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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다 Apr 06. 2023

당신이 정답이에요. - 신중오

육아 회색 지대 인터뷰집

#육아하는 아빠

#6살 딸



 중오님은 6살 된 딸아이를 아내와 함께 키우고 있다. 간호사인 아내가 생계유지를 위한 경제활동을 도맡아 하고 있고 중오님은 각종 집안일과 소소한 용돈벌이를 해가며 아이를 위한 일, 가족을 위한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육아하는 아빠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육아휴직기간 이후로도 주 양육자가 되어 아이를 양육하는 아빠는 흔하지 않다. 사회적 통념에서는 일의 영역에 있어야 하는 아빠가 양육의 영역에 있으면서 느끼는 생각들은 무엇인지, 혹시나 일과 양육 사이에서 고민하며 회색지대에 서 있거나 그 언저리에서 방황하고 있지는 않은 지 궁금해졌다.   


- 육아를 하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아이를 아빠인 제가 꼭 양육하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를 양육하고 가족을 꾸리는 일에 대한 생각은 분명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이를 볼 때 그래도 부모 중에 한 명은 반드시 아이를 돌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내도 제 의견에 동의했고요. 처음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1년간은 간호사였던 아내가 휴직을 하고 아이를 돌봤었는데, 제가 일 때문에 바빠 아내가 거의 혼자서 아이를 돌보다시피 했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체력적으로나 심적으로 상당히 힘들어했어요. 그 힘듦이 결국은 우리 가족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는 다시 일터로 나가고 제가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양육하기로 마음먹게 되었죠.


-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것, 경력이 단절된 것 등에 대한 불안함이나 걱정은 없으셨나요?

 음… 없었어요. 먼저 ‘돈을 벌지 않는 나’라는 지금의 모습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원한다면 언제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나가서 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마 대학교 다닐 때부터 아파트 건설현장이나 다양한 일들을 해본 경험과 그간 일해왔던 조직에서 대게 좋은 평가를 받아 왔던 시간들이 있어 확신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언제든 어떤 일이든 해볼 수 있고 뭘 하든 엄청 잘하진 않아도 평균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경력단절에 대한 부분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제가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했을 당시 고민했던 유일한 명제는 ‘가정이 중요하냐, 일이 중요하냐’ 였어요. 돈을 벌고,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일 적인 성취를 이루어 나가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뭔가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가족을 선택하지 일을 선택하지는 않을 거거든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내가 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은 종종 가족을 꾸리는 것, 아이를 키운다는 것에 대해서 누군가는 ‘내가 무언가를 하든 안 하든 그냥 큰다고 말하기도 하잖아요. 물론 그 말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아이 양육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무언가 있어서 그렇게 말한다고 생각해요.


- 아이를 잘 키우면 어떤 모습일 것 같으세요?

 밝고 명랑한 아이였으면 좋겠어요. 본인이 생각했을 때 ‘나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 그렇게 자라왔다.’ 고 믿고 있고요. 그래야 타인과 잘 어울려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중 하나가 ‘표현하는 사랑’ 이거든요. 말로 드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조용히 눈 맞추고 웃어주는 것, 따뜻하게 안아주거나 먼저 손을 내밀어 주는 것 등등에서도 온전히 내가 존중받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관계가 바탕이 되어야 갈등이 생겼을 때에도 문제를 해결하는 것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뭘 원해서 저렇게 표현하고 있나?’를 먼저 궁금해할 수 있어요. 사랑을 표현할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아이라면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공감해 줄 수 있는 마음도 자연스럽게 커질 거라고 생각해요.


- 다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육아는 일과는 달리 생산적인 활동은 아니잖아요.

 저는 꼭 해야 하는 집안일을 제외하고는 대게는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잘 안 들어요. 육아하기 전까지는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해 왔거든요. 단 일분일초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죠. 그런데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라는 말은 목표가 존재해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설명하는 개념인 거잖아요. 제 목표를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받는 아이로 양육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육아와 교육을 효율적으로 하며 내가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있으니 저는 효율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와 아이의 관계도 더 깊어진다는 면에서 분명 생산성이 있었고, 아이의 가치관과 지식, 지혜, 즐거움, 우리 가족의 행복 또한 생산해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 지금과 같은 생활은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아이가 자라고 나면 아무래도 양육에 필요한 시간은 줄어들잖아요.

 양육에 필요한 시간이 줄어든다면 제 자유시간은 늘어나겠네요. 지금 당장 생각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아이가 다 자랐다고 느끼는 순간은 아이가 자라 봐야 아는 거고요. 지금은 부모가 곁에서 항상 지켜주면서 나는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만약 언젠가 아이가 저를 필요로 하지 않는 그때가 온다면 그때 가서 고민하고 준비하겠죠. 당장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문제가 생기지 않았는데 미리 불안해할 필요도 없고요. 일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몰라요. 제가 불안한 최악의 상황은 누군가 갑자기 사고로 다치거나 질병으로 건강이 악화되는 것뿐이에요. 그 외에는 웬만해선 다 감당 가능하고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내 가족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사는 지금의 삶이 충분히 만족스러워요.



 중오님이 일과 관련된 주제로 인터뷰를 이어가다가 덧붙인 말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제가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면, 이미 불안을 느꼈기 때문이겠죠?’ 바꿔 말하자면 불안하기 때문에 뭔가 준비한다는 말이었다.

미래의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까 봐 불안한 마음, 아이의 성장으로 인한 공백이 나를 외롭게 할까 봐 불안한 마음, 그 불안한 마음을 덮기 위해 우리는 무언가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때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내가 정말 생각한 대로 느끼게 될지, 상황이 변하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인데, ‘아마 그럴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라는 막연한 불안함으로 오늘의 기쁨과 즐거움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다.



- 육아하면서 고민은 없으세요? 아이를 키울 때 꼭 지키고자 하는 원칙이 있거나 특별한 노하우가 있을까요?

  저는 아내가 간호사다 보니 아이의 건강과 관련된 것은 모두 아내에게 위임하고 있어요. 그 외에 아이를 다루는 방법이나 교육하는 부분에 있어서 다양한 루트를 통해 이미 가지고 있는 육아관이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한 바람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책이나 EBS 다큐멘터리 등을 보면서 간접경험하며 제 나름의 육아관을 만들어 왔어요. 새로운 고민이 생겨서 이를 해결하고자 자료를 찾으면 대부분은 원론적인 이론을 이야기하거나 이미 제 방식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더라고요. 그래서 고민이 있을 때도 있었지만 곧 잘 해결되곤 했던 것 같아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표현하는 사랑’이 제가 양육을 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 중 하나이고 나머지 하나가 ‘신뢰를 잃지 않는 것’이에요. 사랑과 신뢰를 저의 육아에 대한 철학이라고 생각하고 지켜내고자 노력하면 아이와 겪는 갈등이나 고민들이 타인의 어떤 조언이나 교육을 받아 공부할 만큼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아요. 그 외에 제가 신경 쓰는 부분은 아이가 예의범절은 꼭 지키게 하는 것 정도예요.


- 신뢰를 잃지 않는 건 어떤 것을 말하는 거예요?

 가장 쉽게 접근하자면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어요. 아이가 슈퍼나 마트에 가서 작은 간식이나 물건을 사는 일을 좋아해요. 제가 하루에 하나씩 사자고 하면 아이는 고민하다가 오늘사고 싶은 거, 내일사고 싶은 것을 나누어 오늘은 하나만 사거든요. 하루는 티니핑 인형이 가지고 싶다고 했는데, 인형은 다음에 할아버지에게 부탁하자고 이야기했고, 아이는 2달 정도 기다려서 할아버지에게 인형을 받았어요. 여러 가지를 사고 싶어도 울며 떼쓰거나 조르지 않아요. 기다리면 약속한 때에 아빠가 내가 원하는 일을 들어줄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까요. 또 다른 측면에서는 아이가 아빠가 하겠다고 한 건 반드시 한다는 교육관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요.

 아이와 가장 갈등이 고조됐던 경험이 작년 즈음 어린이집 등원준비를 할 때였거든요. 어린이집에서 특별한 문제도 없고, 건강상태도 괜찮은데 일부러 잠자리에서 늦게 나오고 스스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려는 시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아이에게 선택권을 줬어요. 아침에 해야 할 약속들을 지키지 못하면 오후에 볼 수 있는 TV 시청도 제한하겠다고요. 아빠가 한다고 한 것은 꼭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아는 아이라서 그런지 아침에 등원에 지각한 날은 TV를 찾지도 않더라고요. 한 동안은 지각하기도 하고 제시간에 가기도 하더니, 어느 날인가부터 제시간에 스스로 해야 할 일들을 곧잘 해내더라고요. 저 역시도 아이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들을 잘 저장해 두었다가 보여주곤 했죠. 본인에게 더 유리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달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질 줄 아는 태도도 배울 수 있고요.     


-아이는 아빠가 주 양육자인 것에 대해 만족하나요? 가족들은 어때요?

 아이가 특별히 제가 양육하는 환경에 대해 더 만족한다거나 저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엄마든 아빠든 부모 중 한 사람이 항상 곁에 있다는 것 정도의 의미겠거니 생각해요.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보다는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으니까 아이가 나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아빠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특별한 아이라고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요.

 가족들은 저의 육아를 지지해 주고 계세요. 어르신들도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인지에 대해서도 공감해 주시고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 주시곤 하세요.

 아내는 일 자체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성격을 띠고 있다 보니 종종 직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듣고 있으면 심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참 많이 힘들겠다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리어 성장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고 더 깊이 공부하려는 아내를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죠. 육아를 전적으로 맡아주는 제가 있기에 더 큰 도약을 꿈꿀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아내를 언제든 응원할 준비가 되어있어요. 바람이 있다면 둘째 정도인데… 가능… 하겠죠?


- 육아하는 아빠들이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 사례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주변에는 좀 있으세요? 체감하는 사회 분위기나 육아하는 아빠로서 느끼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육아하는 아빠는 주변에 없어요. 있다고 해도 저처럼 이렇게 오래 보진 않죠. 1~2년 정도 돌보고 직장으로 복귀하니까요. 육아하는 아빠들을 굳이 찾으려면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 엄두가 나진 않아요. 각자의 영역 안에서 저처럼 정해진 일상을 지내고 있을 테니 아이들을 데리고 만날 수 있는 장소나 시간대를 특정하기도 어렵고요. 만나면 엄마들 모임처럼 아이들은 같이 놀게 하고 육아하는 일상 이야기도 좀 나누고 싶은데 말이죠.

근처 놀이터에서 만나는 엄마들과 함께 이야기해 볼 기회도 많이 있었는데, 엄마들 사이에서 육아하는 아빠는 ‘뭘 잘 모르고 한다.’는 식의 시선이 강하더라고요. ‘아빠가 애를 봐야 얼마나 잘 보겠어. 엄마가 주양육자인데 아빠가 잠깐 봐주는 거겠지…’와 같은 시선이요. 나름 육아와 교육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고민과 공부를 거치면서 철학과 가치관이 명확한 저인데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좀 불편했던 것 같아요. 굳이 저를 설명하거나 이해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다 보니 육아와 관련된 대화는 아내 외에는 특별히 나눌 사람 없이 고립된 채 생활해 왔던 것 같아요.   



- 오늘 인터뷰 소감과 함께 육아하는 아빠들에게 한말씀 해주세요.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갔네요. 재밌었어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한 것 같아요. 육아하는 아빠들에게는 ‘잘하고 있어요. 지금 의심하게 되는 그 어떤 일도 나중엔 다 이해되고 이해받을 수 있게 될 거예요. 우리 서로 찾기 힘들고 보이지 않지만, 여기저기 숨어 있을 거예요. 일단 당신 말고 내가 있네요.’ 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아빠 육아는 뭔가 다를 거라는 환상이 있었다. 아빠가 키우는 애는 뭔가 특별하다든가, 몸으로 더 잘 놀아줄 수 있다 와 같이 엄마는 줄 수 없는 어떤 이점이 아빠 육아에는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사회적 편견을 무릅쓰고 육아하는 아빠가 되기로 결심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터뷰를 마치고 내가 들었던 생각은 ‘엄마랑 아빠랑 위치만 바뀌었다.’였다.


 지옥 같은 등원 전쟁을 치르고, 하원 후 놀이터를 가거나 동네를 산책을 하는 일, 정신없이 차려낸 저녁을 먹이고 잠자리에 드는 일상. 있는 힘껏 사랑하고 소소하게 갈등하며 미소 짓는 하루. 그 일상을 살아내는 힘과 주어진 시간들에 부여하는 의미와 가치들이 어떤 이에게는 버텨낸 하루가 되고 어떤 이에게는 충분히 괜찮은 하루가 됐다.


 중오님의 하루는 따뜻하고 여유로웠다. 사회가 드러내는 전형적인 아빠의 모습과는 다르지만 지난날 누구보다 열정적인 삶을 살아온 그였기에 가족들을 위해 하루하루 가꿔 나가는 지금의 삶에 충분히 만족하고 가치롭게 행복해했다. 아이를 양육하는 원칙이 신뢰와 사랑이라고 말하던 그는 본인의 삶에도 이를 적용시키고 있었다.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 나가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굳은 신념, 내게 주어진 시간과 삶의 모습을 기꺼이 사랑하는 마음이 그러했다.


 본인은 일과 육아 사이에서 고민하는 회색지대의 사람이 아니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야기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들려주겠다던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선명했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세요. 충분히 공부하고 고민한 후 내린 결정과 생각은 의심하거나 불안해하지 마세요. 당신이 정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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