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15-0720
약사로 4년간 일하다 기자로 전향했어요.
캉뗑 두피우 <다아아아알리!> 첫 장면이다. 주인공 주디스는 초현실주의 거장 달리 인터뷰를 앞둔다. 카메라 응시하며 자기소개 한다. CGV소풍 9관 K9에 자리한 약사 마음은 술렁인다. 3년 더 일해야 하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한 줄짜리 문제에 골몰하는 나날이다. 속성 해법을 찾은 듯하다가, 답이 존재하긴 하는지 불투명해 의구한다. 여든 넘은 미야자키 하야오도 그대들에게 질문하는데, 계란 한 판 차기 전에 성숙한 결론지을 리 만무하다. 언젠가 모친께 말했다. 인생이 영화와 같다면, 서울 생활 청산하고 본가 귀향해 병원 근무하다 대학원 병행하는 전개가 개연성 높으리라고. 조건과 배경 감안하면 타당하겠다. 약학대학 졸업하고 약사 면허 취득해 대학병원 근무하다 퇴사한 인물의 귀로라면.
간단한 풀이는 납작하다. ‘나’라는 인물의 심리와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획일한 평면이 오답은 아닐지언정, 입체만 한 재미는 없다.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곰곰 되짚은 시작은 나딘 라바키 <가버나움>이다. 대학교 2학년 영화 교양은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섹션 감상을 필수로 들었다. 육 년 치 먼지를 털자 어렴풋이 미소하는 자인이 떠오른다. 포스트잇 윗면 문대듯 빈번히 미끄러진, 영상 매체에 흥미 붙이지 못한 지난날이 뒤집힌다. 접착면이 닿는다. 처음으로 영화가 궁금해졌다.
폭식했다. 질리지 않았다. 약물학을 배우자 보이고 들렸다. 린 램지 <케빈에 대하여>에 푸로작이, 션 베이커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대마가 나오는 식이었다. 서사에 필연이라 여겼다. 함의와 얽히고설킨 약물을 글로 풀었다. 브런치 <약빤극장> 연재했다. 어렸다. 오해하고 미워하며 나아갔다. 쓸쓸해지는 순간이 생겼다. 앎을 그만 쓰고 싶었다. 알아주고 싶었다. 펜을 내렸다. 꼬박꼬박 잠을 삼키듯 감상했다. 스물을 영화제와 익었다. 성실히 도장 찍었다. 네 번 들러 스물네 편 보았다. 조금 구부정하게 자란 뒷모습을 생각한다.
시월은 금목서였다. 마지막은 빅토르 에리세 <클로즈 유어 아이즈>였다. 빗소리에 젖었다. 눈을 감았다. 새벽 숲처럼 느리게 빠지는 썰물. 무도회 끝난 해운대 밤바다는 수평선이 흐리도록 어두웠다. 얼룩덜룩한 백사장은 파도로 구르는 모래 한 톨보다 허망했다. 서울은 목서가 피지 않는다. 흐드러진 단내가 그립다. 숨을 데려가고 싶었다. 기억만 챙겼다. 사유 출처는 영화가 되었다. 시청역 사고 소식을 접하자 팜 티엔 안 <노란 누에고치 껍데기 속> 떠올리며 아릿하게 애도하는 ‘나’가 되었다.
영화는 그림자다. 교수님께서 수업이 끝나면 스스로 영화를 정의할 단어가 생길 것이라 말씀하셨다. 당시는 모호하다. 지금은 그림자다. 나로 기인해 나를 닮지만 나는 아닌 형태. 어둠에서 하나 되고 빛이 비추는 한 영원할 존재. 그림자를 겹치면 더 어두워질까? 예상 별점 0.5 짜리 작품을 감상할, 평점 0.5 짜리 작품을 감상한 가치를 감히 따진다. 준 대로 받으려는 건 욕심, 더 받으려는 건 거래라 읽었다. 욕심과 거래는 불요하다. 영영 미숙할지라도. 취향은 후감과 같다. 향은 주관이다. 잔상 매개하고 심상 촉발하는 유주물이다. 통용할 수 없다. 별점은 별보다 무용하다. 대중도 평론가도 아닌 지평 어딘가. 덩그러니 선다.
공포탄을 듣는다. 안온한 껍질 밖이다. 맨몸으로 피력한다. 오롯이 ‘나’뿐인 시계에 ‘너’의 시선을 얹고 싶다. 어떤 시간도 유의하다는 전제 아래, 무모하리만치 올곧게 나아가고 싶다. 세상은 터무니없이 넓고, 추하면서 아름다운데, 좁히면서 살아가기 싫으니까. 영화를 사랑하냐 질문하면 아직 모른다고 답한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갈 차례다.
240109
1. 준 대로 받으려 하는 건 욕심
2. 더 받으려 하는 건 거래
3. 늙어서 그래 - 내 몸이 내 마음 같지 않아
240110
1. 두 눈이 나한테는 귀야
2. 들리는 모든 순간이 감사하지 않아
3. 나쁜 일이 없는 것이 다행이다
4. 조금 구부정해진 내 뒷모습
240111
1. 들려서 쓸쓸해지는 순간
2. 사랑해서 말하지 못하는 비밀도 있다
3. 하던 짓만 하면 재미없어
240112
1. 그때 우리는 어렸었어
2. 오해하고 미워하면서 살았으니 공평한 거 아냐
3. 그 끝에 뭐가 있던 이번이 내 마지막 사랑이길 바라
240113
1. 엄마 옥 우리 집에 오다
2. 2 차 전지 소재 선별 방법
3. 아는 것 말고 알아주는 것
240114
1. 카페 섬섬 대추생강차
2. 도꼬마리 풀씨처럼 팔랑팔랑
3. 새벽의 숲처럼 느리게 빠지는 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