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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의 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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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Oct 07. 2024

넌 똑똑한 애니까

240918

넌 똑똑한 애니까,


아니,


난 이기적이고 매정하고 싸가지 없는 썅년이니까,


몸통보다 두꺼운 배낭을 업는다. 승용차는 줄지어 매끈한 등을 빛낸다. 수산시장 고등어 뱃가죽 같다. 아스팔트는 폭양에 아지랑이를 피운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달력은 한가위 탈을 쓴다. 명절은 싫은 날이다. 언제나, 예외 없이. 시골을 간다. 어록을 펼친다. 무조건반사처럼. 묵은 방은 먼지가 주인이었다. 집먼지진드기 알레르기 반응했다. 콧물이 흘렀다. 비강이 헐었다. 그는 말했다. 싫은 마음이 몸으로 나온 거다. 마음가짐을 바꿔라. 논리도, 상식도, 쥐뿔도 없는 소리다. 항원 향한 감정이 항체 반응 관여하면 논문감이겠다. 대뇌가 영근다. 편도체를 죽인다. 공부 업무 핑계한다. 방문을 피한다. 가문 반쪽을 묻는다.


서울 가더니 애가 달라졌다는 말.


느그 아버지는 느그 먹여 살리느라 여태 일한다는 말.


실망은 기대한 대가다. 실낱같은 희망 붙든 한편마저 썩은 양파 씹듯 물컹거린다. 박봉 병원 퇴사 호들갑이 지겹다. 마약 밀매 발각으로 면허 박탈 정도면 이해할 텐데. 노을 보며 나눈 얘기란 그랬다. 약사는 기생충 새끼처럼 의원 옆에 알을 깐다느니, 아버지 실망시키지 말라느니, 결혼은 꼭 하라느니. 희끗한 잔머리로 안경 너머 무지를 뱉는다. 나눌수록 밑천이 드러난다. 깡통 뒤집지 말아요. 적당히 가리며 살아요. 이런 마중이면 왜 불렀나요. 이제 그만해요, 그만해도 충분해요. 죽기 전에 언제 또 보나, 같은 말로 파장 만들지 말고.


나는 네가 밉고 마냥 미워할 수 없고


나는 너를 사랑하고 그저 사랑하기만 하고


얼굴을 맞대도 눈을 맞춰도 손을 잡아도 서로는 서로를 모르고 무엇도 통하지 않고. 가운데 선 당신. 새우 등 터지는 당신. 눈을 질끈 감는 당신. 사라지고 싶다는 당신. 사랑이 무어냐 묻거든 지체 없이 당신 꼽을 터인데. 얼마나 사랑하냐 묻거든 반년 동안 백여 편 글 짓는다 자신하는 나인데. 또다시, 쓸데없이. 낯은 붉어지고 속은 진창이고. 추해진다. 추레해진다. 상한 뿌리는 도려내야 마땅하다. 혈연은 선택과 무관하다. 없던 인연인 셈 치자. 미리 이별하고 좋은 날 보지 말자. 삼베 차림 젖은 점막으로 스쳐 지나가자. 가까이서 할퀼 바에, 껴안아서 찌를 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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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넌 똑똑한 애니까 그 우정이 얼마나 드물고 특별한 건지 알 거야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中 -
2. 너희 둘의 관계는 지성과는 아무 상관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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