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7] 드라마는 위험해

-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거든

by 은가비

평소 티비를 잘 보지 않는다. 바쁘기도 하고 책읽을 시간이나 운동하는 시간으로 더 쓰는 편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뭐하나에 빠지면 파고들어 끝장보는 스타일인걸 알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도 만화에 빠졌고 오락실에 들락거리며 게임도 해봤고 친구네집에서 몰래 고스톱도 쳐봤다. 그런데 어느정도 하다가 털고 나올 줄도 아는 약은 아이였다. 내가 쉽게 빠져드는 것도 알고 끝없이 가버리면 어떻게 되는지도 아는 조숙한 아이였다.


사십 대에게 인생 드라마를 물으면 다들 입에 거품을 물고 너도 나도 얘기를 해댈 것이다. 드라마는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끝까지 챙겨봐야 하므로 어지간하면 시작을 하지 않는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워낙 친절한 사람들도 많아져서 유튜브에 요약본도 올라오고 정리본까지 올라온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대화가 잘 안된다 싶게 정말 궁금한 건 그런 영상들을 찾아보고 "아, 음. 그런거군. 오케이!" 대충 파악 완료. 그러나 어디 인생사를 담은 내용이 요약과 정리로 감동이 다 느껴지던가 말이다. 어떤 드라마는 그 정도 선에서 더이상 궁금하지 않은 반면 어떤 드라마는 채워지지 않는 행간의 궁금함과 배우들의 명연기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이건 꼭 봐야한다는 감이 오면 따라야지.


오늘 책모임을 하다가 엄청 진중한 분으로 알고있는 멤버가 모임 시간 변경 의견에 드라마 때문이라는 이유를 말해서 깜짝 놀랐다. 그분이 보는 거라면 나도 봐야겠다라는 생각도 들었고 명절 연휴기간이라 책만 보기엔 좀 아깝다는 생각에 드라마로 킬링타임 좀 해볼까 하는 마음이 딱 나를 부추겼다. 그렇게 해서 오늘 보게 된 드라마는 수많은 아줌마들이 좋아하는 해사한 정해인이 남주로 나온다. 제목마저 아줌마들 취향을 딱 저격할 '엄마친구아들'이다. 듣는 순간 엄친아가 내포하는 그 수많은 의미들이 그냥 막 밀려오지 않나.


내용이 너무 뻔하면 어쩌나 염려도 되었지만 수북이 쌓인 빨래를 개며 보기 시작했는데 나중엔 빨래고 뭐고 다 던져놓고 휴지로 눈물콧물 닦아가며 엉엉 울면서 봤다. 외국에 가있는 동안 암에 걸려 수술하고 항암치료까지 받았던 사실을 숨긴 딸 때문에 가족이 난리가 났고 주변 사람들과 한바탕 울고불고 하는 과정에 덩달아 나도 오열. 암과 가족, 아픔과 삶이라는 주제는 내 눈물 버튼이다(언젠가 글에서 풀어놓을 때가 있겠지. 걱정 시킬까봐 힘들고 무섭고 외로워도 혼자 다 감당하는거 나랑 똑같아서 ㅠ ㅠ). 아, 내일 아침에 눈 붓고 머리 아플 예정이다. 이래서 드라마는 위험하다. 일단 시작을 했으니 연휴기간동안 정주행해야지. 다시보기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여주인 석류가 위암사실을 숨긴 이유는 가족들이 나때문에 힘들어할까봐 걱정이 되서, 내가 무너지면 다같이 도미노처럼 무너질까봐 그랬다고 했더니 남주인 승헌이 그러면 좀 어떠냐고, 그러다가 다시 같이 일어나면 되는 거라고 그게 가족아니냐고 외치던 대사도 너무너무 울컥했다. 그래, 다같이 좀 넘어지면 어떤가. 가족은 다 알아야 하는건데 나는 가족에게 더 숨기고 조심하고 알리지 않는 편이라서 석류의 마음이 너무 이해가 되었으나 주변 사람들의 서운함도 충분히 공감했다. 위로받고 싶고 챙김받고 싶고 나를 특별하게 여겨줬으면 하는 욕심이 나는 사람들이 떠올라서 너무 오래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드라마가 위험한 또다른 이유는 나같이 대문자 F인 인간을 감정과잉에 빠지게 한다는 것. 사십 대가 되어도 내 감성은 여전히 충만하다. 인생의 깊이가 더해지니 과몰입이 심해진다.



"저는 방법이 잘못 되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든 그 사람을 일으켜 세울려고만 했지 같이 넘어질 생각은 못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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