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8] 식물이 주는 위로

- 나이 들었다고 느낄 때

by 은가비

매우 좋아하는 그림책이 있다. 제목마저 명쾌한 <더우면 벗으면 되지>라는 그림책은 삶에서 마주하는 고민을 아주 단순하고 속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더우면? 벗으면 되지!'처럼 왼쪽 페이지에는 어떤 문제 상황을 제시하고 오른쪽에는 그 답을 보여준다. 마음에 드는 장면이 여러군데 있지만 그중에서 식집사인 나에게 특히 와닿는 페이지는 이러하다. 무릎을 치게 되는 통찰에 매번 위로를 받는다.

자식을 키우는 일은 콩나물 시루에 물주듯 하라고 한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몸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보상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내가 뭘 바라고 자식을 키우는 아주 나쁜 어미같이 느껴지지만 우리가 해야할 일은 자식의 몸만 키우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한 사람의 제대로 된 성인이 될 때까지 제대로 길러내는 것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아이가 잘 자라고 있다는 사인을 여기저기서 확인하고 싶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밖에서는 어떻게 하고 다니는지 따라다니며 볼 수 없는데 집에서는 가족이 편하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함부로 하기 십상이니 속상해하며 내가 이럴려고 저놈들을 키웠던가 하는 자괴감에 수시로 빠져든다.


이러하야 나는 언제부터인가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게 대들지 않고 실망시키지 않으며 그저 내 손길과 관심을 기다린다. 원래도 꽃을 좋아했지만 잠깐 피고 지는 화려한 꽃은 가끔 슬펐다. 보다 오래오래 초록잎을 보여주는 식물이 오래 마음을 붙들었다. 특히 새잎이 올라올 때 돌돌 말려있는 그 자태와 어느날 스르륵 펴질때 보여지는 오묘하고 다채로운 연두빛깔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속살 같은 잎의 연한 맨드라움은 한참을 보고 감탄하게 된다.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얘들한테 말을 걸고 대화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아, 나 정말 나이들었나봐. 울엄마가 그렇게 식물을 키우더니 나도 이제 그런건가.' 물만 잘 줘도 꽃을 피우고 잎을 틔워 나에게 위로를 주는 식물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식물테라피도 내 삶에 중요한 부분이다.


그림책 모임을 오래 하다보니 좋아하는 식물과 자꾸 내 마음, 내 삶이 연결되곤 한다. 연수나 강의에서 자주 소개하기도 하는 <적당한 거리>라는 책도 너무너무 좋고,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라는 책도 식물의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보며 하는 서술형식인데 생각할 내용이 많다. 또, 어른을 위한 그림책으로 한동안 유명했던, 노벨문학 수상 작가인 올가 토르추크가 글을 쓴 <잃어버린 영혼>이란 그림책을 보고 한련화에 반해버렸다. 그림책 내내 한련화가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그 묘한 매력에 빠져 매년 씨를 심어 기른다.


하루중 잠시 숨고르기 하며 내 작은 베란다 정원에 앉아 가만히 화분들을 들여다본다. 그렇게 바라보다보면 식물이 주는 위로와 삶의 깨달음을 수시로 느끼게 된다. 자연에서 인생을 배우고 절기의 기가 막힌 타이밍을 느끼며, 수시로 나고 자라고, 피고 지는 식물이 내게 가르침을 준다. 모든 순간에는 배움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사십 대 중반의 나는 이렇게 깊어간다.

덧) 에세이를 좋아하는 분에게는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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