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어떤 순간은 비루하고 어떤 순간은 존귀하고

by 김향남


그는 깃도 부리도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여 있다. 검지 않은 데가 한 군데도 없다. 그의 검은 외피는 딱하게도 슬프다. 목청마저 어둡고 탁하다. 그를 뜻하는 글자 ‘烏(오: 까마귀)’는 몸이 검어 눈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 ‘鳥(조: 새)’의 눈 부분 한 획을 생략한 글자라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눈마저도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


그는 환대는커녕 배척당하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유독 그에게 인색했다. 그의 검은 날개는 저승사자의 옷자락이라도 된 것처럼 꺼리고 외면했으며, 굵고 거친 울음소리는 불행의 전조인 듯 불길하게 여겼다. 까마귀 노는 골에는 가지도 말라 선을 그었고,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 억울한 누명을 씌웠다. 그뿐인가. 해야 할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는 공연히 까마귀 고기를 먹었다느니 애먼 탓을 했다.


이쯤 되면 그의 명예는 송두리째 훼손되고 말아 존재 자체를 부정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아득히 먼 이야기이긴 해도 그는 태양신의 사자로서 신들의 전령으로 모셔졌고, 삼족오(三足烏)라 불리며 국조로 대접받기도 했다. 견우직녀 애틋한 사랑에 기꺼이 헌신했고, 반포지효(反哺之孝)라 극진한 효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뿐인가. 썩은 것들을 먹어치워 환경 정화에 일조했고, 장대 위에 높이 올라 희망의 메신저가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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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을 오르고 있었다. 바람도 없고 구름도 없고 사람도 없었다. 보이는 것은 하늘과 나무와 마른 풀들, 들리는 것은 새소리뿐이었다. 새소리는 맑고 투명하고 여리고 부드러웠다.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본래 그대로 내 안의 어둠들을 살뜰히도 거두어 갔다. 가붓해진 발걸음이 사뭇 경쾌했다.


어느 순간 발소리도 안 들리고 새소리도 안 들렸다. 천지사방엔 고요만 가득 찼다. 그 사이로 불쑥 한 소리가 끼어들었다. 나뭇가지들이 출렁 흔들리고 고요도 저만치 달아났다. 검은 새 몇 마리가 머리 위에서 푸드덕거리고 있었다. 까악까악까악까악…. 온 산을 휘저어 놓고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까악까악까악까악…. 물색없이 큰 소리에 푸시시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그는 웃기는 재주도 있었구나….


이윽고 널찍한 산마루. 묵화처럼 아름다운 능선과 탁 트인 시야가 호연히 푸르렀다. 언제 왔는지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멀리 산자락을 바라보고 있거나 뭔가를 먹고 마시거나 도란도란 담소 중이었다. 나는 표지석을 지나 중앙에 세워진 높다란 돌탑 쪽에 앉았다. 몸도 마음도 느슨하게 산 위의 시간을 즐겨볼 참이었다. 한겨울, 높이 1500미터가 넘는 고산인데도 마치 양지바른 담장에 기댄 듯 나른하고 따스했다.


몇 발쯤 떨어진 바위 위, 까마귀 한 마리가 먹이를 쪼고 있었다. 사람들이 던져준 빵이며 귤 따위였다. 그는 먹는 틈틈이 이쪽을 노려봤다. 난간 기둥에 먹을 것을 올려놓으면 알았다는 듯 잽싸게 낚아채 가곤 했다. 먹이를 채는 그의 몸짓은 날래고 야무져 보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에겐 줄 만한 게 없었다.


다른 까마귀는 돌탑 위에 앉아 있었다. 돌탑 가운데 뾰족이 솟은 바위 끝에 앉아 어느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나를 주시하는 것도 같았다. 그는 숫제 솟대처럼 솟아 있었다. 둥근 허공은 그의 후광이었다. 그의 날개는 접혀 있었고, 굳게 다문 부리는 과묵해 보였다. 그의 눈은 광야를 달려온 무사의 안광인 듯 빛났으며, 그의 몸은 오묘한 광채를 발하였다. 그의 자세는 흔들림이 없었고 어떤 두려움도 없어 보였다. 그는 정지하고 있었지만 언제라도 창공을 날 것처럼 보였다.


어떤 까마귀는 먹이를 쫓고 어떤 까마귀는 솟대가 되었다. 먹이를 쫓다가 솟대가 되기도 하고, 솟대였다가 먹이를 쫓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먹이를 쫓는 자에겐 먹이로 희롱하고, 높이 좌정한 자에겐 머리를 조아렸다. 어떤 순간은 비루하고 어떤 순간은 존귀했으나, 그 순간도 다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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