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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혜 Nov 29. 2023

Day 7 한겨울에 만나는 비밀의 정원

체코 제2의 도시 브르노로

오늘도 여지없이 새벽에 눈 떠 말씀 읽은 뒤 부랴부랴 자원 절약 욕실에서 씻고 6시반 아침 식사의(새벽 식사인가?) 첫 손님으로 식당에 들어섰다. 두번째 도시 이동이 있는 날이라 마음은 조금 급하지만 이럴 때일 수록 아침밥을 든든히 챙겨 먹어야 두뇌회전이 잘 된다.

오늘도 초록 풍경 보며 한 접시 그득
아래 무채 같은건 양배추를 발효시킨 사우워크라프트, 느끼함을 잡아준다.

올로모우츠 역에 이틀 전 왔을 때는 몰랐는데 역 내부 벽화가 귀엽다. 오늘 내가 탈 기차는 '체스키 드라히'라고 발음하는 체코 국영 철도청의 기차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칸칸이 나눠져 있어서 어떤 사람들과 한 칸을 쓸지, 내 짐 놔둘 곳은 있을지 여러 걱정 보따리를 안고 기차를 탔는데 내가 탄 칸에는 아주머니 한 분만 계셨다. 그래서 여전히 너무 높은 선반에는 캐리어를 못 올리고 발 밑에 둘 자리 여유가 충분했다. 아주머니는 인사만 하시고는 조용히 독서를 즐기셨다. 나도 고요한 가운데 기차 진동과 창밖 풍경을 구경하면서 1시간을 보냈다.  

올로모우츠 역
북적북적
춤을 추고 있는 것일까, 축제 중일까?
체코 국영 기차는 이렇게 생겼지요
2등석 한 칸에 6명 앉을 수 있음
녹색 카펫트가 깔린 드넓은 평원
차장 아저씨 모자가 너무 귀여워

브르노 역에 도착해보니 체코 제 2의 도시답게 사람도 많고 스케일들이 다 크다.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러서 구경 한 번 하고, 체크인 시간 전이라 숙소에 가서 짐만 맡기고 나왔다.

어디서든 여행자를 도와주는 인포메이션 센터의 <i> 표지판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궁금한 건 여기서 물어보면 된다.
완두콩으로 유전학을 연구한 멘델의 연구 장소가 브르노 였다고 한다. 그래서 완두콩 기념품이 있다니 귀여운걸
이 분은 야나첵 이라는 브르노 출신 유명 작곡가라고. 체코어에서 J는 Y 발음으로 생각하면 된다.
브르노 숙소, 카페를 겸하고 있다.
숙소 카페 창가에 앉으면 한 눈에 기차와 트램을 다 볼 수 있다.

브르노에 온 것은 내일 있을 내 여행 중 최대 프로젝트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오늘은 체력을 최대한 비축해둬야 한다. 그래도 가만히 있기는 아쉬우니까 어느때보다도 신중하게 갈 곳을 골랐다. <프르지로도베데츠케 파쿨티 마사리코비 우니베르지티 식물원>! 이름이 길지만 파쿨티가 대학교란 뜻이므로 프르지로도베데츠케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실내 온실이 있는 식물원이다. 브르노는 대학교가 정말 많이 있는 대학 도시인데 대학교에서 연구용으로 운영하는 식물원을 일반인에게도 개방한다고 한다. 일단 온실이니까 따뜻할 거다. 유럽의 겨울 추위로 말할 것 같으면, 정말 살 속을 파고드는 추위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데 오랜 시간 밖에서 버티기가 너무 힘들다. 그래서 어떻게든 따뜻한 곳을 찾게 되는 것. 하지만 박물관 미술관도 매번 가면 질리니까 녹색 친구들을 찾아가보자.  가는 길에 누가 뒤에서 "아호이~ 아호이~(여보세요!)" 하길래 뒤돌아봤더니 내 장갑 한짝 떨어졌다고 주워주셨다. ㅠㅠ 모랍스키극장 이후로 따뜻한 체코 사람들의 도움이 이어지는구나. 마음까지 훈훈해져서 하나도 춥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춥기는 추웠다. 어서 피신하자.   

다시 찾은 장갑
마지막 가을 잎새들과 붉은 트램
프르지로도베데츠케 대학교
13번 그린하우스로 갑니다

6000원이었나..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더니 당장 외투를 벗을만큼 온기가 나를 둘러쌌다.그리고 이 추위 속에서 파르파릇한 녹색 식물들이 온실마다 가득하다. 얼마나 관리가 잘 되어있는지 나무를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컨디션이 좋아보였다.

윗옷을 벗고 다닐 수 있다니 신기하도다
심지어 바나나나무까지 !
신기하다 신기해
한국에선 잘 못 보던 식물 구경
석류?
양치식물 하우스
선인장들

식물 뿐만 아니라 새들과 작은 동물들도 기르고 있었다. 좁은 공간에서 힘들지 않을까..싶은 생각도 했지만 우리 안이 쾌적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 같았다. 신선하고 따뜻한 공기가 있고, 온 사방이 푸르른 식물에 겨울에도 꽃이 피어나고, 새 소리까지 들려오니까 비밀의 정원에 들어온 것 같아서 혼자 전세낸 듯 (실제로 관람객이 나 밖에 없었음) 여기 저기를 누비고 다녔다.

토끼들아 괜찮니?


이 식물원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견학 온 어린이들이 그리고 만든 것처럼 보이는 작품들을 곳곳에 전시해둔 점이다. 그냥 몇 점 정도가 아니라 벽마다 알뜰살뜰히, 예쁘게 정리해서 걸어두니까 정말 아이들의 작품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느껴졌다. 이 아이들이 커서 이 학교 학생들로 입학할 수도 있겠네. 작품들마다 아이들의 개성이 잘 드러나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실감나게 그려놓은 파리지옥풀
멋지다
여우 바이올린
파리지옥풀이 매우 인상적이었나보군
하나밖에 없는 악기가 되었네요
올망졸망
금귤?
꽃 속에 또 꽃이 있는 신기한 꽃. 검색해보니 Giant Granandilla라는 꽃이란다.
미끄러운 주머니 속에 빠지는 곤충을 잡아먹는 식충식물 네펜데스, 책에서만 봤는데 실제로 보니 좀 쬐그맣다.

온실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는데 밖에도 정말 많은 식물이 있지만 지금은 겨울이라 흔적없는 것들도 꽤 되었다. 그런데 정말 깨알같이 하나하나 붙여놓은 식물 이름과 특징에 놀라고, 곳곳에서 그 식물들을 관찰하고 연구하며 무언가 열심히 적고 있는 학생들의 태도가 너무나 멋졌다. 교육의 현장답게 식물들을 얼마나 아끼고 진지하게 대하며 연구하고 있는지 열정이 전해졌다. 하나님이 첫 사람 아담에게 하셨던 말,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던 말이 이런 모습이었으리라. 내가 창조한 많은 생물을 자세히 탐구하고 알며 소중히 아껴주어라.

진정으로 자연을 사랑하는군요
화장실 타일까지 식물이라요
따스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브르노 중심 광장으로 나와서 여기저기 구경을 다녔다. 회전목마도 있고, 관람차도 있고, 크리스마스 다가오니 리스로 가득한 꽃집도 있고...배가 고파온다. 아침 식사 이후로 아무것도 못 먹었네.


브르노 식당을 검색했을 때 한국인들의 극찬이 쏟아지던 커리 식당으로 갔다. 들어서자마자 눈이 마주친 사장아저씨께서는 인도 분 같아보이셨는데, 마치 난 니가 여기 찾아올 줄 3천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느낌으로 나를 3초간 응시하신 후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에 드는 어디든 앉으라는 제스처를 보이셨다. 요일마다 그날의 메뉴가 있었는데, 그 메뉴 3개를 한 꺼번에 다 담아주는 메뉴가 있어서 당연히 그걸 골랐다. 심지어 만원도 안 된다!

그 많은 극찬들이 이해가 될 정도로 우와...진짜 진짜 맛있었다. 날리는 쌀이어도 좋아, 한국인 입맛에 딱 맞는 간에 살짝 매콤한 커리도 있고 홀로 감격하면서 흡입했다. 아니 이게 인도인지 네팔인지 현지 커리라면 이거 먹으러 거기 가고 싶다.

가장 밑에 있는 메뉴 믹스를 골랐다.
탄두리 치킨 티카, 병아리콩으로 만든 야채 커리, 마살라 등등 초록색은 라씨 (요구르트)

흡족하게 불러온 배를 두드리며 광장을 돌아다니다가 디저트로 젤라또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새콤한 베리 아이스크림과 달콤한 벨기에 초코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먹고 나니 해가 졌다

숙소로 돌아와 내일 준비를 단단히 해두고 잠이 들었다. 오늘도 도시 이동 무사히 마쳐서 다행이며 구름 잔뜩낀 날씨에도 따뜻하게 구경 잘 하고 맛난 음식으로 세계 여행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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