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11
좋은 날은 짧아서 좋다는 말
눈물을 땅에 심고 돌아온 우주는
모두를 가질 수 있고 무엇도 갖고 싶지 않았고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아무도 되고 싶지 않았고
슬픔은 아름답고 잔꽃은 고귀하여
몸부림친다 오래도록 품은 불씨로
그는 말했다. 꿈을 정하면 뜻이 갇히니 결국 살게 하는 건 희망이라고. 당신은 좋아한댔다. 시 쓰고 사진 찍는 노동운동가를. 소포를 받았다. 발신인은 알라딘이었고 근래 책을 주문한 기억은 없었다. 회식을 마친 밤이었다. 문 앞에 상자가 달랑 놓였다. 눈물 꽃 소년. 박노해 시인 첫 자전수필. 민트 표지와 핑크 띠지 조합이 촌스럽고 귀여웠다. 당신이 부친 선물이었다. 송부 근거는 다음과 같았다.
1. 박노해 시인을 좋아함. 운동권의 역사 같은 인물
2. 시만 쓰는 줄 알았는데 수필집을 냈다는 광고를 봄
3. 네 나이 또래는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알면 좋은 사람
4. 책 표지와 색이 맘에 듦
5. 제목 속에 작가의 유년이 들어있는 것 같음
탄탄한 논리 구조에 납득하고 감동받았다. 읽던 시집을 덮으면 펼치려 쟁였다. 올해 생일부터 편지 생략할 참이었다. 바빴다거나, 성의 잃은 이유가 아니다. 무엇을 수사하지 않아도 괜찮아진 까닭이다. 그만 써도 무감할 것 같아서. 그럼에도 굳이 만년필을 꺼내든 것은, 필체 마주하면 기쁠 테니까. 일 년에 한 번 자신을 위해 손 편지 쓸 누군가를 알고 살아가면 든든할 테니까. 웃을까. 울어도 괜찮다. 닦으면 되니까.
240309 혜
240307
1. 슬픔은 아름답고 작은 것들이 고귀한지 묻거든 박노해의 詩를 권한다.
2. 박노해, 눈물꽃 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