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향다 Apr 03. 2023

오늘을 살아가세요. - 김혜자

육아 회색 지대 인터뷰집

김혜자

#중학생맘, #17년 경력

#사무직


 혜자 님은 친정어머님의 도움을 받으며 중학교에 갓 입학한 아들과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중견 제조업 남초 조직에서 15년째 근무를 이어가고 있는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돈을 벌고 회사에 다니는 자기 자신을 불쌍하다는 시선이 아니라 기특하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 자신의 변화에 영향을 미쳤던 인생 드라마로 ‘눈이 부시게(2019년)’를 이야기하며 인터뷰 가명도 드라마의 주연이었던 ‘김혜자 님으로 했다.      



- 직장을 계속 다녀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육아 휴직을 내고 아이들을 돌본 지 한 6개월 이 조금 넘은 어느 날이었어요. 아이들을 재우고 자리에 누웠는데 문득 내가 오늘 하루를 헛되게 보냈다는 느낌에 허무하더라고요. 분명 나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잠도 못 자고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고 밥도 못 먹으며 바쁜 하루를 보냈는데 아무런 보상도 보람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과 같은 하루를 회사에서 보냈다면 급여라도 받을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보상도 보상이지만 집안일이나 아이를 돌보는 일 중에 제가 제대로 하거나 잘하는 건 없더라고요. 요리하는 일에도 흥미가 잘 생기지 않았고 아이 장난감 같은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이가 울면 반사적으로 달래주기보다는 왜 우는지에 대해 고민하느라 스트레스받기도 하고요. 그래서 둘째가 어릴 때에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근처 친정 엄마 집으로 갔어요. 그렇다 보니 집안일도 육아도 뭐 하나 제대로 못하는 저 자신에 대한 느낌이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았어요. 그래도 기존에 했던 일은 얼마간만 적응하면 쉽게 다시 할 수 있으니 다시 해보자 마음먹고 복직을 했죠. 

 운이 좋게도 1년 남짓 육아 휴직으로 쉬는 동안 회사가 눈에 띄게 성장하면서 계속 채용을 늘려가던 시기였어요. 복직과 동시에 소속 부서도 바뀌고 기존 조직에 많은 변화가 생기면서 저 역시 변화의 흐름을 타면서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어요.  


- 친정어머님의 도움이 만약 없었다면 다른 대안을 찾아서라도 복직을 했을까요?

 아니요. 아마 친정 엄마가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직장이든 다른 직장이든 다시 복직을 결심하긴 어려웠을 거예요. 제가 오전 7시 15분에 출근해요. 그때 종종 마주하게 되는 장면이 아이 둘을 어린이집에 맡기는 맞벌이 부부의 모습이거든요. 내 몸 하나 일으켜 준비하고 나가기도 벅찬 그 시간에 애 둘을 맡기고자 새벽부터 분주했을 부부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어요. 만약 나였다면 저 부부처럼 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봤는데, 저는 못 하겠더라고요. 직장을 다니면서 육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부부 이외에 한 명이 더 꼭 필요해요. 그게 가족이든 아니든 아이가 최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는 부부 외에 육아를 적극적으로 보조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그녀는 인터뷰 내내 육아에 도움을 주고 있는 친정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내비쳤다. 사실 일을 할 의지와 능력이 있어도 아이를 돌봐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없어 육아를 하게 되는 이들을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런 이들에게는 오늘의 인터뷰가 그저 부러운 이야기로만 비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동안 친정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서운함과 안쓰러움이 뒤범벅된 나날들이 있었음을, 그래서 스스로를 자책하다가 다시금 마음을 다잡다가 울며 웃으며 보냈을 그녀의 구슬픈 나날들도 있었음 또한 기록해 두고 싶다.



- 부모로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한정적인 것에 대해 가족 구성원들이 갖는 생각이나 느낌이 궁금해요. 혜자 님, 아이를 돌봐주시는 어머님, 아이들은 각각 어떤지요. 

 저는 사실 제가 직접 아이들을 주 양육자로서 양육을 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최근에 가족 구성원 모두가 기질과 성향에 대한 검사를 할 기회가 있어 참여해 봤거든요. 놀라웠던 일이, 결과를 해석해 주시는 상담사 선생님이 제가 주 양육자가 아니었을 거라고 추측하시더라고요. 검사 결과상 제가 주 양육자였다면 아마 아이들을 지나치게 통제하거나 방관하는 태도로 양육했을 거라고요. 그런데 아이들이 소심하거나 산만한 성격보다는 자유롭고 명랑하고 밝은 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요. 친정 엄마의 너그러움과 여유가 아이들을 그렇게 행복하게 키웠구나 라는 생각에 너무 감사했어요. 

 엄마는 저한테 그런 이야기를 해주세요. “야, 나는 그래도 애들 때문에 덜 늙는 것 같다. 애들 때문에 웃는 것 같고… 얘들이 내 활력소야. 내가 너한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이 나이 먹어도 이렇게 여전히 쓸모 있는 사람이어서 너무 좋아.” 라구요. 엄마가 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씀이실 수도 있지만 진심이 전혀 없는 말씀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엄마가 체력적으로 많이 힘드실걸 알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아이들 스케줄에 맞춰서 곁에서 챙겨 주시는 것과 요리 외의 다른 일은 절대 못하시게 해요. 애들 목욕, 청소나 빨래, 저녁식사, 설거지처럼 좀 미뤄도 되는 것들은 퇴근 후에 남편과 제가 하죠. 

 아이들은 이제 학교수업이 끝나면 학원에 가요. 온전히 집에 머무는 시간은 8시 반 이후나 되어야 하더라고요. 그마저도 집에 오면 방에 들어가 친구들과 영상 통화를 하며 숙제를 한다든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한다든가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나이가 되었어요. 주말에도 친구들과 운동한다고 나가고 그래요. 물론 딸인 둘째는 아직까지도 자기 소원은 엄마가 회사를 그만두는 거라고 해요. 회사 그만두고 제가 학교 앞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만나서 같이 카페 가는 일을 하고 싶대요. 자주는 못해주지만 회사 일이 바쁘지 않을 때 연차를 내고 아이가 말한 대로 해줘요. 근데 막상 아이도 몇 번 해보면 엄마가 학교 앞에서 기다려주고 카페에 가는 일이 별 것 아닌 일이라는 걸 알게 돼요. 카페 가면 저랑 얘기 조금 하다가 친구랑 카톡 하거든요.  

 양육에 대해 제가 가진 주요한 가치관은 ‘아이들에게 최대한 많은 경험과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본인이 뭘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예요. 하고 싶다는 것을 시켜주고 가보고 싶다는 곳에 가려면 사실 돈이 들잖아요. 만약 제가 돈을 벌고 있지 않았다면 그것들을 충분히 누리게 해 줄 금전적 여유는 없었을 거예요. 물론 정해진 한도 내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경험하게 해 줄 수 있을 거예요. 실제로 그렇게 하는 엄마들도 있고요. 하지만 제가 그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시간을 쓰는 건 저의 적성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금전적인 혹은 방법을 고민하는데 스트레스받지 않고 원하는 수준의 경험을 시켜 줄 수 있어서 좋아요. 

 

- 혜자 님에게 일은 경제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 외에 어떤 의미를 갖기도 하나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직장이라는 곳에 국한되어 생각해 본다며 직장은 오롯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인 곳이에요. 물론 직장에서 내가 하는 일의 어떤 가치와 의미를 느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돈과 일의 가치를 다 찾긴 사실상 어려운 것 같아요.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제가 좋아하는 일을 시켜주는데 10시간 하면 50만 원 준다는 선택지와 좋아하진 않지만 5시간 일하면 100만 원 준다고 하면 저는 당연히 후자를 선택할 거예요.

 일은 일처럼 해야지 놀이처럼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돈을 버니까 힘들어도 그냥 한다고 생각하고 해야죠. 그 돈으로 다른 데 가서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돼요. 그런 말 있잖아요. 놀이동산을 가도 내 돈 내고 즐기는데 회사에선 나한테 돈도 주는데 즐거움까지 줘야 하냐고요. 사실 저도 지금 하는 일을 17년째 하고 있지만 이 일이 적성에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해야만 하니까 최선을 다해 해내는 거예요.  


-  만약 지금 적성에 맞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고민해 보실 만한 영역이 있으세요? 

 아니요. 물론 상상은 해볼 수 있죠. 그렇지만 제가 지금까지 이 조직에서 이뤄온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적성을 찾아 직업을 바꿀 만큼 하고 싶은 일이 있지는 않아요.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게 되는 어떤 직업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그 영역 나름의 고충이 다 있어요. 세상에 완벽한 직업은 없구나, 돈을 번다는 건 이렇게 모두에게 힘든 일이었구나 다시금 생각하게 되죠. 사업도 말이 쉽지 정말 사업을 잘 해내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제가 가진 역량과 감각으로 감히 도전해 볼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돼요. 


 - 어떤 한계를 두는 것처럼 보여요. 나의 한계, 직업의 한계처럼요.

 맞아요. 특히 나의 한계를 아는 건 너무 중요해요. 저는 제가 뭐든 열심히 하고 아등바등 살다 보면 빚도 빨리 갚고 심적인 여유도 생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제가 열심히 하면 할수록 저에게 지워지는 짐의 무게만 늘어나더라고요. 

 사실 첫째를 낳고 직장에 다닐 때만 해도 남편도 아이도 집안일도 챙길 만큼 체력적, 심리적 여유가 있었어요. 그런데 둘째 낳고 나니까 쉽지 않더라고요. 어느 날 남편이 ‘나 양말 다 해졌어’라고 얘기하는데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사실 그냥 상황에 대해 공감해 달라고 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저는 새로운 양말을 주문해 달라는 얘기로 들리더라고요. 그동안은 제가 당연히 했던 일인데 그즈음에는 저도 한계가 왔던 것 같아요. 그도 그럴 것이 회사에서는 연차가 쌓일수록 책임과 의무가 늘어나잖아요. 회사에서 저에게 요구하는 것들은 점점 늘어나는데 집안일은 줄어들기는커녕 그대 로거나 늘어나니까요. 그때 남편한테 정말 진지하게 얘기했던 것 같아요. 뭐든 내 손을 빌려 생활하는 일상이 너무 힘들다고 이제 우리 집과 가족에 관한 어떤 일들은 남편도 알아서 좀 해 달라고요. 저 나름 그동안 많이 SOS 쳐왔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제가 힘들어하는지도 몰랐더라고요. 그 이후로 3~4년 정도는 서로 균형을 맞추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저의 한계를 인지하고 포기하기 시작하니까 그 틈새를 남편이 메워주더라고요. 저는 제가 어떤 방법을 이용해서 남편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제가 놓으면 되는 거였어요. 예전에 우리 집에서 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90% 이상이었다면 지금은 반반정도 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너무 버겁고 힘들다면 혹은 지나치게 복에 겨운 것 같다면 한 번쯤 뒤돌아봤으면 좋겠다. 내가 필요 이상으로 짊어지고 있는 짐은 없는지 혹은 상대방의 어깨에 올려진 짊을 애써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 지 말이다. 균형을 잃은 배는 행복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없다.



- 한계를 인식하고 난 뒤에 집안일 외에 추가로 생긴 변화들이 있을까요? 

 그동안은 ‘조금만 더 참으면, 더 노력하면, 더 잘하면, 더 많이 모으면’’이라는 말로 오늘의 저는 잊은 채 내일의 저를 기대하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회사를 다니면서도 언제 잘리게 될지 모를 매일이 불안하고 끝없이 애써야 하는 나 자신이 참 불행하다고 느꼈거든요. 그런데 내가 누릴 수 있는 생명의 유한함, 체력과 정신적 에너지의 한계를 자각하고 나니 오늘의 내가 굳이 안 해도 되는 걱정은 내려놓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 혹은 더 즐거운 일을 선택하게 되더라고요.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으로 유명을 달리하게 됐다는 지인의 사연, 몇 년간 악착같이 모은 돈을 한순간의 실수로 날려버린 이야기 등등 오늘의 행복을 유예한다고 내일 반드시 행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이제는 정말 현실적으로 느끼고 있어요.

  지난 10년의 시간을 되돌이켜 봤을 때, 내가 불안 해했던 만큼의 어떤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반대로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 나름 잘 헤쳐 나왔어요. 내가 모르는 길을 걷는 것 같고 틀린 것 같다는 불안함은 버리고 그저 한발 한발 내딛으며 잘 가고 있다고 믿으면 돼요. 그냥 하루하루 걷다 보니까 내가 걸어온 그 시간이 지금의 내 길을 만든 거예요. 


- 요즘 가장 즐겁게 내딛는 발걸음은 어디를 향해 갈 때인가요? 

 저는 사람들을 만나러 갈 때 그렇게 설레고 재밌어요. 주말에도 반나절은 아이들과 보내고 남은 시간은 제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요. 그래야 하루가 완성됐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오늘은 내가 어떤 새로운 얘기로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될까 기대돼요. 그리고 그런 시간을 통해 직접적이진 않더라도 무언가를 깨닫고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제가 바라 왔던 삶의 영역이거나 궁금했던 영역이 아니더라도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삶의 이야기들을 들음으로 인해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제가 경험해 보고 싶은 분야가 생기기도 해요. 이제 보니 앞서 말했던 ‘아이들에게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게 해 주자, 그래야 좋아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찾을 수 있다’는 말은 저에게도 해당되는 말인 것 같네요. 그 경험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지점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만약 전업주부로 지냈다면 남편이 벌어오는 돈을 제 경험과 성장보다는 가정을 위해서 쓰는 것에 우선순위를 뒀을 것 같아요. 지금은 가족을 위해 쓰기도 하지만 저를 위해서 쓰는 일에 아끼지 않아요. 지금의 제 모습을 부러워하는 친구들을 보면 뿌듯하기도 하고요. 예전에는 정말 하루하루 힘들었는데 그래도 그 시간을 잘 버티며 계속 일 해왔기에 나를 놓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경험과 성장을 위한 자극을 멈추지 않을 수 있는 삶. 누군가의 허락이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의 투자를 선뜻 해낼 수 있는 삶이 그녀가 고단한 시간을 버텨 얻어낸 선물과 같아 보였다. 



- 오늘 인터뷰는 어떠셨어요? 

 얘기하다 보니 저의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나를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장 뿌듯할 때는 어떤 포인트에서 공감과 위로를 얻을 때였거든요. 오늘의 인터뷰가 ‘향다님에게도 어느 지점에서는 위로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혜자 님은 내 전 직장에서 유일한 여자 선배였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내던지듯 내려놓고 회사 화장실에 쭈그려 앉아 울고 있을 때, 그녀가 내게 건네주었었던 말은 아이가 아플 때마다 위안이 되었다.

 “네가 집에 있어도, 애가 어린이집에 안 가도 애들은 원래 어릴수록 자주 아파, 오늘만 아프니? 한 2주 뒤면 또 어디서 감기 걸려올걸? 네가 일하는 엄마라서, 어린이집에 보내서 애가 아픈 게 아니야… 그냥 아이라서 아픈 거야…”

 그리고 오늘날 회색 지대에서 육아와 일을 고민하는 나에게 혜자 님의 저 말이 다르게 들리며 또 다른 위안이 된다. 

“네가 일을 하든, 육아를 하든 애들은 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지금까지 커온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자랄걸? 네가 일을 선택했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고, 육아를 한다고 해서 갑자기 더 잘 크지 않아. 사실 그건 정말 모를 일이지. 어떤 일이든 네가 오늘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 돼… 이러나저러나 너는 어쨌든 평생 엄마야…’


 2시간 남짓의 인터뷰 시간 동안 혜자 님은 가족들과 4번의 통화를 주고받았다. 모두 아이들과 관련된 일이었다고 했다. 아이를 돌봐 주는 분이 따로 있다 하더라도 학원 스케줄이 변경되거나, 아이가 아프거나, 학부모와 상담을 해야 하는 등 부모가 해내야만 하는 일의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 


 지금 당장 그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OO차장, 엄마, 딸, 아내 그 모든 역할을 벗어나 1주일 만이라도 누릴 수 있는 온전한 자유’라고 대답했다. 그녀가 오늘 하루에 그토록 충실하며 사람들을 만나 경험과 위로,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 모든 역할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전 06화 당신이 정답이에요. - 신중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