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5-6
빈곤 포르노그라피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있을 것이다. 동정심을 불어 일으킬 목적으로 가난한 아이들의 모습이나 사진과 영상을 자극적인 연출로 사용한 것을 빈곤 포르노그라피라고 부른다. 그들의 빈곤한 모습만 극대화시켜서 사람들의 검정을 유도하고 동정심을 이끌어 내어 모금을 유도한다.
이런 방식으로 후원을 이끌어 낼 수 있지만 이런 후원은 사람들의 감정이 사라지면 관심도 후원도 지속되지 못한다. 노르웨이의 한 영상은 크게 인기를 끌었다. 바로 빈곤 포르노그라피를 풍자한 영상이다. 이제는 원하는 나라에 여행을 직접 갈 수 있고 인터넷으로 손쉽게 세계 곳곳의 일상을 볼 수 있는 시대이다.
우리 내 삶 속엔 희로애락이 다 있다. 우울한 날도 있고 스트레스가 심한 순간도 있고 행복한 순간도 있다. 하루에 어떤 모습을 담아내느냐에 따라 나의 삶은 다르게 비친다. 빈곤문제를 영상 혹은 사진으로 담는 방식 역시 그러하다. 행복한 순간도 있고 고난의 순간도 있다. 어떤 삶의 모습을 담느냐는 캠페인을 기획하는 사람한테 달렸다.
하지만 슬픈 것은 여전히, 동정을 자아내는 광고나 영상에 사람들이 반응한다. 아이들의 환하고 희망찬 모습에는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감정에 호소하는 후원요청이 여전히 먹히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삶의 어떤 면을 담아야 하는 것일까? 너무도 손쉽게 나는 이것을 갖았으나 너는 이것을 못 갖아서 불쌍해. 이런 단순논리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갖고 못 갖고의 단순한 소유의 문제로 타인의 삶의 질을 판단할 수 없다. 이는 반대로 적용된다. 상대는 이 것을 갖았으나 나는 못 갖고 있어 그래서 나는 불행해. 이런 식의 논리는 우리의 삶에도 굉장히 하위의 개념의 비교이다.
나는 내 눈 앞에서 아주 간단한 구충제 하나 없어서 생사를 오가는 사람들을 봤다. 이 모습을 포착해서 현실을 알리는 것이 빈곤 포르노그라피에 해당하는 것일까? 단기로 봉사활동을 온 친구들이 아이들과 즐겁게 축구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모두가 행복한 시간이다. 그 추억을 남기고 싶어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이것도 빈곤 포르노그라피일까?
우리의 삶은 흑과 백처럼 단순하지 않다. 그리고 제3 국의 사람들의 삶고 흑과 백처럼 단순하지 않다. 복합적인 삶의 모습 중 단편만을 자극적으로 극대화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겠지만 지극히 현실을 반영하는 모습을 담아서 알리는 것은 국제구호단체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많은 이들이 단기봉사나 선교로 이들의 삶의 터전을 방문했을 때 본인이 알고 있는 상상 이상의 현실로 많이들 충격을 받고 간다. 왜 사진 속 영상 속에 나오는 아이들이 극히 일부라고 생각하는가? UN에서 제공하는 통계에 의하면 개발도상국의 10명 중 1명은 여전히 하루에 1.9달러의 국제 빈곤선 이하의 생활비로 살고 있다. 여전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인구의 42%는 극빈한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다.
인구의 8억이 영양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현실이고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빈곤문제는 UN만 해결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같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영양부족 상태로 만 5세 이하 어린이는 매년 310만 명의 죽어가고 있다. 이는 지금 코로나바이러스로 전 세계 사망한 204만 명(2021년 1월 18일 기준) 보다 많은 숫자이다.
생생한 수치는 우리가 어디에 관심을 갖아야 하는 잘 보여주는 통계이다. 감정을 앞세워 후원을 독려하는 것은 아주 촌스러운 방법이자 지속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모든 국제구호단체는 알고 있다. 그러면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세계 빈곤의 어려움을 알려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움직이기 시작할까.
그러하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빈곤계층의 어린이들이 깨끗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안전한 곳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예방접종을 맞을 수 있도록 묻지도 따지지 않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특별히 만 5세 이하 아이들에게는 영양 제공이 절대적이며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
내 아이가 있다면 5살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여 아이를 키우는지 알 것이다. 시기에 맞춰서 접종해야 하는 예방접종부터 아이가 아플 때 제대 제공해야 하는 약이 있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빈곤의 원인부터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맥주와 치킨 먹는 것에 고민이 없지만 빈곤층을 위한 후원은 진지하게 고민하고 따져보고 형편이 어려워지면 그마저도 바로 후원을 중단한다. 내가 먹을 치킨과 맥주가 빈곤에 빠진 아이들 몇 명을 먹일 수 있는지 안다면, 그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면 매달 내는 후원금을 위해 기꺼이 나는 오늘 밤 치킨과 맥주를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