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23] 나를 새롭게 알아보다

- 혼자 하는 여행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기

by 은가비

오늘은 아침에 범섬을 보러 갔다. 3월에 제주에 왔을 때 법환동에 있었다고 범섬이며 그 근처가 낯설지 않았다. 법환 포구에 주차를 하고 근처를 둘러보는데 여기에도 바로 앞에 용천수가 나오는 곳이 있었다. 오늘 날씨도 쨍해서 서귀포는 30도를 웃돌아서 반팔반바지를 입고도 땀이 줄줄 흘렀다. 더워서 용천수로 들어가 발을 담그니 역시나 차갑고 개운해지는 이 기분으로 발의 피로가 좀 풀리는 것 같았다.


셀카를 찍으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이렇게저렇게 찍어보고 있었는데 사진을 부탁하는 청년이 있었다. 사이클로 제주를 일주하는 청년이 사진을 부탁하기에 여기저기에서 포즈를 취하도록 권하며 여러 장 찍어주었고 그도 나를 찍어주었다. 제주에서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알아보고 사진을 찍어주게 되는 경우가 생겼는데 알아서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고르라고 아주 여러 장 찍어주게 된다. 포구앞 소품가게가 너무 예뻐서 들어갔는데 상품의 종류가 많아서 진짜 사고 싶은 게 많았다. 몇 가지 안 산거 같은데 7만원이 훌쩍 넘어서 깜짝 놀랐다. 아주 많이 자제하길 잘했다.


책방 투어까지는 무리고 한 군데 정도는 차분하게 둘러보고 싶어 검색했더니 가까운 곳에 '취향의 섬 북앤띵즈'라는 곳에 있었다. 막상 도착해보니 약간 외진 곳이었고 이런데 책방 있는거 맞나 싶을 정도로 주변에는 주택도 드문드문 있는 곳이어서 고민하며 찾아 들어갔다. 다행히 앞에 작은 간판을 세워놓아서 제대로 찾아왔구나 안심하며 조심히 안쪽으로 들어가보았다. 책방 건물이 보이지 않아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데 야자수와 나무들이 줄지어 있어 조금 비밀스럽게 느껴졌다.




쭉 들어가니 안쪽에 주택을 개조한 2층집이 보였고 1층은 책방, 2층은 펜션이었다. 이름이 '귤나잇'이라 너무 귀엽고 발랄한 느낌이다. 숙소 안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책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아기자기했고 유리창 밖으로는 귤밭이 펼쳐져 있어 그대로 그림같고 액자같은 풍경이 되어주었다. 귤이 익었을 때 잔뜩 매달려있을 노랑주황할 그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예쁠 것 같았다. 귤이 한창 일때 귤따기 알바 며칠 해보고 싶은데 기회가 있으려나.



사려고 고른 책은 헤르만 헤세의 <밤의 사색 >이다.

책방 주인의 설명에 마음이 끌리기도 했고 앞부분을 펼쳐서 조금 읽어 보았는데 문장들이 너무 좋았다. 차분히 필사하면 글쓰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문장이랄까. 곁에 두고 오래오래 곱씹으며 읽어봐야지. 검은 고양이의 눈동자가 빛나는 표지도 묘하고 강렬한 끌림이 있어서 이 책은 매력적으로 보인다.

혼자서 차를 몰고 동선이 너무 멀지 않은 곳 위주로 검색해서 다니니 자유롭고 좋다. 법환 포구에서 올레 7길과 외돌개가 있는 곳도 생각보다 가까웠다. 땅콩 아이스크림을 사며 휴게소 매점 아주머니께 걷는 코스가 기냐고 물어보니 "그냥 갈 수 있는 만큼만 걸어보면 되지. 여기 예뻐서 되게 유명해. 좀 걸어봐." 하셔서 그말에 불끈 잠깐 힘이 났다. 산책하듯이 조금 걸어보았는데 철썩이는 파도 소리에 가슴이 뚤리듯 시원해져서 한참을 쳐다보고 파도가 만들어내는 소리를 들었다. 끈적이는 땀과 더위에 살짝 지쳐서 숙소에 들러 씻고 좀 쉬었다.


잠깐 눈붙인 사이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나보다. 저녁 약속 장소로 가는 중에 산방산이 오른쪽으로 보였는데 비 내리고 물안개가 끼어 아련하고 뭔가 아우라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 산방산이 멋있었다. 높고 거대한 산방산을 가까이에서 보니 웅장함과 강인함이 전해졌다. 단단하고 힘이 느껴지는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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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마지막 밤이다. 이번 여행에서 나 자신을 좀 더 들여다보고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했다. 해야할 일들로 수시로 머리가 복잡했지만 여행 초반보다는 훨씬 마음이 정리가 되었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거라는 어떤 계시나 싸인같은 게 필요했는데 여행하는 날씨도 좋았고, 다니면서 보는 자연을 통해 용기도 얻고 기운을 받았다. 이제 육지로 돌아가면 여기에서 가득 담아가는 제주의 힘으로 잘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욕심이 또 하나 생겼다. 언젠간 나도 제주도에 나의 아지트를 가지고 싶어졌다. 작고 소박한 공간이라도 세컨드 하우스같은 집을 마련하고픈 마음이 강해졌다. 꿈꿔 봐야지. 이루어져라 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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