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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바다 수혈

by 은가비

주기적으로 바다를 봐야하는

바다 수혈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침부터 찾아간 대천 해수욕장.

아이를 학교에 태워주고 네비 검색하니

이곳에서는 40분 거리다.

망설임없이 바로 출발했다.


초등부터 고등학교까지만 포항에 있었고

대학 시절부터 집을 떠나 살았으나

한 번씩 그리운 바다와 파도.


집은 시내에 있었지만

금방 갈 수 있는 해수욕장이 여러 개라

친구들과 자주 바다에 갔다.


너무 유명해진 호미곶은 포항 사람도

마음먹고 가야하지만

차를 타고 그 일대 해안도로를 달리면

지도 가장자리 땅의 형태가 그려지듯

가늠이 되는 기분이 든다.

흔히 말하는 호랑이 꼬리 모양의 곡선.


결혼하고 시댁인 청양과 포항이 너무 멀어 명절에는 친정에 오지 않은게 이제 굳어져 버렸다.

신정에만 내려오곤 해서

엄마랑 같이 일출을 보려고 나선다.


기대하고 기대하면서

새해의 첫 해를 보려고 애쓴 날들.

차디찬 바람도 기꺼이 견딘다.


어릴 때는

그저 물에 몸을 담그고 노는 게 좋았고
방황하던 학창 시절에는

거리를 두고 물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해변가에 앉아 오래 바라보았던

동해 바다의 너른 수평선과

깊이를 알 수 없는 검푸른빛의 물빛,

바닷 바람이 밀어내면

말처럼 달려오는 파도의 모습이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씻어내주던

그 순간 순간을 가끔씩 떠올린다.


다들 찾는 복잡하고 지저분한 여름 바다 말고

쓸쓸하고 조용하고 깨끗한 겨울 바다,
사람이 거의 없는 해안가를 걸으며

혼자 누리는 겨울 바다만의 그 맛이 있다.


엄청난 바람과 거센 파도에

답답하고 시끄러운 속이 싹 씻겨나가는 기분.

얼어버릴 듯 빨갛게 시린 손과 얼굴이

오히려 상쾌해서

한참을 걸으며 바람을 맞았다.


이렇게 겨울 바다의 모습과 공기를 수혈받고 연말을 보낼 힘을 얻는다.




대천 해수욕장 스타벅스에서

슬쩍 보이는 바다뷰~

일상 여행가를 꿈꾸는 나는 오늘도

혼자 짧고 충만한 여행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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