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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의 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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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Sep 09. 2024

제인과 바다 下

240725-0728

출렁이는 등불은 보랏빛이다. 바다는 눈앞이 <꿈의 제인> 포스터 같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본 적 없지만 어스름한 빛을 안다. 한 청년은 웃통을 깐다. 티셔츠를 고이 접는다. 바지춤에 끼운다. 바다에게 성큼 다가온다. 상체를 기울인다. 흉통을 가리킨다. 만져 봐요. 귓가에 대고 외친다. 바다는 파르르 웃는다. 어깨를 살짝 친다. 오랜만에 닿은 맨살은 기대보다 차갑다. 나이가 몇이냐 묻자 마디가 불거진 손가락을 꼬물꼬물 접는다. 왼손으로 엄지 중지 펼친다. 오른손은 주먹 쥔다. 스물이다.


담배 연기가 뻑뻑하다. 끈적한 살덩이가 스친다. 뻔한 선곡이 요란하다. 몸통이 웅웅 울린다. 바닥은 싸구려 술로 미끄럽다. 바다는 춤춘다. 혐오 가득한 공간에서 머리 흔들고 엉덩이 튕긴다. 숙맥으로 알던 바다가 숫기 넘치자 제인은 내심 놀란다. 움직임에 재능 없어 박자 맞춰 콩콩 뛴다. 옆 테이블은 휴지를 공중에 흩뿌린다. 소란한 와중에 속이 울렁인다. 대뇌 구석 눅진하게 들러붙은 불안. 날마다 부딪히는 하찮고 사소한 시름. 소리 없이 금이 그어진다. 눈물이 질금질금 배어 나온다.


한동안 글밥을 굶었다. 변비 걸린 강아지 같았다. 끙끙 앓았다. 제인은 못 썼다. 이제 안 찍는다. 폭발하듯 여행한 지난달. 쏟아지는 볕을 욕심껏 퍼 올렸다. 사진첩은 화랑이었다. 귀국했다. 뚝 끊겼다. 고의로 자른 밧줄만큼 깔끔한 단면이다. 초라한 일상을 담기 싫다. 고운 피사체만 남기고 싶다. 촬영하지 않으면 무의미한 축제인가? 출사 의의 의문한다. 기록은 기억을 변호하지 않는다. 보조할 뿐이다. 레테 강물 마신 악동은 자꾸만 망각에 몸을 적신다. 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꾸준히 흐르니까. 과거에 살지 않겠다. 간신히 한 장 건진다. 거멓게 시든다. 하늘로 기억한 수국은 연분홍이다. 잘 되면 좋겠다.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 매미가 방충망에 매달린다. 울어 재낀다. 우렁차다. 손가락으로 한 번 튕긴다. 날아간다. 초파리가 알짱거린다. 반려 곤충이라 여긴다. 손을 대충 휘젓는다. 팔 일치 글감을 얼기설기 마무리한다. 이 글이 유작이면 제인보다 쪽팔리겠다. 하긴. 함부로 마지막이 붙으면 무엇도 떳떳하지 못하겠다. 밀란 쿤데라를 감히 부러워한다. 거장의 완결을. 부족한 글쟁이는 일단 창을 활짝 연다. 악착같이 숨을 쉰다. 그리고 도돌이표. 잘 되면 좋겠다.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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