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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초 Feb 19. 2021

나의 존재를 인식하기

자기 사랑에 대한 생각, 


잘 나누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생각을 점점 확장해서 자기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 졌다. 나의 출간 기획서도 그렇게 방향을 선회해서 자기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기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자신감과 자존감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서로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자신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자존감도 높은 것일까? 나의 털끝 하나도 소중하고 지키려는 마음으로 삶을 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러하다. 나의 존재와 침해하는 모든 것을 차단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에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자존감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존중하는 것이고 자신감은 스스로 믿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나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고 믿는 사람은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다는 말이 될 것 같다. 


자신감이 있으면 그 영역은 나의 내면에서 외면으로 확장이 된다. 내가 하려는 일의 결정에 대한 자신감 내가 어떤 일일 기필코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등이다. 이런 자신감은 충분히 훈련으로도 키울 수 있다. 나의 생각의 회로를 내가 하는 결정과 걸음 하나하나에 믿음을 심는 것이다. 내가 쓰는 책이 출간 계약이 되리라는 믿음을 갖고 출판사에 이메일 투고를 하는 행위 역시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이런 자신감은 타인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와는 별개의 것이다. 


이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되면 자존심이 되어버린다. 타인이 나를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렇게 되면 나는 자존심이 상하거나 자존심을 높아진다는 표현을 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내가 하고자 하는 일 혹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결정과 행동에는 타인의 시선을 거두어야 한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불안함과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마음에 잠식이 되면 내 안에 자신감은 사라진다. 


모든 시선과 생각을 내 안에 두고 내가 이루어 내겠다는 자신감을 갖고 계획한 일에 발을 떼면 된다. 그 외에 그 발을 떼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너무 쉽게 나는 자신감이 없어요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감을 기르는 연습은 자존감을 기르는 연습이 기본으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인식하고 나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것이 자존감을 기르는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고 인정해야 하는 걸까? 첫걸음 나를 들여야 보아야 한다. 내 안에 감정과 생각들이 가득하지만 나를 향하 감정과 생각을 접고 나의 존재를 살펴보는 것이다. 나의 고귀한 존재는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내가 나의 존재를 부정해버리려고 하는 순간 자존감은 무너진다. 성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마 6: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길에 피는 꽃부터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수고도 없이 그래도 있다. 그것을 우리가 인식하고 인정할 때 그 가치가 빛을 발하게 된다. 다시 나의 존재로 돌아가서 내가 세상에 나온 그 자체로 빛이 난다. 나의 의식이 내 존재를 인식해줄 때 자존감이 형성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나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이 자존감의 첫걸음이다. 


내가 매일 계획한 것을 이루지 못해도 나의 존재는 절대 훼손되지 않는다. 누군가 나를 향해 욕을 해도 그 욕은 나의 존재 가치를 훼손할 수 없다. 그렇게 스스로 생각의 연습이 필요하다. 단단한 자존감이 확립이 되고 내가 결심하고 행동하는 모든 걸음에 믿음이 생긴다. 이것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  어떤 상황에서 이루지 못해도 괜찮다고 다독일 수 있다. 자기 타협이 아니라, 노력을 했음에도 좋지 못하는 결과를 얻을 때에는 그 실패를 통해 배우고 다시 일어나면 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까이서 아이들이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본다. 걸음마의 연습은 아이들에게 수많은 실패와 좌절의 과정을 보는 듯하다. 몸을 마음대로 나누지 못할 때부터 몸을 뒤집고 하지만 다시 뒤집지 못해서 운다. 그리고 팔다리를 이용해 기어 다니고, 다음에는 드디어 걸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완벽한 모습으로 걷지 못한다. 뒤뚱뒤뚱하다가 수백 번 넘어지고 마침내 걷는 것을 완수한다. 우리는 모두 이런 어린 시절의 좌절을 통해 잘 걷고 있다. 그러니, 나는 그런 경험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우리 모두 넘어지면서 걷는 것을 마스터했으니. 


내가 생각한 것을 시도하고 실패하고 그리고 또 시도하는 것이다. 에디슨이 발명한 전구 역시 수백 번의 실패 이후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가 임계점에 도달하기 직전에 포기하면 나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하지만 임계점을 지나 이루게 되면 그때 나의 노력은 빛이 발한다. 


하지만 이런 모든 노력과 시도 이전에 살펴봐야 할 것은 나의 자존감임을 잊지 말자. 나의 존재를 나의 의식이 인정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빼앗을 수 없는 나의 고귀한 가치를 내가 발견하는 것이다. 나의 행동의 결과로써 인정이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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