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아들이 벌써 대입 원서를 쓰다니
인생을 살다보면 늘 남의 일이라 생각했던 일들이 어느 날 문득 내 일이 되어 다가오는 걱정과 당황스러움을 겪게 되는 때가 있다.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삶이라 모든 게 다 처음이라 매 시기마다 적응하는 게 쉽지 않다.
부모가 되고 자식을 키우면서 학부모가 되어 살다가 이제는 어느덧 큰 아이의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다. 어쩌다 보니 사십 대 중반이 된 것도 낯설지만 내 아이가 벌써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너무 갑자기 훅 늙어버린 기분이랄까.
이번주부터 2025학년도 대학입시 수시원서 접수가 시작되었다. 나름 치밀하게 계획하고 대체적으로는 오차없이 살아왔는데 인생은 자주 나를 예상밖의 상황에 놓이게 했다. 아들이 실용음악으로 대학에 가겠다고 할 줄이야. 일단 뭘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열심히 하는 나는 태교도 열심히 했고, 어렸을 때는 정말 책 육아를 열심히 했고, 엄마표며 체험 학습, 품앗이 등등 온갖 열성을 쏟은 엄마였다. (내 별명은 참고로 열정만수르)
그렇게 키운 아들은 어렸을 때 언어감각이 발달했고 제법 똘똘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한껏 기대를 받고 자랐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공부를 아예 놓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더니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기대를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한 번씩은 무릎이 꺾이고 마음이 힘들었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 되었던 것일까, 내가 잘못 키웠나하는 생각으로 빠지면 그날은 한없이 우울의 늪으로 빠져든다. 자식 자랑하는 엄마들은 만나기 싫고 서서히 인연을 끊는 것으로 나를 지켜왔다. 나 자신으로는 어디가서 그리 부끄럽지 않은데 자식들 이야기가 나오면 한없이 작아지고 할 말이 없어서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날들을 힘들게 지나왔다.
이제는 정신승리의 끝판왕으로 버티고 있다. 무기력한 아이도 많고, 학교에 가기 싫어 자퇴하는 아이들고 많고, 심지어 자해나 자살을 시도하는 주변의 이야기까지 들으며 "그래, 학교에 매일 가는 게 어디야." "뭐라도 하고 싶다는 게 있다는 게 다행이지." "상위 몇 프로 말고는 공부해봤자 희망고문밖에 안돼." "어설프게 중간 성적으로 괴로운 아이였더라면 더 힘들었을거야." 등등 오랜 시간동안 나 자신을 얼마나 달래고 달랬겠나.
수시 원서로 7군데를 작성하며 나는 몇 명 뽑지도 않으면서 원서비는 왜이리 비싸게 받는가 하는 것까지 속상한 것 투성이였다. 혹시나 놓치는 항목이 없는지 긴장되서 꼼꼼히 살피려는데 대충 휙휙 보는 아들놈도 미웠다. 어디 한 군데라도 붙기만 하라고 말은 했지만 이걸 전공해서 대학을 나와도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염려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 악몽도 꾼다.
주변에 보면 생각보다 아이가 없는 부부가 많다. 가끔은 그들이 참 평온해보여서 부럽기도 하다. 가보지 않은 길, 내가 살아보지 않은 인생은 부러운 것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법이고, 인생은 멀리서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하니 그들의 속사정과 마음까지는 나는 알 길이 없다. 그저 너무 힘들때면 전우인 남편과 맥주 한 잔 기울이며 "무자식이 상팔자인거 같아." 했다가 갑자기 화가 치밀어서 "왜 결혼하자고 했어? 어?! 겁도 없이 왜 애는 둘이나 낳자고 했냐고! 다음 생에는 아는 척도 하지마 알았어?"로 꼬장을 부리고, 엄마가 된 핑크빛 감동에 물든채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은 아이를 낳은 거야."라는 말을 함부로 뱉었던 게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매번 회자한다.
부모 자격증을 받아야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나는 부모가 되어 버렸으니 낳은 책임을 다 해야지. 일단 원서는 작성했고 실기 시험보는 날까지 아이마음과 컨디션을 잘 관리할 수 있도록 엄마 역할을 열심히 해줘야지. 고3 엄마들 힘내보아요. 아이도 부모도 최선을 다 한 후에 잘되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수밖에. 11월에 웃으며 기분좋게 다같이 맥주 한 캔씩 부딪치며 수고했다고 말할 수 있는 어느 멋진 저녁이 오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그리고 무자식이 상팔자인지 아닌지는 내가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