜


 대마는 약효가 긴 편이다. 약물 재분포(redistribution)로 설명한다. THC는 지용성이 높은 물질이다. 혈액에서 지방조직으로 잘 넘어간다. 조직과 기관은 약물 저장고 역할을 한다. THC가 축적된다. 시간이 지나 THC는 다시 혈액으로 방출된다. 일부는 뇌로 들어간다. 신경계에 지속적인 영향을 준다. 흡연 2~3주 뒤에 신체검사를 해도 대마 성분이 검출된다.


 다만 대마는 목숨을 위협하지 않는다. 대마 흡연이 사망 원인으로 보고된 경우는 거의 없다. THC는 인간에서 명확한 치사량이 밝혀지지 않았다. 직접 심장박동을 교란하거나 호흡을 억제하지 않는 까닭이다. 담배 800개비 분량으로 대마잎을 흡연하면 죽을 수는 있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다. 카나비노이드는 사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언론은 나쁜 대마를 보도한다. 연예인 대마초 흡연은 포털사이트 메인을 장식한다. 대한민국 법률 상 대마는 '마약류'에 속한다. 대마는 '마약과의 전쟁'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1971년 미국 닉슨 행정부가 실시한 정책이다. 닉슨 행정부는 특정 인종과 계층을 탄압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이었다. 반정치 세력이 애용하는 약물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대마는 히피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미국 주도 하에, 대마는 세계가 규제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까이서 보면 슬픈


 멀리서 본 대마는 불법 기호품이다. 가까이서 보면 다르다. 대마는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의료용으로 쓰인다. 2018년 3월, 대한민국은 치료를 위한 대마 사용을 허가했다. 에피디올렉스(Epidiolex)가 대표적이다. 영국 제약회사는 대마 성분을 이용해 에피디올렉스를 만들었다. CBD(칸나비디올)가 주성분이다. CBD는 THC와 마찬가지로 카나비노이드 중 하나다.


 에피디올렉스는 소아 뇌전증 치료제다. 뇌전증은 만성적 뇌 기능 장애다. 예견 없이 나타나는 재발성 발작이 특징이다. 옛날에 간질이라 불렀다. 에피디올렉스는 적용대상이 드물다. 적절한 대체의약품은 없다. 희귀의약품이다. 한 병에 100mL가 들었다. 165만 원 상당이다. 1년 약값은 3,000만 원을 넘는다. 의료용 대마가 독점화된 결과다. 대마에 달린 주홍글씨는 특정 집단에 이윤을 불렀다. 폭리가 취해졌다. 희귀병에 걸린 소수는 피해를 보았다.*


 '한국 의료 대마 운동 본부'는 그림자를 꼬집는다. 의료용 대마 사용 확장을 촉구한다. 우리나라가 뇌전증 치료제를 자체적으로 만들길 원한다. 대마는 한반도 곳곳에서 재배할 수 있다. 잘 자란다. 대마 기름을 뽑아내면 약이 만들어진다. 참기름 짜듯 쉽다.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약값은 떨어질 것이다. 아직 갑론을박이 많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바람은 반향을 머금고 계속 불어, 얼룩진 이름표를 잔뜩 흔들 날이 오리라. 비록 떨어뜨리지 못할지라도.



방관자가 마주한 경계


 사회 문제에서 우리는 다양한 위치에 선다. 때로 당사자로, 자주 방관자로 상황을 맞닥뜨린다. 희귀 질환에 있어 다수는 방관자다. 소아 뇌전증에 대마가 쓰인다 한들, '내' 발등 불은 아니다. 약값이 얼마건, '내' 알바 아니다. '내'가 아는 대마는 나쁘다. 함부로 규제를 풀면 안 된다. '나'에게 해악을 끼칠까 두렵다. 타인은 지원과 규제를 '내' 입장에서 논한다. 홈리스, 미혼모, 성매매 문제도 마찬가지다. 다수는 소수에 손쉽게 그늘을 드리운다.


 멀리서 보면 나쁘고 가까이서 보면 슬픈 것. 스핑크스가 낼 법한 수수께끼다. 답은 두 가지다. 대마, 그리고 핼리. 멀리서 본 핼리는 홈리스다. 어린 미혼모다. 경제적으로 무능하다. 돈을 벌기 위해 성매매를 한다. 이웃 눈에 핼리는 '엄마 실격'이다. 무니를 양육하기 부적합한 사람이다. 단면으로 재단한 선악이다. 먼발치에서 판단한 나쁨을 불편히 여긴다. 께름칙한 마음을 정부에 전가한다. 아동국에 신고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모녀를 떼어놓는다. 무니를 위탁가정에 보내려 한다. 최선이라 변명한다.


 이웃과 정부는 경계 너머에 있다. 저만치 선 존재다. 알량한 동정을 던질 자격이 없다. 손은 가까이서 내밀어야 닿는다. 객석은 경계 내부에 위치한다. 관객은 선을 넘어 핼리를 본다. 엄마와 딸에 공명한다. 무니가 아동국 사람을 피해 달음질할 때다. 함께 발을 구른다. 초조해한다. 무니는 어쩔 줄 몰라하며 울음을 터뜨린다. 눈물은 선 안에서 흐른다. 가까이 자리한 방관자는 흠뻑 젖는다.






 핼리는 좋은 엄마가 아닐지 모른다. 무니에게 중요치 않은 사실이다. 핼리는 무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핼리가 무니를 바라보는 눈빛에, 올라가는 입꼬리에, 접히는 양 뺨에, 찡긋거리는 콧잔등에 사랑이 없다면 거짓이다. 작은 손을 맞잡은 어린 손을 본다. 폐부가 뻐근하게 저린다.


 무니는 젠시와 잼 발린 빵을 먹는다. 무니가 나무를 보며 하는 말이다.

내가 왜 이 나무를 제일 좋아하는지 알아?
쓰러졌는데도 계속 자라서.

 무니는 자랄 것이다. 어른이 될 것이다. 다 자란 무니는 또 다른 핼리가, 쓰러진 나무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떤가. 계속 자랄 줄 알면 되었다. 오랫동안 방관자로 살았다. 경계 너머에서 어물쩡거렸다. 이제는 선을 넘고 싶다. 그늘 드린 나무에 다가가고 싶다. 빛과 물방울을 쥐어주고 싶다. 조금 더 자라 보자며, 함부로 응원하고 싶다.




* 초고를 작성한 2021년 2월 15일 기준. 에피디올렉스는 2021년 4월 1일에 급여 등재되었다. 병당 11만 원 상당. 보험 적용으로 약가가 약 93% 감소했다. 세상은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무책임한 희망에 근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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