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회색 지대 인터뷰집
#18년 차 IT기업
#9살 딸,
네오님은 IT 대기업에서 18년간 근무 중이다. 남편과 함께 9살 딸아이를 키우며 일과 육아 그리고 자신을 위한 삶의 균형을 찾아가며 줄타기하듯 살고 있었다. 요즘은 그래도 적당한 정도의 균형이 맞아떨어지는 시기라며, 회사일이 지나치게 바빠 아이와의 시간을 사수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아이에게 어떤 이슈가 있어서 회사일을 고민해야 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엄청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 즐거운 줄타기를 하는 일상이었다.
인터뷰 내내 네오님은 자신의 평범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평범함을 얻기까지 고군분투하며 살아낸 삶의 여정에서 얻은 단단함이 느껴졌다. 그녀의 일과 육아에 대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또 다른 줄타기를 해내고 있는 직장인 부모들에게는 뭉근한 공감과 용기로 일과 육아를 고민하는 회색지대의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 한 기업에 18년을 다니셨어요. 그 꾸준함의 원동력이나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특별히 이 일을 너무 하고 싶어서 일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하다 보니까 또 그럭저럭 할만해서 딱히 그만두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어요. 어쨌든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니 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월급이죠.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남편만의 월급으로 살아간다고 가정했을 때, 지금 누리고 있는 수준의 삶을 살 수 없음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있을 거구요. 또 20대 이후로 제 이름으로 들어오는 일정 금액의 월급 자체가 일종의 정체성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월급이 없이도 괜찮을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요.
저는 아이가 학원을 즐겁게 다니고 있고, 그곳에 있는 동안 다정한 선생님이 안전하게 아이를 돌보아 주신다면 그걸로 됐거든요. 아이의 수업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는지, 잘 따라가고 있는지를 체크하거나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아이의 학원비로 지불하는 돈 보다 제가 벌어들이는 수입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만약 한 사람이 벌어오는 한정된 비용 안에서 내가 아이와 그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원을 보내는 경우였다면 적어도 지불하는 비용만큼의 기대하는 효과를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주변에 사회생활을 하다가 전업으로 육아를 하는 엄마들을 보면 모든 생활이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그게 흔히 말하는 극성 엄마가 되고자 하는 어떤 욕망이 있어서 아이에게만 집중하게 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전업 엄마와 직장 다니는 엄마에게 내려지는 평가가 정말 달라요. ‘집에 있으면서 이것도 하나 제대로 못 챙긴 건가’ 하면서 아이의 모든 상태가 엄마에 대한 평가가 되더라구요. 이건 육아를 전업으로 하는 엄마에 대한 외부의 사회적인 시선이기도 하지만 내면화되어 있는 내 안의 압박을 이겨내야 하는 일이기도 하죠.
제가 회사를 그만둔다면 안 그럴 수 있나 생각해 봤는데, 저는 순응적인 인간인지라 아마 사회에서 요구하는 대로 움직이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순응하는 삶에 대해 불만족스럽다거나 부정적인 마음이 든 적은 없으세요?
싫죠. 엄청. 하하. 저도 저만의 색을 갖고 싶다고 자주 생각하는데, 그냥 저는 그릇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뭔가 구체적으로 내가 어떤 행동을 할 것이 아니라면 그 불만족스러운 느낌 자체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당장 뭘 해야 바뀔 수 있죠. 근데 ‘내가 지금 바뀌고 싶은가?’ 하면 또 모르겠더라구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넌 왜 이것밖에 못해?’라고 하면 제가 제 자신을 비난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를 받게 되기도 하거든요. ‘나는 이렇게 나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어, 그냥 살고 있지 않아’ 하면서 말이죠.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한 비난과 날 선 태도를 취함으로써 얻는 위안이 있더라구요. 자기 연민이 가장 쉬운 도피처예요. 그리고 아쉽게도 그런 시간을 참 오래 가졌었던 것 같아요.
- 그런 시기를 벗어나게 된 계기가 있으셨어요?
저처럼 순응적인 사람이 막상 사회에 나갔을 때 내면의 혼란을 겪게 되기도 하잖아요. 저 역시도 그런 혼란 속에서 어떤 해답을 찾고 싶어서 사회 초년생 때에는 심리학 책을 엄청 많이 읽었어요. 심지어 30대 초반에는 회사 일을 그만둘 요량으로 사이버대학교의 상담심리 학사학위도 받았어요. 공부 자체는 너무 재밌었고 졸업도 했는데 궁극적으로 심리학에서 얘기하는 바가 ‘네가 변해야 해’ 같더라구요. ‘밑도 끝도 없이 나보고 변하라니! 너무 한 거 아냐?’ 하는 생각도 들고, 막상 그 분야로 진로를 변경한다고 가정해 봤을 때, 그 길을 걸을 정도로 심리학에 열정이 있지는 않더라구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해 주는 일은 잘할 수 있었지만 직업적으로 전문성을 가지고 할 만큼의 깜냥은 아니라고 생각했었죠.
나름의 전환점은 특정 독서모임을 하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거기서 책을 심도 있게 읽는 경험을 처음 해봤거든요. ‘책을 읽는 게 이런 거구나, 읽고 이해한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라는 걸 처음 배운 것 같아요. 3년 정도 했었는데, 그때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는 즐거움, 어려운 책을 독파해 내는 방법, 책을 독해하는 요령들을 새롭게 배웠어요. 그러고 나니까 사회를 보는 어떤 관점, 현상을 분석하는 새로운 눈이 생긴 것 같더라고요. 전혀 다른 입장과 위치에 처한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바뀌었어요.
사실 이삼십 대의 저는 내내 과거를 돌아보며 자주 후회하는 편이었거든요. 나에게는 절대적으로 커다랗고 때론 너무도 아픈 그 어떤 경험과 생각들이 있었죠. 그런데 그것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다른 입장에서 바라보니 생각했던 것만큼 그리 크고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물론 그게 없어지지는 않지만요. 그렇다 보니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적힌 책을 읽을 때에도 과거에는 ‘아 그랬구나, 문장이 예쁘네, 감동적이다.’ 정도였던 감상이 지금은 ‘이 사람은 어떤 입장이지? 어떤 지점에 서 있는 거지?’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어요. 책 읽는 게 더 재밌어 지더라구요.
자신은 순응적인 사람이라는 네오님의 담백한 자각과 자기 연민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 지난날의 상처를 그저 내 몸 한 구석에 자리 잡은 흉터로 바라봐 줄 수 있는 시선은 그저 가만히 앉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 해낼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을 객관적으로 구분해 내야 함과 동시에 자신에 대해, 사회에 대해,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궁금해하며 답을 찾는 지난한 시간이 필요했다.
3년간 해왔던 독서 모임이 자신의 숨구멍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네오님은 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책을 읽고 모임의 학인들과 토론했다. 덕분에 주말아침 홀로 육아를 담당해야 했던 남편의 소소한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리고 그 말이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져서 괜스레 적어본다.
“당신이 사들이는 1년 치 책값을 모으면 명품백 하나정도는 살 수 있을 거야. 이 집엔 당신이 읽지 않은 책들만 남은 것 같아. 그 에너지로 회사일을 했으면 벌써 임원이 됐을지도 몰라.”
- 실제 복직하고 나서는 어떠셨어요? 힘들지 않으셨어요?
처음엔 막연히 두려웠는데, 주변에 보니까 선배들이 사람을 써가면서 회사를 너무 잘 다니고 있더라고요.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에게 부탁드릴 수도 있었지만 남편과 제가 낳기로 결정한 아이니까 저희 선에서 책임져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 사람 월급을 모두 아이 양육비로 쓴다고 하더라도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을 구하자고 마음먹고 아이가 4살 때까지 저희 집에서 함께 살면서 아이를 전담해서 돌봐주실 시터분을 고용했었어요.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 산다는 것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일을 하면서 아이가 아플 때마다 회사의 양해를 구해야 하거나 야근을 하는 상황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것보다는, 전담해서 아이를 돌봐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운이 좋게도 한 분이 쭉 아이를 돌봐 주셨었고 조금 커서는 하원만 도와주시기도 하셨어요.
그러나 아이가 있으니 이전처럼 완전히 일에 몰입할 수는 없더라고요. ‘아이 때문에 ~’라는 말은 하기 싫은데, 막상 회사일을 집중해서 하려고 하면 그렇게 마음먹기까지 버퍼가 좀 있어야 하는 거예요. 아이에게 어떤 이슈가 생길지 모르겠으니까 흔쾌히 ‘제가 하겠습니다!’가 안 되는 거죠. 아이를 낳기 전에 비해 소극적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어진 것 같았어요. 아이를 낳기 전에는 그 누구도 이 수준까지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밤새 야근해 가며 제 성에 찰 때까지 완성도 높게 일을 하려고 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그런 방식들이 지금의 저에게 남아 있어서 후배들과 일할 때 분명 도움이 되기도 하고, 그런 의미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은 그렇게 몰두하며 지내봐야 내 안에 능력이랄까 하는 무언가가 쌓이는 것 같아요. 물론 그 순간들 전부가 회사에서 인정받는 건 아니었지만요. 요즘 워크 앤 라이프 발란스를 얘기하는데 그걸 데일리 기준으로 생각하기보단 어떤 시절 기준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지금은 라이프에 방점을 찍은 것 같네요. 육아를 하면서 기존에 했던 것만큼 100% 일에 에너지를 쓰지 않고 저의 한정된 에너지를 분산해야 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 경험이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눈을 뜨게 해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효율적으로 일을 한다는 건 어떤 방식인가요?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 것 같아요. 회사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내 한 몸 다 바쳐 어떤 장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부류와 ‘월급 잘 나오면 됐다. 높이 가는 것보다 길게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류요. 물론 길게 가고자 한다고 해서 일을 못하거나 안 하는 건 아니에요. 조직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정도까지만 힘을 쓰는 거죠.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정도의 차이가 있고, 모든 사람들이 다 영혼을 갈아 넣어 일하지는 않잖아요. 가끔은 지나치게 갈아 넣은 그 영혼이 부담스러운 시점도 있구요. 성과를 잘 내고 눈에 띄면 더 높이 쉽게 올라갈 수도 있지만 그래서 잘리기도 쉽겠더라구요.
저는 이제 후자의 부류처럼 조직에서 길게 가고자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사실 오래 회사를 다니는 것도 쉽지 않거니와 어쨌든 제가 지금은 회사가 요구하는 역량만큼은 해내고 있으니까 안 잘리고 있는 것일 테고요. 어쩌면 제가 회사 계속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니고 나가라고 할 날이 얼마 안 남았을 수도 있어요. 하하.
무언가를 잘해 낸다는 것이 나 스스로가 언제나 불타오르는 열정과 성장 동기로 똘똘 뭉쳐 있어야 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이 어떤 일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거나 진지한 태도를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인 나의 존재를 사회와 조직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나의 불완전함과 한계를 인정할 때, 정말 필요한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음과 동시에 타인에 대한 이해와 수용의 태도 또한 보여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회사가 요구하는 만큼의 온전한 1인분의 몫을 해낼 수 있도록 서로 돕고 때론 갈등하며 성과를 내는 것이 우리가 팀을 이루어 일하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너지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육아에 있어서도 네오님과 남편은 서로가 한 팀임을 잊지 않았다. 각자에게 할당된 육아의 몫을 최선을 다해 해낼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자극하고, 갈등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얻은 아이의 애정과 육아를 대하는 태도는 분명 시너지효과를 일으키고 있었다.
- 요즘 네오님이 아이의 등교를 담당하고 남편분이 이른 퇴근 후에 아이를 돌봐주신다구요?
사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에는 남편과 의견충돌이 많았었어요. 아이 낳고 나서는 제가 육아휴직을 썼었거든요. 초등학교 갈 때는 남편이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했었는데 막상 그때가 오니까 말이 바뀌더라구요. 그즈음의 연차가 중간관리자로 가는 시기라 지금 육아휴직을 쓴다면 나중에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면서 조직 내에서 남자가 육아휴직을 쓴 적은 없다고 하더라구요. “당신이 최초가 되면 되잖아! 1년의 공백으로 자리를 걱정할 정도의 능력이야?’라면서 다투다가 제가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 ‘당신은 아이에 대해 놓치는 게 분명 있어, 주 양육자가 되어 경험하는 육아가 어떤건지 당신은 평생 모를거야.’ 라고요. 이후에 남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본인이 아이 하원을 맡아하겠다 하더라구요. 최근 3개월간은 남편이 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에 퇴근해서 아이의 하원과 저녁식사를 책임지고 있어요. 연구직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융통성 있게 시간을 쓸 수 있다는 장점과 코로나의 영향으로 유연근무제의 혜택을 받고 있는 덕분에 가능했죠. 그렇게 아침에는 제가 학교에 등교시키고 오후에는 남편이 돌봐 주는 일상을 보내고 있네요. 매일 오후 4시에 퇴근하는 남편을 회사가 언제까지 이해해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올해까지는 이렇게 가보기로 했어요.
- 아이는 이렇게 생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원래 엄마는 우주만큼 좋고 아빠는 먼지만큼 좋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3개월 만에 엄마는 우주만큼 좋고, 아빠는 우주에서 가장 작은 미세먼지를 뺀 만큼 좋대요. 얼마 전에는 그 미세먼지의 크기마저도 줄어들었더라구요? 그리고 아빠 편도 들기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제가 남편에게 서운했던 이야기를 하면 ‘아빠는 왜 그런대~?’ 하더니 이제는 ‘아빠도 이유가 있겠지’ 해요. 아마 하원 이후에 같이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다 보니까, 아빠가 마치 고되고 힘든 하루 끝에 자신을 구원해 주는 다정한 사람으로 자리 잡은 것 같더라구요. 남편도 막상 해보니까 본인이 아이에 대해 놓쳤던 부분들을 스스로 알아가는 것 같아요. 말하지 않아도 아이의 알림장도 열심히 챙겨보고 학원비의 결재날짜도 챙기더라구요.
-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좋은 것 같아요.
맞아요. 저는 이웃사촌들의 도움도 정말 많이 받았어요. 운이 좋게도 저희 윗집 아랫집이 또래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서 친하게 잘 지내고 있거든요. 이전까지는 입주 시터나 하원도우미를 고용했었는데, 지금처럼 별도의 육아를 담당해 줄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남편이랑 둘이 해보자고 마음먹을 수 있었던 것 이유 중 하나도 이웃들 덕분이었어요.
남편이나 저나 둘 다 돌발 상황이 생겨 약속한 시간에 아이를 돌보러 갈 수 없을 때나 특수한 상황에서 아이가 혼자 있어야 할 때, ‘우리 애 그 집에 가 있어도 돼?’라고 할 수 있고 ‘어~ 걱정하지 마, 우리가 밥 먹이고 학원 보내줄게.’ 할 수 있는 이웃이 3집 정도 있거든요. 이게 맞벌이 부부한테 엄청나게 큰 힘이에요. 생각해 보면 남편 하고만 협조가 잘 된다고 해서 해낼 수 있는 육아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마을 공동체나 이웃들 간의 긴밀한 관계가 돌봄 교실을 밤 9시까지 연장하겠다는 허무맹랑 한 이야기보다는 좋은 대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줄타기 고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초보자들은 바람이 불면 바람을 몸의 힘으로 버텨내려고 하기 때문에 균형 잡기를 평소보다 더 어려워한다고 한다. 반면에 고수들은 부채를 이용해 바람에 기대어 가느라 오히려 바람 부는 날의 줄타기를 잔잔한 날씨의 줄타기보다 더 쉽고 재밌게 느낀다고 했다.
네오님의 줄타기는 고수의 줄타기와 같았다. 육아와 일을 모두 잘 해내겠다며 힘주어 버텨내지도, 내가 원하는 것을 반드시 찾고야 말겠다며 비대해진 자아에 취해 있거나 쉽게 연민하지 않았다. 불어오는 방황의 바람을 부채로 가르며 그 방향과 세기를 온전히 느껴내었다. 손에 든 부채는 책이 되기도, 독서모임이 되기도, 이웃이 되기도 했다.
때로는 줄에서 떨어지기도 했을, 그래서 종종 그만두고 싶었을지도 모를 그녀의 줄타기는 그래도 꾸준히 계속되었고, 반복된 줄타기로 익숙해진 균형감각과 발바닥의 굳은살은 오늘날의 줄타기를 제법 즐길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했을 것이다.
- 인터뷰 소감이 있으실까요?
재밌었어요. 사실 인터뷰할 것 없이 평범한 일과 육아를 해내고 있는데, 인터뷰를 하겠다고 했던 이유는 제가 두서없이 내뱉은 삶의 이야기들을 재 구성하면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어요. 제가 모르는 저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구요. 말하면서도 너무 궁금해요. 이 이야기를 가지고 어떻게 쓰지? 뭘 쓰지?
우리는 주어진 모든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진심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심에도 균형은 있었다. 내가 가진 에너지를 어느 한 군데에 몽땅 쏟아붓는 진심(盡心) 이 아니라 일, 육아, 그리고 나에게 거짓 없이 참된 진심(眞心)인 삶. 그렇게 진심의 균형을 잡아가는 일상이 네오님에게 있었다.
육아회색지대에 있는 우리는 어쩌면 육아와 일, 그 각각을 원하는 몫만큼 해내고 싶어 방황하는지도 모른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 나’ 말고 ‘하나여도 각각에 진심인 나’를 바라봐 줄 수 있기를, 그 안에서 느끼는 평범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