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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Aug 09. 2021

퀴닌은 팬데믹과 무슨 연인지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 속 항원충제

디에터 베르너.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 2016

1.
1918년 가을, 비엔나에 스페인 독감이 돌았다. 에곤과 아내 에디트가 감염되었다. 발열과 기침이 뚜렷하다. 여동생 게르티와 의사는 마스크를 착용한다. 의사는 통증 경감을 위해 모르핀을 투여한다.

2.
흉부 압박, 식초 찜질, 독한 술을 잔뜩 넣은 차. 대증요법은 효과가 작다. 게르티는 열을 더 빠르게 내리는 방법을 강구한다. 의사가 답한다.
— 퀴닌(Quinine)이 있지만 요샌 구할 수가 없어요. 암시장이면 모를까.

3.
게르티는 다이아몬드를 구한다. 퀴닌과 맞바꿀 패물이다. 암시장에 간다. 퀴닌을 구한다. 집으로 돌아온다. 이미 숨을 거둔 에곤은 게르티를 맞이한다.



 미술관을 좋아한다. 말을 얹을 필요 없는 공간이다. 고요 속에 감정이 몰아친다. 복잡다단한 기분이 든다. 언어와 마음은 별개임을 느낀다. 2017년 1월 뉴욕 MoMA에서 본 모네 '수련' 연작이 그러했다. 세 벽면에 연못이 가득했다. 중앙에 흰 의자가 있었다. 걸터앉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은 자체로 작품이고 예술이다. 전시실을 한가로이 걸어 다니다, 부은 다리를 끌고 앉은 곳에서, 눈앞을 가득 채우는 유화를 볼 때와 흡사하다. 흉곽이 따뜻하게 채워진다. 계몽이나 교훈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애써 의미를 찾을 필요 없다.


 영화는 에곤과 뮤즈 넷을 담는다. 에곤 쉴레(Egon Schiele, 1890~1918)는 오스트리아 출신 천재 화가다. 아름다운 남성 예술가로 등장한다. 뭇 여성 마음을 호린다. 노아 자베드라(에곤 쉴레 역) 배우 마스크가 출중하다. 주인공이 흘리는 매력에 일조한다. 발리 노이질 보조개에 빠졌다. 에곤 모델이었다. 붉은 기 도는 머리는 화폭에 담긴다. 유화 질감 화면은 잔잔한 배경음과 어우러진다.






천재를 삼킨 스페인 독감


 게르티는 에곤 집을 찾는다. 앓는 오빠를 간병한다. 에곤과 부인은 스페인 독감에 걸렸다. 스페인 독감은 팬데믹(pandemic)이었다. 세계를 강타했다. 크게 1차와 2차로 나뉜다. 봄에 1차가, 가을과 겨울에 걸쳐 2차가 유행했다. 작중 배경은 가을이다. 에곤은 2차 유행 감염으로 보인다.


 스페인 독감 2차 유행은 대재앙이었다. 20~30대 사망률이 유독 높았다.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으로 설명한다. 사이토카인은 면역 반응에 관여하는 단백질이다. 인체가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면역세포는 사이토카인을 분비한다. 분비량이 과다하면 문제가 생긴다. 감염 세포뿐 아니라 정상세포까지 사멸한다. 면역력 높은 젊은 층에서 주로 나타난다. 에곤은 28세에 사망했다. 사이토카인 폭풍을 겪었을 가능성이 있다.


 스페인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A(H1N1)가 원인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20세기에 팬데믹을 크게 세 번 일으켰다. 1918년 스페인 독감, 1957년 아시아 독감(H2N2), 1968년 홍콩 독감(H3N2). 21세기에 접어들었다. 바이러스는 강해져서 돌아왔다. 스페인 독감 때 유행한 H1N1은 변이를 일으켰다. 조류 및 인간 유래 바이러스가 돼지에 전파되었다. 돼지는 혼합용기나 마찬가지였다. 여러 바이러스가 섞였다. 새로운 형태를 가진 바이러스가 생겨났다. 2009년이 시작이다. 신종플루로 다시 유행했다.



이것은 인플루엔자 치료제가 아니다


 학기 중 신종플루가 한창이었다. 결석한 지인 후일담을 들었다.

열과 기침이 심했다. 온몸을 망치로 맞은 듯 아팠다. 병원에 갔다. 신종플루를 진단받았다. 타미플루를 처방받았다. 복용 후 깊게 한숨 잤다. 하루 만에 나았다. 안타까운 일이 생겼다. 전염병 환자인지라 1주일간 등교가 불가했다. 1일 앓은 덕에 6일을 잘 쉬었다.


 신종플루는 낫는 병이다. 타미플루(Tamiflu, 성분명 Oseltamivir)를 복용한다. 리렌자(Relenza, 성분명 Zanamivir)를 호흡기에 분무하기도 한다. 두 약은 바이러스가 숙주세포를 못 빠져나가게 막는다.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한다. 인플루엔자는 스쳐 지나가는 존재가 되었다. 과거는 달랐다. 항바이러스제 개발 역사는 오래지 않았다. 에곤이 살았던 시대는 치료제가 없었다. 병에 걸리면 고열에 시달렸다. 근육통이 심했다. 폐렴을 앓았다. 목숨을 잃었다. 바이러스를 죽일 방도가 없으니, 빠른 해열이 관건이었다. 사람들은 퀴닌을 찾았다.

암시장 상인은 게르티에게 퀴닌을 건넨다.



퀴닌의 초상


 퀴닌은 최초의 말라리아 치료제다. 말라리아는 급성 열성 전염병이다. 열원충(Plasmodium) 속 원충 감염으로 발생한다. 모기를 매개로 전파된다. 말라리아 원충에 감염된 모기가 사람을 문다. 원충이 체내에 주입된다. 혈류를 통해 간에 들어간다. 분열한다. 적혈구에 침범한다. 증식한다. 적혈구를 터뜨리고 나온다. 발열 물질이 방출된다. 주기적으로 열이 치솟는다.


 퀴닌 작용기전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말라리아 원충 헴(heme) 대사를 억제한다고 추정한다. 헴은 철 이온을 유리한다. 철 이온은 산소와 반응하여 독성을 일으킨다. 원충은 헴을 헤모조인(hemozoin)으로 대사 한다. 무독화시킨다. 퀴닌은 헤모조인 생성을 억제한다. 헴이 축적된다. 산소 독성에 노출된다. 원충은 사멸한다.


 퀴닌 구조는 요긴했다. 약물 모체가 되었다. 퀴놀린(Quinoline)계 항원충제 개발이 이어졌다. 클로로퀸(Chloroquine)이 잘 알려졌다. 염소(Cl)를 포함한 구조다. 퀴닌 자리를 대체했다. 값이 저렴한 덕이다. 선물도 남겼다. 클로로퀸 합성 부산물에서 세균을 죽이는 물질이 발견됐다. 날리딕스산(Nalidixic acid)이다. 퀴놀론(Quinolone)계 항생제 시초다. 요로감염증 치료에 썼다. 날리딕스산 구조에 플루오르(F)를 도입했다. 항균 범위가 넓어졌다. 플루오로퀴놀론(Fluoroquinolone)계 항생제 시대가 열렸다.



이것은 코로나19 치료제가 아니다


 퀴닌은 물꼬를 텄다. 원충과 세균에 작별을 고했다. 기나나무(Cinchona succirubra)에 감사할 따름이다. 기나나무는 남미에서 전통 해열제로 쓰인 식물이다. 줄기 껍질을 키나피(Cinchonae Cortex)라 부른다. 키나피 주성분은 퀴닌이다. 게르티는 퀴닌을 구하려 애쓴다. 암시장에서 거래하는 약물로 그려진다. 다이아몬드와 맞바꿀 정도로 귀했다.


 최근 기나나무는 몸살을 앓았다. 껍질을 뜯겼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Hydroxychloroquine)이 코로나19 치료제로 떠오른 까닭이다. 클로로퀸에 하이드록시기(-OH)가 붙은 구조다. 약 염기성 물질이다. 세포막을 쉽게 통과한다. 세포 내 소기관 엔도좀(endosome)과 리소좀(lysosome) pH를 올린다. 코로나19 바이러스(SARS-CoV-2)가 숙주 세포막에 융합하는 과정을 막는다. 바이러스가 방출되지 못한다.


 퀴닌 유도체는 유명세를 치렀다. 기나나무에서 퀴닌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사람이 생겼다. 토닉워터를 찾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퀴닌이 개미 눈곱만큼 든 연유다. 바이러스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임상에서 약효가 없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 감소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를 주지 않았다.*



팬데믹이 그린 그림


 코로나19에 기나나무 품귀라니. 어디서 본 그림이다. 100여 년 전과 비슷하다. 스페인 독감에 퀴닌을 찾는 장면이 겹친다. 퀴닌은 유독 팬데믹을 일으킨 바이러스와 엮였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신종 바이러스가 유행한다.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시점이다. 신약 개발은 시간과 비용을 요한다. 약효가 있는 물질을 발견한다. 끝이 아니다. 약물에서 의약품이 되도록 제형을 만든다. 임상시험을 거친다. 시장 진출은 먼일이다.


 임시방편을 찾았다. 기존 약을 신종 바이러스에 사용했다. 무려 원충에 쓰는 제제마저. 보완책은 대안이 못 되었다. 요란한 긴급 재난 문자에 익숙해졌다. 바이러스가 바꾼 삶 속 몇 년을 보냈다. 지구인은 마치 저밖에 없는 듯 굴었다. 호되게 당했다. 팬데믹은 경각심을 주었다. 작은 존재를 인지하라고, 지구 상에 인간만 살지 않는다고, 정신 차리라고.






 인류 역사는 미생물과 고군분투하며 나아왔다. 영화 속 스페인 독감은 에곤을 삼켰다. 지금 우리는 타미플루를 삼킨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본다. 감히 두 가지를 확신한다. 첫째, 코로나19는 나을 병이다. 둘째, 팬데믹은 돌아올 것이다. 유명한 문장을 가져온다. 알베르 카뮈 소설 <페스트> 글귀다.


페스트 간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고, 수십 년간 가구나 옷 속에서 잠들어 있을 수 있어서, 방, 지하실, 짐 가방, 손수건, 폐지 속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가 사람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쥐들을 깨워 그것들을 어느 행복한 도시에서 죽으라고 보낼 날이 분명 오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코로나19가 끝난 환호 속이다. 바이러스는 잠시 웅크릴 테다. 다시 나타날 순간을 위해서. 우리는 또 퀴닌을 찾을지 모른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과거에, 훗날 과거로 비칠 현재에 그랬던 것처럼. 돌아온 팬데믹에는 약학이 더 발전했길, 허둥거리는 시간이 짧아지길, 삼켜진 사람이 줄어들길 희망할 따름이다.




* Effect of Hydroxychloroquine in Hospitalized Patients with Covid-19.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2020;383(21):20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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