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9] 느긋한 제주 여행

- 1일차

by 은가비

어젯밤 잠을 설치며 자는둥 마는둥 했고 꿈을 많이 꾸어서 피곤했다. 공항 버스를 탔는데 차가 막혀서 수원에서 김포 공항까지 2시간이나 걸렸다. 버스안에서 잠을 조금 보충하긴 했지만 공항에 여유있게 도착하지 못했다. 라운지 이용이 가능하다고 해서 우아하고 여유롭게 좀 누려볼까 했더니만 버스가 늦게 도착한 바람에 탑승시간까지 별로 시간 여유가 없었다. 여유는 커녕 마음이 조급해서 챙겨간 샐러드와 라운지에서 뽑은 커피를 허겁지겁 먹어 치우기 바빴다. 어흑. 속상하다.


그동안 모은 마일리지를 써먹지도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혼자서 해외에 갈 시도까지는 아직 못해서 바보같다는 스스로에 대한 답답함도 있다. 그걸 조금이라도 해소하고자 국내선이지만 비지니스석으로 예매해서 나를 좀 대접해주고 싶엏ㄴ다. 약간 설레는 마음을 안고 갔는데 아시아나 국내선 비지니스석은 그냥 좌석 앞뒤 간격이 조금 넓은 게 다였다. 그리고 수속을 먼저 해서 빨리 타고 먼저 내린다는거 말고는 별 다른게 없어서 좀 실망했다. 그동안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 너무 환상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실망감이 컸다. 있는 사람들과 나는 너무 거리가 멀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못난 짓은 이제 그만 해야겠다.


비행기에서 창밖을 오랫동안 내다봤다. 구름은 봐도봐도 신비롭고, 저기 보이는 수평선과 지평선이 맞닿은 아련한 선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실감나게 하는 입체감을 주어 언제나 놀라울 뿐이다. 계속 눈이 빠져라 보고 있었더니 파란 하늘과 바다가 서로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어디가 바다고 어디가 하늘인지 착각이 들었다. 경계를 두고 뒤집어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도 했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날씨인데 나는야 나름 날씨 요정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좀 편히 먹으려고 한다. 제주 공항에 도착하니 날씨가 좋아서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드디어 나혼진 힐링 여행을 왔구나 실감이 났다. 스텔라가 도착할 때까지 2시간의 텀이 있어서 혼자 앉아서 책을 읽다가 화장실 다녀왔다가 점심 때가 되어서 고기비빔국수를 사 먹었다. 이제 식당에서 혼밥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나 자신, 아주 씩씩하게 잘 나이들고 있다.



2시간이 지난 후 여행 메이트인 스텔라와 상봉하고 렌터카를 찾아서 김녕으로 향했다. 제주에서 몇 년 살았던 그녀가 추천하는 곳이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좋다고 했다. 제주스러운 곳, 제주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을 잘 아는 사람이고 나와 취향이 비슷하니 이끄는대로 다니면 나는 안심이 된다.


김녕 해수욕장의 바다빛깔은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하는 에메랄드 빛의 그라데이션 그 자체다. 모래는 하얗고 부드러웠으며 물은 또 얼마나 맑은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 맑은 물속에 다양한 온갖 생물들이 살고 있었다. 보말은 사람들이 많이들 잡아갔고 꽃게도 많이 보였다. 그럼에도 바위 곳곳에 붙어있는 조개류나 갑각류를 보면서 아직은 제주 바다가 이렇게 생명력 넘치고 맑고 깨끗해서 너무 다행이다, 오래오래 그렇게 계속 지켜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낮에는 더워서 그런지 9월 27일인데도 불구하고 물놀이 하고 일광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물에 풍덩 뛰어들고 싶었지만 발을 담그는 것으로 만족했다.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갈때 나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가슴속까지 시원해진다. 특히 거친 바위 표면에 철썩이며 부딪치는 소리는 뭔가 말할 수 없는 쾌감을 준다. 그래서 내가 바다를 사랑하나보다. 느긋하게 앉아서 바다멍을 한참동안 했다. 오늘은 이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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