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회색 지대 인터뷰 집
센이
#직장 및 창업 경력 7년
#아이 둘, #사업가
센이님은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과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 결혼 전 투자자문사, IR, 창업의 길을 걸으며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왔다. 창업했던 스타트업이 서비스를 론칭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고 출산 이후 지금 까지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키워내고 있었다. 결혼 후 자신의 커리어 성장에 영향이 있을까 봐 출산을 고민하던 후배에게 그녀가 건넨 조언은 ‘육아는 곧 사업이야.’였다. 육아와 일을 구분해서 생각해 왔던 나에게 그녀의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 육아를 ‘사업’이라고 하셨어요. 어떤 지점에서 육아와 사업이 같을까요?
육아와 집안일 자체가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과 같아요. 모든 분야를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너무 몰라서도 안되고 우리를 둘러싼 주변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지점에서 상당히 비슷하죠.
아이들과 집에 생긴 이슈사항을 그저 현상으로 보지 않고 어떻게 하면 시스템화시켜서 내가 덜 힘들 수 있는지, 아이들을 편하게 다룰 수 있는지를 고민해요. 밥 먹을 때에도 에너지를 덜 쓸 수 있는 효율적인 방식으로 식사해요. 요리해서 그릇째 식탁 위에 올려놓고 그릇이랑 수저통도 통으로 놓아요. 각자가 퍼먹을 수 있게요. 어릴 때는 안전상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아이들도 충분히 조심하면서 먹고 싶은 만큼 덜어 먹어요.
청소할 때에도 단순히 더러운 부분을 청결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면 끝도 없거든요. 세균이 번식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왜 물 때가 생길까? 근원적인 문제를 먼저 생각해 보고 그걸 해결하고자 노력하면 일이 훨씬 줄어들어요.
만약 본인이랑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으면 자기 자신을 빨리 파악해서 그 한계를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은 아웃 소싱 해야 해요. 아이를 잘 케어해 줄 수 있는 기관을 알아보든가, 청소를 정기적으로 업체에 맡기든가, 반찬 가게를 이용한다든가 말이죠. 어떤 연예인은 밥 해주는 사람, 교육해 주는 사람 등등 해서 부모 외에 육아를 위한 도우미가 4명이 있다고도 들었어요. 물론 돈이 문제긴 하지만 투입 대비 산출에 효율이 떨어지면 빨리 외주 줘야죠. 그렇게 업무를 쪼개어 나누고 나서도 엄마만 할 수 있는 부분은 여전히 존재해요. 최근에 저와 아이 포트폴리오가 16년생, 18년생으로 나와 같은 연예인을 보면서도 생각했어요. 관리받으며 사람들 부리며 살 텐데, 그 예뻤던 얼굴도 저렇게 늙게 하는 육아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구나 하고요.
- 경영목표가 있다면요?
아이들의 온전한 자립과 독립이요. 건강한 성인으로 잘 독립할 수 있도록 키워내는 것이 나의 목표예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가 선택한 방법은 공부하는 거예요. 이 육아라는 것이 인류가 탄생 한 이래로 이전의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 반복해서 해온 행위잖아요. 이미 수많은 연구 결과들이 좋은 육아 이론들을 내어 놓았어요. 나만 힘든 것 같고 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고 하지만 그 고민조차도 누군가는 이미 다 해왔던 사실은 특별할 것 없는 그런 고민인 거죠. 물론 내가 어떤 육아에 관한 지식을 얻고 그대로 실행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알고 후회하며 고쳐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것과 그냥 모르고 계속 잘못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고 생각해요. 육아가 힘든 이유는 처음이라서 잘 몰라서 힘든 거예요. 알면 좀 덜 힘들어져요. 문제를 규정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돌파구가 생겨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고 나에 대한 인지도 높아지면서 성장하는 기분이 느껴져요. 종종 육아에 관해 공부하는 사람들한테 ‘어우 참 열심히 산다. 나는 애 때문에 바빠서 그럴 시간도 없다.’ 이러는 사람들이 있는데 악순환의 고리라고 생각해요. 문제가 뭔지 모르니까 그 문제를 반복하면서 악화시키는 거죠.
공부를 할 때 중요한 것은 시중에 나와 있는 비 전문가들이 가공한 정보는 선호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개인의 경험과 생각이 들어간 책이나 블로그는 읽기 쉽고 재미있지만 내 아이가 가진 고유의 특성이나 나의 육아 목표와 같지 않다는 지점에서 순수한 정보를 왜곡된 시선으로 볼 가능성이 있어요. 내가 정보를 얻고자 하는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전문가들의 검증된 논문이나 연구 자료, 이론 등을 참고하려고 해요.
아이가 아토피를 앓았던 적이 있어요. 그때 아토피 관련 국내외 양/한방 서적 및 논문 자료를 번역, 스크랩하며 공부했었요. 아이 피부 병변의 진행 상황, 시기별 처방받은 약과 치료법 등을 PPT로 정리해서 최근까지 가장 활발히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대학 병원의 교수를 찾아갔었어요. 교수님도 저의 열정에 놀라셨는지 관련 행사를 알려주셔서 전문적인 정보도 얻게 되었었죠.
- 육아도 일처럼 하고 계시네요. 일에 대해 정의를 내려본다면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시간을 쓰는 것’은 모두 일이에요. 사실 엄마라는 직업도 가정과 아이들에게 시간과 정성을 쏟는 행위를 하는 것이기에 ‘일’이죠. 엄마만큼 열악한 노동 환경에 놓인 사람도 없어요. 주 7일 24시간 근무에 과로로 인한 산재도 인정받을 수 없고요. 체력과 감정을 모두 갈아 넣어도 그 누가 10원도 안 줘요. 솔직히 주식도 해보고 창업도 해봤지만 삶을 살아가는데 집안일과 육아가 제일 쓸모 있어요. 깨닫는 것도 많고요.
사실 사업처럼 생각하며 육아를 해내고 있긴 하지만 언제나 항상 이 일이 행복하다고 느끼진 않아요. 그래서 너무 힘들 때는 전업주부인 지금의 내 삶은 수행자, 종교인의 삶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설거지나 청소 같은 집안일뿐만 아니라 아이에게 간단한 생활 습관을 가르쳐주고 길들이는 것 등등하기 싫어도 반드시 참고, 해야 하는 일들이 존재하잖아요. 이게 가끔씩 혹은 내가 원할 때 하면 할 만해요. 심지어 적성에 맞나? 싶기도 하고 즐거울 때도 있죠. 템플스테이도 체험해 보고 오는 사람들은 할 만하다고 하고 심지어 힐링된다고 하잖아요. 1년 365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마당 쓸고 명상한다고 생각하면 절대 그렇게 말 못 할걸요. 속세에서 내가 이루고 싶었던 혹은 이룰 수 있다고 믿어왔던 눈에 보이는 사회적 성취나 보상들을 내려놓고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들에 전념하고 꾸준히 해내는 삶이 전업주부의 삶이에요. 회사 생활 할 때나 창업했을 때에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성취하고 한 단계씩 올라갈 때마다 뭔가 이뤄지고 있다. 내가 연봉이 얼마큼 올라가고 있다고 느낄 수가 있는데 집안일이나 아이를 돌보는 일은 나에게 외부에서 주어지는 가치 적인 보상이 없어요.
대가 없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견디며 꾸준히 해내고 있는 육아 하는 엄마들이 그 어떤 직업보다 더 대단하고 멋진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녀의 경영하듯 육아하는 모습을 처절하다 혹은 발악한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그 마음 안에 자리 잡은 생각 중 하나는, 집안일이나 육아는 당연하고 별 것 아니며,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일 것이다. 그녀는 회사 일이든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일이든 대충 하는 사람은 어떤 방면으로도 성장하지 못한다고, 회사 일은 내가 조금 대충 해도 운 좋게 티가 안 날 수 있지만 집안일은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 육아에 대한 자부심과 좌절감이 함께 느껴지는 것 같아요. 참 모순된 감정인데 너무 공감되네요.
맞아요. 웬만큼 표현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면 육아에 대해 느끼는 복합적이고 모호한 이 감정들을 표현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너도 해봐라, 너도 애 낳아보면 알아’라고 밖에 말 못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요즘 젊은 사람들은 경제적인 환경도 도와주지 않는데 가치 적인 부분에서도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기가 힘들죠.
그래서 만약 뭔가 제도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아빠들 회사 1년 육아 휴직을 강제로 줘서 엄마들에게만 비중을 두지 않는 함께하는 육아 분위기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아빠들 아마 1년이라도 애들 옆에서 24시간 케어해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걸요. 애들 어린이집 보내 놓고 문화 센터 다니며 팔자 좋게 수영하는 게 아니라 그 고된 시간을 견뎌내고자 몸부림치는 생존의 발길질이었음을, 남편 돈 쓰면서 허구한 날 네일숍 가서 꾸미고 있는 게 아니라 내 감정의 밑바닥까지 드러난 어느 날 그래도 기분 전환하고 다시 힘내보려는 갸륵함이었다는 걸요. 독박 육아 진짜 심각해요. 독거노인 고독사 방지하기 위해 국가에서 시스템화시켜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방문하는 것처럼 독박육아 위험군 진단 체계를 만들어서 주양육자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상태, 가정 내 위험지수 이런 것 점검하고 특정 점수 이하면 부모교육받게 했으면 좋겠어요.
- 뭘 하든 에너지가 넘치시는 것처럼 보여요. 센이님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뭐예요?
저를 움직이는 동력은 호기심이에요. 어떤 분야에 대해 몰두해 무언가 공부하는 동력도 호기심이고요. 살다 보면 어떤 이벤트, 누군가의 말, 영화를 통한 깨달음으로 인생의 전환점이 생기기도 하잖아요? 그것들도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있어야 계기들에 노출될 수 있고 그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젊었을 때에는 돈을 많이 갖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저의 동력이었어요. 그래서 직업도 돈이 모일 수 있는 투자자문사, IR, 스타트업 창업의 루트를 걸었던 거고요. 그런데 원하는 시기에 생각했던 것만큼의 성공을 얻어내지는 못했어요.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돈이 조금 더 있었으면’으로 결론이 나버리니까, 조금 더 끈기 있게 밀어붙여 볼만한 제 안의 동력이 없더라고요. 내가 그 일을 좋아했거나 힘들어도 버텨 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믿었다면 돈이 없어도 지속할 수 있었겠죠.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으면 저 또한 정성과 에너지를 쏟아부을 거고,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그 가치가 돈을 벌어다 줄 수도 있을 텐데 말이에요.
이제는 내가 어떤 일에 시간을 투자할 때 에너지가 더 생기는지, 어떤 사람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지를 고민하게 돼요. 어릴 때는 내 안에 못나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돈을 좇게 했던 것 같아요. 내가 남들보다 뒤처질까 못나 보일까 불안한 마음이었죠. 요즘 엄마들 사이에서도 재테크 열풍이 불면서 부동산, 경매, 코인투자 이런 것들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것도 일종의 불안이죠. 그런데 불안에서 기인한 선택은 나에게 적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을 때 기대했던 것만큼의 보상이 따르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 센이님이 가진 호기심 많고 활동적인 에너지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의 기준, 회사의 경영활동에 쓰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아이를 키우다 보니까 저는 아이들을 통해 많은 걸 배우고 깨닫는 사람이더라고요. 아이들과 관련된 일에는 죄책감도 쉽게 느끼죠. 모든 순간 내가 마음먹은 대로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항상 최선을 다해 노력해요. 행여 실수했더라도 언제든 다시 바꾸고자 노력할 수 있는 전업주부라는 포지션에 있다고 생각해요.
에릭슨의 심리 사회적 발달 이론에 따르면 인간에게 미리 정해진 8단계의 발달 단계를 성공적으로 완수해야 정상적이고 건강한 개인으로 발달해 나아갈 수 있다고 해요. 어느 단계에서 실패한다면 그 단계와 관련한 정신적 결함을 갖고 살아가게 되죠. 아이들에게 중요한 시기에 내가 결핍을 줄 수밖에 없었다면 저의 죄책감은 그 어떤 사회적 성공으로도 씻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보다 훌륭한 워킹맘이었던 저희 엄마도 지난 시절 더 많은 시간을 자식들에게 할애하지 못했음에 죄책감을 갖고 있어요. 아직까지도 당신 마음에 안 드는 저의 어떤 부분을 발견하시면 그것이 본인이 챙기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하시죠
엄마라는 것도 내 삶의 영역 중 일부인 거예요. 지금이 그저 엄마의 역할이 다른 것 보다 크게 부각되는 시기인 거죠. 그리고 중요한 건 언젠가 엄마로서의 비중이 줄어드는 시기가 와요. 아이들에게 지금의 엄마의 자리가 중요하고 커다란 이 시기를 어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아이가 독립하고 나서도 그 공허함까지 자연스럽게 받아 들 일 수 있을 것 같아요.
- 인터뷰한 소감은 어떠세요?
이런 인터뷰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육아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인터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사회적으로 외면했던 육아라는 영역이 인터뷰나 여러 가지 자극들로 인해 수면 위로 올라왔으면 좋겠어요. 육아를 하는 사람들이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것, 부부가 함께 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널리 퍼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엄마들이 이 역할도 인생의 한 과정이고 엄마라는 역할로 인해 삶이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어요. 저 또한 그렇게 응원받고 싶고, 오늘 인터뷰를 통해 제가 하는 일과 생각들이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받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센이님과의 인터뷰는 롤러코스터 같았다. 열정 가득한 삶의 태도에 신이 났다가, 갈등 상황에 긴장됐다가, 사회적 관습과 분위기에 압도되어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이 들 때는 허탈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었고 흥미로웠다.
그녀는 과거 여성 정책과 관련한 정부 주관 토론회에 참여하기도 하고 모 방송사에 한국의 저출산 문제와 관련된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방영되었던 인터뷰를 이야기하며 아쉬운 얼굴로 그녀가 말했다. ‘그 인터뷰는 진짜 중요한 얘기는 할 수도 없게, 너무 뻔한 질문에 너무 뻔한 답만 유도했더라고요. ‘애 키우는데 돈 많이 들어요.’ 이렇게 결론 내리면 돈 주면 해결될 것 같잖아요. 본질은 그게 아닌데… 제가 쓴 단어 좀 그대로, 세게 써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한 말, 의도, 그대로 담기게’
센이님의 의도와 생각을 고스란히 담고 싶었지만, 맥락 상 삭제할 수밖에 없는 내용들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인터뷰가 회색 지대에 서있는 엄마들에게 ‘육아도 사업이야,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 뭘 고민해!’라고 들릴 수도 ‘이렇게 까지는 못하겠다. 나는 돈 벌 테니 집안일이고 육아고 다 외주 주자!’라고 생각하게 할 수도 있겠다. 어느 쪽이어도 좋다. 그리고 어느 쪽도 아니어도 좋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회색 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 달라는 말에 그녀가 내어 놓은 답변으로 이곳에 다 담을 수 없었던 내용들의 아쉬움을 대신해 본다.
“조언이요? 해줄 수도, 해줄 필요도 없어요. 겪어봐야 알아요. 각자의 상황과 위치에 맞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선택해야죠. 그러고 나서는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면 돼요. '이렇게 살면 60대 즈음이면 나 참 괜찮은 사람이 되어있겠다.' 싶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