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2
모든 결정과 행동에는 동기가 있다. 나의 마음을 동하게 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타인의 시선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있고 자아를 만족시키는 동기 등 다양하게 있을 것이다. 주체적인 삶을 살기로 시작한 20살 사소한 결정부터 중대한 결정을 모두 나 스스로 내렸다.
이 바탕에는 나를 끝까지 믿고 신뢰해 주신 부모님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20살에 방황 없이 명확한 목표 설정을 하고 그것을 향해 전력 질주하면서 살았다. 나의 전력질주로 얻게 된 많은 이점이 있지만 그에 따르는 부작용도 많았다.
목표 지향적인 나에게는 인생의 원대한 꿈이 개발도상국에서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 바로 직업이었다. 그런 꿈과 포부를 지니고 있는 나에게 어느 누구도 나의 마음을 살피라고 나의 내면을 잘 돌보라고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어쩌면 누가 이야기해줬었어도 나는 나의 목표에 눈이 멀어 잘 새겨듣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많은 자기 계발서에서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그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신념을 갖아라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그 자기 계발서에서 말하는 대로 내가 확고한 목표를 갖고 한 순간도 그 목표를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30살이 되기도 전에 원하는 직업적 목표를 이루게 되었다.
나의 변함없는 목표로 원하는 직업을 얻었으니 목표를 성취한 후에 나는 행복한 삶을 살고 늘 만족하는 삶을 살았을까? 예상했듯이 아니다. 목표 설정 자체가 잘 못 되어서 나는 그토록 바라는 직업을 얻고 나서 수많은 자기 의심의 덫에 빠지고 모든 것이 의미 없어지는 엄청난 공허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신념의 바탕에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나도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신념을 이루는 과정에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느라 나를 돌볼 기회도 시간도 갖지 않았다. 억울하지만 어느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나는 한 기관을 이끌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에 매일 같이 두통약을 먹어야 잠이 들 수 있을 정도로 과도한 스트레스 안고 살았다.
그토록 원했던 직업을 얻은 2년이 지나는 시점에 나는 급기야는 이 모든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여러 번 퇴사를 고려하게 되었다. 과한 열정과 기관의 목표 설정으로 내 눈에 성이 차지 않는 직원들의 근무태도, 나 혼자만 고민하고 애쓰는 것 같은 느낌, 타국에 혼자서 조금이라도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살리겠다고 혼자 고군분투하는 꼴이 우습기까지 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국제개발사업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경험을 쌓고 끊임없이 나를 갈고닦았던 것 일까? 한순간 꿈을 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모든 것이 의미가 없게 느꼈다. 조직을 경영하고 이끄는 경험이 없었던 나는 모든 것에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고 언어 도문 화도 다른 이들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껴 앉고 동기부여를 하면서 조직을 이끌어야 했다.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나의 목표를 이루는 순간부터 모든 좌절의 순간들이 시작되었다. 스페인어를 못하니 영어로 소통을 해야 했고 영어라 서툰 직원들과 마음 깊은 소통이 가능하지 못했다. 그렇게 오해가 쌓여서 직원을 내보야하는 상황도 생기고 그만두는 경우들이 생겼다.
의심 없이 선한 의도로 시작한 나의 목표의 종착력은 행복과 만족이 아닌 고통과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거기에 리더라는 자리에 외로움이 더해서 어느 누구와도 나의 어려움을 나누고 토로할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왜 인지 모르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더 밝게 더 당당하게 행동을 하니 내 주위 사람들은 내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당시에는 몰랐으나 지금 돌이켜 보면 반드시 필요했던 내면 성장의 시간들이었다. 나를 제대로 돌보는 방법을 몰랐던 나는 혼자 보내는 시간 동안 잠으로 스트레스를 이겨냈다. 약 10시간이 넘게 매일 잤다. 달리 어떤 식으로 어려움을 풀 수도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을 몰라 잠으로 이겨냈다.
내가 도망가면 실패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리고 나는 어떤 목표를 갖고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그토록 원했던 개발 현장에 있으나, 매일 찾아오는 직원 간의 소통 업무 진행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 등으로 나 스스로를 의심하는 순간이 자주 찾아왔다. 모든 것이 내 탓 같았고 직원들을 잘못 뽑은 것도 내 탓, 직원들이 그만두는 것도 내 탓 같았다. 현장에 계획한 프로젝트가 지연이 되는 것도 모두 내 탓 같았다.
도망가지 않고 정해진 임기만 잘 마쳐보자라는 생각으로 임기 2년을 지나고 있을 즈음에 자꾸 우울함이 찾아왔다. 잠으로 스트레스를 잘 달래고 있었으나, 잠 못 드는 밤도 많이 있었다. 그렇게 내 마음은 피폐해져서 도저히 사무실을 가서 직원들을 만나고 일을 할 에너지가 생기지 않았다. 퇴사를 하고 도망가느냐 다른 방법을 찾느냐 기로에서 과감하게 1 달이라는 휴가를 쓰고 나는 한국에 가서 심리상담을 받기로 결정했다.
적지 않은 돈이었으나 내 심리상태는 가히 정상은 아닌 것 같아서 심리 상담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싶었다.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 심리상담에 망설이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첫 상담을 시작하고 내 이야기를 쏟아내는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상담 선생님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얼마나 애썼어 그래...
혼자서 타국에서 누군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 내가 얼마나 애쓰는지 이야기만 들어도 알겠다고 하셨다.
나는 어쩌면 이렇게 고군분투하는 내 모습을 누군가 알아줬으면 했었나 보다. 나의 어려운 마음을 진심으로 알아주고 공감해주기를 바랐었나 보다. 상담 선생님의 한마디에 나는 마음에 모든 방어기제가 해제되면서 엉엉 울어버렸다. 모든 게 내 탓이라고만 생각했던 나에게 너무 대견하고 애쓰느라 고생했다고 다독거려준 한 사람의 말이 필요했던 것이었을까?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상담 선생님과 4번을 만나면서 나는 마음의 깊은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그리웠던 친구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다시 마음을 재 정비하고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스스로를 자책하지 나를 대견하다고 다독거려주기로 결정을 했다. 그런 스스로의 위로로 나는 다시 움직일 힘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