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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 졸업

by 은가비

부모님 오지말라던 고3이.

준비해주려고 했는데

꽃다발도 필요 없다 했다.


그런데 오늘

사진 한 장 없다.

친구들폰으로만 찍었다는 핑계에 속이 터진다.

친구들과 밥먹고 즐겁게 있다가 올줄 알았는데 식 끝나고 바로 집에 와서

혼자 핫도그랑 라면으로 끼니를 떼웠나보다.

너무 짠하고 속상하다.

수시2차까지 다 안되고 나니

자신감도 없고 주눅들어서

부모한테도 제대로 뭘 말하지도 못하는 것 같다.


중3이는 나만 졸업식에 참석했는데

애걸복걸해서 겨우 사진 몇 장 건졌다.

전학해서 하는 졸업식이라 마음이 복잡했다.

육아는 끝도 없이 힘들다.

산 넘으면 더 큰 산이 계속 나온다.


중3이는 아주아주 애를 써서 원하는 고교에 기숙사도 들어가게 되어서 한시름 놓았는데

고3이는 입시가 아직도 해결이 안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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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졸업식 꽃다발만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후기도 홍보도 괜찮아보였다.

그러나.

실제로 받은 꽃다발은 가격에 비해 다소 실망했다.

그래.

오가는 기름값, 시간 생각하면

2만원쯤 뺀 값으로만 생각하자.


요즘 정신승리(라고 쓰고 자기합리화라 읽는다)하는걸 연습중인데 자꾸 패배한다.


아무래도 택배로

하루전에 받은데다

한파로 시달렸나

금방 시들해졌고

내 눈은 또 비교지옥에 빠져

식장에서 다른 이들이 들고온

싱싱하고 풍성한 꽃다발을 쳐다보느라

졸업식에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갔다.

다른 애들 꽃보다 별로라고

딸이 실망하면 어쩌지.

사진에 초라하고 안이쁘게 찍히는거 아닌가.

내 인생에서 장애물은

비교다.

자꾸 비교지옥에 빠지는 나.


어쨋든 졸업을 했다.

네 식구가 오랜만에 모여 같이 저녁을 먹었다. 각자 살아내느라 애썼다.

특히 수고한 나 자신을 많이 달래줘야지.


저녁이 되어 정신을 차리고

제법 시들어버린 아이들은 과감히 정리하고

꽃병에 최대한 꽂아서 정리했다.

아까운 꽃

며칠이라도 더 봐야지.


그런데 튤립 한 송이가

유독 옆으로 휘어보여서

이리저리 모양 잡아보고

요리조리 만지작거리다가


아뿔싸.

똑.

부러뜨리고 말았다.

본연의 모습대로 둘것을.

내 눈에 거슬린다고

억지로 바꾸려다가

결국

존재 자체를 망가뜨렸다.


오늘도 배웠다.

그대로

두어라.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주어라.

본연의 모습일 때 행복할 것이다.

지나치게 관여하지 마라.

자기 모습대로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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