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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의 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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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Oct 01. 2024

어항 속에서

240912

발레 수업이다. 끝내주는 수강생을 본다. 전공생으로 착각한다. 거울에 비친 실루엣이 판이하다. 피지컬부터 압살한다. 사지가 길쭉하다. 선이 곱다. 감탄이 난다. 콧구멍을 벌렁거린다. 원빈 촬영하는 봉준호 감독처럼. 노트북 앞에 앉는다. 몸이 굽는다. 요가 매트를 편다. 폼롤러를 돌린다. 머리를 굴린다. 한때 연두였던 머리칼을 그리워한다. 사계 갈마들어 갈색으로 변한 이파리를 그린다. 여전히 새순 같은 당신을 떠올린다. 자질구레한 일상을 나열한다. 백스페이스키를 두드린다. 궁리한다.


귀를 원하는 세상이야.

어떻게 생각해.


모두가 근원적 갈망처럼, 경청해 줄 상대를 찾는다. 별달리 질문하지 않아도 주절주절, 스스로를 설명하잖아. 약국 들른 할머니는 신이 났다. 고지혈증 약 복용하며 채식 위주 식생활 유지하니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보다 낮아졌다며. 형식상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약사라고 첨언했다. 그래서 이번에 감량하나 보군요, 수치 너무 낮아도 안 좋아요, 콜레스테롤은 세포막 구성하는 주요 성분이거든요. 상담해도 소용없다. 고장 난 라디오처럼, 같은 말을 세 번쯤 반복한다. 뒤편에 환자가 밀린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떠난다.


주저리주저리주저리주저리.


지껄이는 사랑을 본다. 지순한 애정에 취했나. 친구는 진행형 연애사를 동네방네 공개한다. 일기를 일기장에 쓰지 않고. 나라고 다를 바 없다. 하잘것없는 언어를 브런치에 유기하니까. 떠들 사람만 많고, 들을 사람 없는 세상. 표출만 가득하고 수용은 미미하다. 단체로 우주복 입은 모양새다. 어항을 뒤집어쓴 형태 같다. 우렁찬 연설이 유리 안을 왕왕 울린다. 눈앞으로 귀먹은 금붕어가 유유히 헤엄친다.


제발 목소리를 들어줘.

뻐끔뻐끔뻐끔뻐끔.


240308
1. 봄, 나도 한때 연두였던 적이 있구나.
2.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계절이 갈마들며 색이 변했네, 갈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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