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등반을 하려고 픽업도 해주고 등산 장비도 빌려주는 게스트하우스를 예약 해뒀다. 한라산 입산 허가도 미리 신청해서 받아뒀다. 해발 1950미터의 국립공원인 한라산은 등반하는 동안 날씨도 변화무쌍하기에 출입 통제가 언제 될지 모른다. 여러 번 오는 사람들은 능숙하겠지만 우리는 처음이라 게스트하우스 주인장님이 설명해주시는 내용을 열심히 들었고 필요한 장비인 스틱, 배낭, 무릎보호대, 보온병, 작은 돗자리를 빌렸다. 아침에 간단한 조식과 정상에서 먹을 김밥을 제공해주는 곳이다.
4인 1실인 공간이었는데 우리 둘과 함께 방을 쓰는 한 명이 있었다. 내가 글쓰기 하느라 커튼을 치고 내 침대에서 노트북을 하고 있었는데 그거 급한거냐며 시끄럽다고 해서 아주 깨갱했다. 그녀는 한라산을 3번 올랐단다. 말투에서 짐작했지만 아주 당차고 냉정해보이는 인상이었다. 나는 쉽게 잠이 오지 않아 겨우 눈을 붙였고 자는둥마는둥하다가 새벽 5시에 일어나 5시 30분부터 준다는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다. 준비된 음식은 정말 간단했다. 버터나 잼을 발라먹을 수 있는 토스트와 시리얼이어서 우리는 빵만 챙겨서 나왔다.
게스트하우스 픽업 차량을 타려면 정해진 시간에 등반을 완주하고 주차장에서 기다려야하는데 우리는 첫 등반이고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그냥 우리의 렌트카로 출발했다. 픽업 서비스는 아차하면 시간을 못맞출 수도 있고 그러면 대중 교통이나 택시를 힘들게 이용해서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와야하는 것이 불안했다. 시간은 더 걸리지만 관음사 코스보다는 완만한(그리고 지루한) 성판악으로 가서 다시 성판악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등반하기로 했다.
한라산국립공원 주차장으로 가는데 비가 내려서 심란했다. 우리 둘다 날씨요정인데 왜이래? ㅠㅠ 챙길까말까하다가 우비도 안가지고 왔는데 어떡하나. 비가 제법 와서 길이 미끄러울텐데 올라갈 수 있을까 등등. 그런데 정작 산속의 날씨는 급변해서 비가 왔다가 그쳤다가 순식간에 바람이 불었다가 하늘이 개었다가 아주 변화무쌍했다. 6시 20분에 입산을 시작할 무렵에는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해서 정상에서 맑은 하늘을 보기는 힘들겠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오르다보니 중간중간 비가 그치고 바람이 구름을 몰고 가서 파란 하늘을 살짝 보여주기도 했다. 쨍쨍한 날씨보다 오히려 등산하기에는 좋은 기온과 날씨였다.
한 가지 일에 하루를 꼬박 써본 경험이 거의 없다. 게다가 다시 내려와야 하는 것을 굳이 왜 오르냐고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묻는다. 등산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산을 걷고 오르며 느끼고 얻는 그 무언가를 어떻게 말로 설명해야 할까. 해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등산도 그렇다. 그리고 무려 해발 1950미터 정상까지 올라가서 하늘과 가까워지고 제주를 내려다보고 백록담을 보는 경험은 얼마나 귀한가. 내 두발 디딛으며 해낸 일이다.
왕복 9시간 코스인데 정상에 있는 백록담 글자가 새겨진 바위에서 인증샷을 찍으려고 기다린 1시간 반이 추가되고 사라오름도 중간에 다녀왔더니 총 11시간쯤 걸렸다. 1키로가 더 긴 코스인 성판악으로 올라서 성판악으로 내려와서 많이 걸었고 시간도 너무 길게 늘어졌다. 이렇게 무리해본적이 없어서 내려올때는 허리랑 무릎도 아프기 시작해서 최대한 조심조심하며 내려왔다.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등산길은 묘한 느낌이었다. 계단은 또 어찌나 많은지 스틱이 끼일까봐 그것도 엄청 신경썼다. 그래도 왕복 성공하고 등반인증서도 발급받아서 뿌듯하구먼.
걷는 동안 나 자신과 계속 이야기하고 이야기하고... 내 안의 소리와 생각에 집중하면서 나를 만났다. 왼쪽발 두 번째 발가락에 껍질이 까져 나갔고 새끼 발가락은 물집이 잡혀 걸을때마다 신경이 쓰였지만 꾹 참았다. 언젠간 산티아고를 완주한 스텔라처럼 나도 순례길을 꼭 걷고올테다. 한라산 등반은 그 연습의 맛보기 정도라고 생각해야지. 언젠간 산티아고에서 온전히 나를 만나고 내 인생의 의미, 질문과 답에 대한 마음의 소리,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얻게 되는 메세지 등을 체험해보고 싶다. 어쨋든 이제 난 한라산 등반 완주한 여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