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보니 나는 도둑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도둑질을 하지 않고 무구하게 살아온 것은 고작 예닐곱 살 때까지가 전부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줄곧 누군가의 무엇을 훔치곤 했다. 처음엔 언니의 연필을 훔쳤고 그다음엔 오빠의 지우개를, 그다음엔 엄마 지갑 속의 동전 하나를 슬쩍…. 아무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조마조마했다. 며칠 지나자 그 마음은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심부름을 하고 돌아오는 길, 고추밭 속에 숨어 있는 가지를 보았다. 크고 통통한, 늘씬하게 쭉 뻗은 고놈은 햇빛을 받아 더욱 윤택해 보였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몇 발 가다 다시 돌아왔다. 주위는 고요했고 산새들만 간간이 하상기음(下上其音) 하는 사이, 내 손에는 이미 고놈이 들어와 있었다. 흡족한 나는 한 번 더 주위를 살핀 후 흰구름 둥실거리는 하늘 밑을 종종거리며 지나왔다.
저녁때 선주할머니가 우리집엘 왔다. 대번에 내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냥 온 것이 아니다. 그걸 직감한 나는 몸 둘 바를 모르고 허정댔다. 할머니가 뭐라고 숙덕대는지 안 들어도 훤했다. 엄마의 지청구가 길었는지 컸는지는 기억조차 없지만 한동안 집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보는 사람마다 도둑년, 도둑년 손가락질할 것만 같아 가슴을 펼 수가 없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더이상 남의 것을 훔치지 않았다(그러나 과연 그럴까?). 간곡한 엄마의 눈빛에서 말할 수 없는 아픔을 느꼈던 것이다. 이제 나는 이전의 그 무구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고 바라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오유지족(吾唯知足)한 삶의 철학이 다 내 것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세상은 결코 나 혼자만 만족하고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세상은 나에게 쉼없이 요구하고 끊임없이 떠밀었다. 이제 내가 훔친 것은 연필이나 지우개, 가지 따위가 아니었다. 나는 갈수록 더 큰 것을 욕심냈다.
중학생 때였다. 어버이날을 맞아 글짓기 숙제가 주어졌다. 도무지 어떻게 써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부모님께 효도를 해 본 기억도 딱히 없고 감사하는 마음이 샘솟는 것도 아니어서, 쓰자니 한 줄도 잇기 어려웠다. 그래도 숙제는 해야 했다.
언니가 보던 시집이 있었다. <한국인의 애송시>나 <세계의 명시> 같은 제목을 달고 있었다. 나는 그 책을 이리 되작 저리 되작 맘에 드는 구절들을 골라냈다. 그것도 한 군데만 뭉텅 가져오면 들킬지도 모르니까 여기저기에서 표 안 나게 살짝 끄집어냈다. 그다음엔 그것들을 적절히 배열하고 엮어내는 일을 했다. 낱말과 낱말, 문장과 문장 사이를 오가며 이리저리 꿰맞추어 한 편의 글을 완성했다. 그리고는 하얀 원고지에 정성껏 다시 썼다. 그것은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다음다음 날, 국어 선생님이 나를 찾으셨다. 손에는 원고지가 들려 있었다. 아뿔싸, 들키고 말았구나.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하더니 내가 딱 그 짝이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가슴은 콩당콩당 방망이질을 쳤다.
“이거 네가 쓴 거 맞아?”
원고지를 높이 들고 선생님이 날 겨냥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짜아식, 이런 재주도 있었어? 최고상이야.”
조마조마 숨죽이고 있던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보고 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다. 나는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게다가 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기까지 했다. 선생님의 말은 더 이어졌다.
“내일 아침 운동장에서 조회할 때 단상에 올라가서 이 글을 읽어야 해. 원고를 줄 테니까 집에 가서 연습해 오도록. 알겠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내가 글을 훔쳐 썼다는 것을 전교생 앞에 포고하라니. 그것도 내 입으로 직접. 내 얼굴은 숫제 백지장이 되고 말았다. 혹시 선생님께서 이미 눈치채고 날 벌주려고 그런 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야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노벨문학상이 꿈이라던, 글짓기만 했다하면 상이란 상은 죄다 제 것이었던 경미는 어디가고 난데없이…. 뭐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이실직고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래, 깨끗하게 양심선언하고 다시는 훔치는 일 따위로 가슴 졸이는 짓일랑 하지 말자.
그러나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우물쭈물 결국 일은 닥치고 말았다. 조회는 시작되었고 몇 가지 순서가 지나간 후 마침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잔뜩 긴장한 채 단상 위로 올라갔다. 노란 햇살이 내 얼굴을 비추고 운동장은 조용했다. 천천히 글을 읽기 시작했다. 내 목소리는 떨렸으나 차츰 가라앉더니 이윽고 낭랑해졌다. 단상에서 내려왔을 때 나는 아주 착한, 글 잘 쓰는 효녀가 되어 있었고, 그리고 일약 스타가 되었다.
내가 스타가 되었다는 것은 우르르 언니들이 찾아 왔다는 것이다. 언니가 한 무리의 친구들을 이끌고 우리 교실로 원정을 온 것이었다. 상급생이었던 언니는 제 동생이 단상에 오르는 걸 보고 몹시 상기되었다. 으응, 내 동생이야. 네, 선생님. 제 동생이랍니다. 관심은 넘쳤고 언니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는 특별히 몇 권의 책을 선물받기도 하였다.
일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걸핏하면 글짓기에 동원되었다. 삼일절, 식목일, 현충일, 광복절, 국군의 날, 한글날 등등 무슨 날이 그렇게도 많은지, 그때마다 애국심에 불타야 하는 곤혹을 지겹게 경험했다. 그런 일을 모두 나에게 떠넘기는 친구들도 선생님도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렇게 하려고 선생님은 내 죄를 눈감아 준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남의 것을 훔친 죄가 그토록 나를 옥죌 줄은 짐작도 못 했다.
그러나 훔치는 실력만큼은 더욱 늘었다. 책을 읽다가 괜찮은 구절이다 싶으면 밑줄을 그었고 더러 베껴 두기도 했다. 감동해서 그런 것이라고,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나중에 쓰일 것을 염두에 두었음은 물론이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여전히 나는 훔치기 위해 글을 읽고 내 것인 양 표 안 나게 눙치려고 부지런히 엿본다. 가끔 흉내 내어 글을 써 보기도 한다. 누군가 써 놓은 글귀를 당겨내어 내 이야기를 푸는 실마리로 삼기도 한다. 해 보니 제법 스릴도 있고 재미도 있다. 점점 가속이 붙는 것도 같다.
이제 나는 연필이나 가지 따위는 관심도 없다. 그걸 훔치느니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겠다. 도깨비감투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따위 빤한 물건을 훔쳐 망신살 일이 뭐 있겠나. 나는 이제 보이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다. 보여도 안 보이는 것을 포획한다. 이를테면 밤하늘의 별 같은 것 혹은 당신 가슴 속의 심장 같은 것 말이다. 그것들을 향하여 그물을 치고, 서서히, 야금야금, 확! 먹어치울 수 있는 기술을 연마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