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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초 Feb 07. 2021

선의 경계를 넘는 것


오늘 아침 좋은 기회로 컬러 세러피 세션에 참여했다. 팔레트에 놓인 공간에 자유롭게 색을 칠하면서 치유하는 과정을 느끼는 것인데 나는 색으로 나의 마음을 표현할 때면 늘 물을 떠올린다. 그리고 물과 가까이 있는 빛을 떠올린다. 내가 칠한 색 중에 녹색,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이 있다. 노란색으로 각각 색깔의 경계를 허물어 주었다. 그리고 파란색과 노란색 사이에는 경계가 선명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 경계를 허물어줬다.

컬러 세러피를 담당하시는 분께서 노랑과 파랑은 반대되는 색의 개념인데 두 개를 많이 쓰셨네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팔레트의 선을 넘지 않고 그 안에서 색을 채웠다는 것을 일깨워주셨다. 다른 분들을 보니 경계 안팎으로 색을 칠하거나 무늬를 넣으셨다.  



나는 선을 지키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경계와 선을 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내가 심리적으로 세워놓은 바운더리를 넘는 일을 굉장히 많은 노력을 요한다. 예를 들면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그것을 시도하는 것은 인생 승리라고 불릴 만큼의 큰 일이다.



그렇다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어쩌면 심리적인 바우더 리일지도 모른다. 내가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내 마음에 쳐놓은 안전한 선 밖을 넘는 일은 정말 어렵다. 카메라 앞에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사람이지만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 서는 불편한 감정을 이겨내고 그 앞에서 수업을 하는 것 등 모두 심리적으로 세워놓은 선을 넘는 과정들이다.  



그렇게 선을 넘고 내가 만들어놓은 나의 편견의 선을 넘었을 때 그 이후로는 많은 시도가 처음보다 어렵지 않아 진다. 우리 옛말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처음이 어렵지만, 일단 한번 시작하면 그 선을 넘어서는 것은 이미 절반 이후만큼 이룬 것이다. 이런 편견은 대표적으로 사람들에게 적용이 되기도 한다. 첫인상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고 사람들은 종종 첫인상을 그대로 갖고 사람을 대한다. 그 첫인상이 지워지기 위해서는 몇 번이 넘는 경험으로 그 첫인상을 지우게 된다 그렇듯 첫인상은 중요하다 우리는 학교 교육에서 혹은 부모로부터 세상을 배운다 그때 우리가 맞이하는 세계에 대한 첫인상을 결정한다.



부모가 만약 특정 나라의 사람이 더러워 무서워라고 이야기했다면 아이들 눈에는 특정 나라 사람은 더럽고 무섭다고 인식한다. 벌레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벌레가 무서워라고 이야기했다며 아이들에게 벌레는 무서운 첫인상으로 자리 잡는다.



인간은 무지하게도 늘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전혀 합리적이지 못하고 편향된 확증을 갖고 살아간다. 그것이 누군가는 신념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근거 없는 믿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근거 없는 말도 안 되는 낭설이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강하게 믿어서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신념이 된다 예를 들면 아직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은 어떠한 근거를 가져와도 조작되었다고 믿거나 절대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누구나 편견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을 경험하고 배우면서 그 편견을 바꿀 수 있고 그 편견을 갖고 그대로 살아갈 수 있다. 자기 주도적 생각을 갖고 살면 편견에 자유로울 수 있다. 미국에서 흑인 노예제도 철폐라던지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는 일이라던지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것들이 그 당시에는 미친 사람들이 혹은 급진적인 사람들이 주장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편견에 갇힌 채 세상의 본질을 알지 못하고 사는 것보다 본질을 꿰뚫으며 나의 분명한 기준으로 세상을 사는 게 어쩜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당장 불편하지만 나의 편견을 넘기 위한 노력으로 인간의 본질을 알 수 있다면 과감히  편견의 선을 넘는 연습은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이다.



사람을 향한 편견이 어쩔 땐  인권을 모독하는 일이기도 하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이유 없이 차별받던 영화를 그린 헬퍼는 당시 미국 상황을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계급사회, 다 같은 인간이지만, 피부색으로, 종교로, 문화가 다르다고 편견을 갖고 행동을 제약한다.  지금도 한국은 유색인종에게 굉장히 인색한데 한 실험에서 백인이 길을 물었을 때와 동남아 사람이 길을 물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다르다는 것이다.  깊게 사로잡은 학습적인 효과이기도 하고 편견을 타파하기 위한 노력들이 부족했다는 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난한 나라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은 다양하다. 대표적인 것은 사람들이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편견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노력하면 반드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 (혹자는 낭설)에서 기인한 편견 들일 것이다. 하지만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내가 만나고 경험한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게으름이 원인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진입장벽이 낮아서이며 교육의 문제였던 것이다. 미국에 레드존이라고 들어봤는데 의도적으로 구간을 나눠놓고 흑인들은 그 땅을 살 수 없게 만들어놓은 정책이다. 제도적으로 좋은 동네에 살 수 있는 기회를 완벽히 차단해 놓고 어떻게 동일선상에서 시작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이처럼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서는 실제로 따져보고 검증하고 생각해야 할 부분이 많다. 다행히 나는 다문화에 노출되어 어울리는 시간이 참 길다. 레즈비언 친구도 있고 게이 동료도 있고 캐나다에 사는 인도네시아 친한 친구도 있다. 심지어 일하는 곳에서는 10개국이 넘는 곳에서 온 사람들이 같이 어울린다. 다양한 경험과 환경으로 사람에 대한 편견이 많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 역시 늘 깨어있으면서 매일 내 안에 심리적인 장벽 선과 편견을 넘는 연습을 매일 하고 있다.  



사람에 대한 편견뿐 아니라 확장시켜서 내 마음의 선으로도 확장할 수 있다.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것 같은 일에 과감히 도전을 해본다거나, 잘못한 인식을 갖고 바라봤던 특정 직업에 대한 생각이라던지 이미 사고가 한쪽으로 굳어져서 의심조차 하지 않는 일들 말이다. 이 것은 나를 성장하는 것과도 맞닿아있다. 나의 정체된 생각을 휘저어서 나쁜 것은 가라앉고 내가 깨달은 통찰력 빛나는 작업들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때 내가 안전하고 견고하게 쳐놨던 선들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새로운 세계로 눈을 뜨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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