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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의 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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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Oct 05. 2024

하루는 바게트처럼

240916

습관은 괴물이다. 선크림을 왼손에 얹는다. 뺨에 찍는다. 여름 지나 손등 나란하자 오른편이 부쩍 그을렸다. 매일은 그런 식이다. 메트로놈처럼 모터 탈탈거리는 선풍기, 종이 긁으며 나지막이 사각거리는 만년필, 창공 부유하는 아무개의 새파란 날갯짓. 하루는 그런 식이다. 삶은 무도회가 아니고 우리는 밤낮없이 춤을 출 수 없기에. 바게트를 썰어야 한다. 밀가루, 소금, 물, 이스트로 만든 바게트를. 아주 느리게 씹는다, 턱주가리 미적미적 움직이며, 철없이, 이렇게. 맨발로 장판 긁으며 끼니 뜯으면 누구도 찾지 않는 글 따위 쓰며 살아도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운동화는 일상에 두고 안경은 이상을 향한다. 엉덩이 뽐내며 파도와 뒹굴던 해변을 떠올린다. 백사장에 배를 깔고 엎드린 백주. 등판은 구수하게 익어갔다. 눈앞은 모래가 가득했다. 낱낱은 알알이 반짝였다. 달빛에 일렁이는 윤슬처럼, 나뭇잎 비껴간 햇살처럼. 빔 벤더스 <퍼펙트 데이즈>도 그랬다. 충일히 영그는 나날에 당신을 겹친다. 이불을 단정히 개키는, 셔츠를 반듯이 다리는, 책등을 가만히 쓸어주는 당신을. 함께 살기 보드라운 당신은 바게트를 닮는다. 규칙적인 담백함을 담는다. 담담하고, 단순하고, 삼삼하고, 심심하고, 여전해도, 가지런한 하루를 꼭꼭 삼킨다.


240312
1. 나는 규칙적인 일상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2. 침착하고 인내심이 강하지 않지만 같이 사는 데 큰 문제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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