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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의 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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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Sep 08. 2024

제인과 바다 上

240721-0724

사월 말부터 珍을 짓는다. 월별로 다른 결이다. 시작은 자잘했다. 자투리 일상이 나왔다. 오월은 느슨했다. 얼룩진 감정으로 점철된 나날이 끝났다. 생에 으뜸이라 수사할 정도로 평안했다. 온전한 자유를 처음 누렸다. 물과 풀을 누볐다. 하루하루 푸르게 채색했다. 시가 나왔다. 다시는 그런 글을 짓지 못하리라. 유월은 벅찼다. 여행하며 짧은 글귀를 남겼다. 원석이었다. 일편 날카롭고 여타 둔하다. 칠월은 누추하다. 며칠을 게을리 묵힌다. 뭉텅이 수필이 나온다. 언젠가 소설을 쓰고 싶다. 힘찬 장편을 원한다. SF나 판타지는 자신 없다. 샐러드 같은 이야기가 최선이겠다. 체험을 썰고 섞어 가미한 형태. 예를 들어 —


한 송이 데려갈까. 모퉁이 꽃집을 지나친다. 제인은 궁리한다. 화사하면 좋겠다. 방이 통 칙칙하다. 사은품 포스터가 실내를 긁는다. 기어코 흰 벽에 붙였다. 붉은 꽃 세 점이 자주색 바탕에 시든다. 조나단 글레이저 <존 오브 인터레스트>.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담은 영화다. 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명랑하기 어렵다. 생화 값을 따진다. 통장 잔고를 확인한다. 고개를 젓는다. 페달을 밟는다. 이튿날이다. 수국을 받는다. 한 달 지난 선물이다. 적시에 닿는다.


바다는 조퇴한다. 생일상을 차린다. 손수 작성한 차림표는 근사하다. 허위 메뉴가 곳곳에 숨는다. 곰팡이 핀 크림치즈, 자투리만 남은 명란. 제인은 그마저 귀엽게 여긴다. 둘은 파스타 한 사발을 들이켠다. 제인은 놀리듯 말한다. 토마토소스가 한강만 하다. 파스탕이라 불러도 무난하겠다. 바다는 머쓱히 웃는다. 해동 새우를 뽀득 씹는다. 꼬리까지 삼킨다. 근황을 읊는다. 반 학생이 말썽이다. 자살 소동을 펼친다. 애정 결핍으로 사료된다. 동학년 선생님과 결이 맞지 않다. 함께하면 기운이 쭉 빠진다. 방과 후 교실에서 케이크를 엎었다. 슬랙스에 크림이 미끄덩거렸다. 손에 꼽게 난감한 순간이었다. 제인은 바다를 토닥인다. 슬그머니 감탄한다. 떠난 사이 그런 일이 있었니. 푸르뎅뎅한 조명 아래 친숙한 필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제인은 사색한다. 바다와 말하지 않은 시간만큼 우리는 멀어질 것이다. 꽃대 겹겹이 둘러싼 비닐을 한 꺼풀 벗긴다. 줄기를 반 토막 자른다. 화병에 물을 붓는다.


비가 내린다. 토요일 저녁 홍대입구역 9 번 출구는 한증막이다. 새까만 머리통이 계단에 득시글거린다. 인파가 서로 밀고 밀리며 나아간다. 미꾸라지 같다. 수산시장 시뻘건 대야에 헐떡이는 추어. 제인은 이태원을 떠올린다. 꽝꽝 언 가을. 녹지 않는 마음을. 앞에 바짝 붙어 선 여성은 퍼슬퍼슬한 탈색모를 흔들며 옆 일행에게 말한다. 압사당하는 것 아냐? 제인은 속으로 대답한다. 안 되는데. 아직 죽기 아까운데. 마지막으로 싸지른 글이 유작이면 부끄러워 이승 뜨지 못하겠다. 그저 그런 작가로 남고 싶지 않다. 더 나은 글을 써낼 때까지 살아야겠다. 억척스레 다짐한다. 땀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240115
1. 녹지 않는 마음이 있다
2. 소리 없이 마음에 금이 그어졌을 때
3. 동파되어 얼어 터진 수도관
4. 우리네 슬픔을 간파하는 힘
240115
1. 해! 사랑…… - 웰컴 투 삼달리
2. 시시껍절한 것이 아닌 깊이깊이 새겨야 할
3. 정 모 소천하다 망자에게 평안을 주소서
240117
1.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2. 사실관계에 대한 추궁
3. 저만치 혼자서
4. 하찮고 사소한 것들
5. 날마다 부딪히는 것들
240118
1. 마음 한 편에 눅진하게 들러붙은 불안
2. 눈물이 질금질금 배어 나오는 눈
3. 잘 됐음 좋겠다
4. 다 괜찮지, 괜찮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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