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신주의자였다. 찌질하고 못난 남자들을 많이 보았고, 야비하고 음흉한 남자들도 많이 봤다. 친구 남친이 나에게 고백을 하기도 했고 나에게 대쉬하는 남자를 친구나 직장 동료가 좋아해서 중간에서 곤란을 겪기도 해서 진절머리가 났다. 남자란 존재에 대해 신뢰가 가지 않았고 그런 존재와 몇 십년을 같이 살게 되는 결심을 하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대학생이 되면서 원가족에서 떨어져 나와 살게 되었으니 부모님과는 고작 19년을 함께 살았는데 결혼을 하면 생판 남이었던 사람과 적어도 50년쯤 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무서웠다.
나는 육군사관학교에 여생도 1기에 지원했었다. 어렸을때부터 비련의 여주인공, 현모양처의 여자들 보다는 여경찰, 여검사, 여의사, 강한 체력을 가진 여자 운동선수 등 당차고 남자못지 않게 멋진 여자들의 모습에 가슴이 뛰었다. 고 2 여름방학인지 고 3 여름방학인지는 기억이 헷갈리는데 아무튼 남들은 공부하고 학원다니느라 정신없던 그때 나는 해병대 2박 3일 캠프에 자원해서 쌩고생 체험을 했으니 특이하긴 했다. 그러니 육사에서 드디어 여생도를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자생도는 보통 150-200명 정도 뽑았던거 같은데 여생도는 모집인원이 25명이었던 것 같다. (25년쯤 지나니 이제 오래되서 기억이 가물가물해졌다. ㅠㅠ중년은 슬프다.)
1차 서류 전형에서 5배수를 뽑았는데 합격해서 2차인 체력장을 치르러 서울에 처음 가봤다. 서울에 가기 위해 비행기도 그때 처음 타봤다. 아무튼 이러저러하여 2차까지는 봤으나 3차인 수능을 망쳐서 그 25명안에는 들지 못했다. 방황하는 마음과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원서를 아무데나 써버리려고 할 때 은사님이 밥을 사먹이시면서 그냥 정신차리고 교대에 가라고 하셨다. 그렇게 해서 사십 대 중반이 된 나는 이 나이에도 스승의 날마다 은사님과 서로 스승의 날을 축하하는 메세지를 주고 받는다.
육사에 합격하고 여군이 되었으면 독신으로 살았을까. 어찌어찌하여 결혼을 하고 아이도 둘이나 낳아 키우고 있는 지금의 나는 한 번씩 그런 상상을 해본다. 다들 '만약에~ 했다면?' 하는 상상놀이 해보지 않는가. 살아보지 않은 인생은 알 수 없으니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지만 한 번씩 미련은 남는다. 결혼한지 20년이 다 되어 이제는 끈끈한 전우애로 때로는 룸메이트같은 친근함으로 살고 있지만 한 번씩은 독거중년으로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솟을 때가 있다. 자식들이 힘들 게 할때다. 그리하야 요즘 극도의 스트레스로 불면에 시달리는 중인 내가 가정의 평화를 위해 9월말에 홀로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선언했다. 아이들은 왜 혼자 또 여행을 그것도 제주도로 가냐고 불만을 토로했지만 "이놈들아! 내 심리 상태를 생각하면 제주도가 아니라 유럽 일주 정도는 하고 와야 풀릴까말까야!"라고 했더니 다들 입을 다물었다.
핸드폰에는 남편을 '내편'으로 저장해놓았다. 좋을 때는 든든한 내편이 있어 독신으로 사는 것보다는 낫겠지 생각했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밉고 싫어질 때는 온갖 단점만 눈에 들어오는 남의 편이다. (아마 그도 그러겠지.)이렇게 평생 내편과 남의편 사이를 오가며 살겠지. 그런데 오늘은 그가 좀 든든했다. 지난주 처음 가본 건물 주차장에서 좁고 각도 안나오는 통로를 힘겹게 내려가다가 차 옆면을 아주 제대로 처참하게 긁어먹고 한동안 걱정과 패닉상태에 빠진 나를 정신차리게 하고 이성적으로 자차보험으로 처리하도록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그를 보면서 "그래, 내편이지."라는 마음이 들었다. 제주도 가기 전에 맡기고 여행 다녀오면 찾을 수 있도록 정비소에 오늘 같이 가서 모든 처리를 하고 왔다. 이럴 땐 참 고마은 내 편이다. 그러나! 다음 생에는 독신으로 자유롭고 방탕하게, 내 마음대로 한 번 살아보고도 싶다.(그에게는 다음 생에 재벌 집안에 내 이상형으로 태어난 거 아니면 아는 척도 하지 말라고 경고해두었다. 그리고 난 근사하고 멋진 남자로 태어날 계획이라고 했더니 몹시 어이없어했다. 음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