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회색 지대 인터뷰집
#전업주부 4년 차
#7세 딸
대기업에서 10년간 마케팅과 MD를 담당했던 랄라는 퇴사 후 올해로 전업주부 4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녀는 전업주부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해 혼란스러움을 겪고 있을 수많은 전업주부들에게 작게나마 공감과 위로가 되는 인터뷰이길 바라본다.
일을 그만두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10년을 일했지만 일을 하면서도 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다녔어요. 출산 후 복직해서 8개월 정도 지났을 때, 코로나가 시작됐죠. 초기에는 코로나를 굉장히 조심하는 분위기여서 재택근무를 하게 됐고 아이 역시도 어린이집에 보낼 수가 없어 데리고 있었어요. 기관에 맡길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저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감염병으로부터 격리된 생활을 하면서 아이는 공동생활을 하는 기관에 보낸다는 것이 좀 모순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일은 일대로 안되고 아이는 아이대로 잘 지낼 수 없더라고요. 제가 근무하는 동안 아이는 TV만 보고 있고 정말 밥만 챙겨주는 수준의 일상이 계속됐죠. 뭔가 잘못됐다는 자각과 함께 아이를 이대로 방치하면서까지 맞지도 않는 이 일을 계속할 의미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이모님이 지방에서 올라오셔서 함께 아이를 봐주시다가 주말에 내려가시곤 하셨는데 그 마저도 어려워져서 여차저차 일을 그만두게 됐어요.
퇴사하고 나서 힘들진 않으셨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거의 매일매일 자아분열을 겪는 상태였죠. 저는 제가 곧 다른 일을 찾을 줄 알았거든요. 안일한 생각이기도 했지만 퇴사소식을 들은 주변 지인들은 모두 ‘네가 가만히 있겠니, 인형 눈이라도 붙이겠지’라고 했을 정도로 저는 일하는 모습이 당연한 사람이었어요. 그랬던 제가 소속도 없고, 집 말고는 갈 곳도 없는 내가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더라고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모습의 제가 되어있었어요. 직업을 드러내야 할 순간이 많지는 않지만 종종 설문조사나 어딘가 가입하는 과정에서 ‘주부’라고 써야 할 때가 오면 굉장히 싫더라고요. 내가 주부가 되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때는 괴로웠던 것 같아요. 결국 내가 퇴사를 선택했고 그래서 주부가 된 것인데 나는 왜 괴로워하고 있나 하는 자책감과 함께요.
주부가 된다는 건 왜 두렵게 느껴졌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먼저 사회적인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게 가장 큰 것 같아요. 그래서 저 역시도 제 가치를 인정할 수 없었겠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의 쓸모를 증명하며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퇴사를 하고 주부가 되면서 나의 쓸모를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졌다는 것도 크죠. 그리고 지금의 주부로만 대변되는 이 정체성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는 두려움도 있었어요.
생각해 보면 우리가 장래희망을 주부라고 쓰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 지점부터 우리는 주부를 직업이라고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가 저를 낳고 일을 그만두셨었는데, 저는 그게 싫었거든요. 생각해 보면 엄마는 집안일을 계속해왔고 간헐적으로 가게도 하고 무언가를 항상 해오셨는데 그게 내세울만한 어떤 직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독립적인 경제력을 갖춘 내가 되고 싶었고 아이한테도 좋은 롤모델이 되길 바랐었죠.
아이한테도 일을 그만뒀단 이야기를 바로 하지 못했어요. 지금의 직업이 없는 나의 상황을 나 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데, 아이에게 설명할 방법을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아이는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조금 크고 나서는 엄마가 일하는 거 싫다는 이야기도 종종 하고요.
나 역시도 그러했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일을 그만두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적이 없었다. 무슨 일이든 조만간 하게 될 것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안일한 믿음이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공백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지만 뭐 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론 없이 매일 분주한 마음은 ‘차라리 회사에 있었으면 시키는 일이라도 하고 돈이라도 벌 수 있었을 텐데’라는 후회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렇다고 집안일을 잘 해내는 것도 아니었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마음으로 인터넷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검색하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이 돌아오고 식사를 챙겨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마음만 분주한 시간 너무 공감되네요. 분주한 그 시기엔 어떤 걸 하셨는지 요즘의 일과는 어떠한 가지 궁금해요.
정말 여러 가지 일을 했었죠.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제가 만든 거예요. 이렇게 옷 만드는 것도 배워보고 쇼호스트 아카데미에도 다녀봤었어요. 그러다가 작년 여름부터 1주일에 한번 출근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을 연구하는 곳이에요. 그곳에서 월마다 만드는 회보를 편집하는 일을 맡아하고 있어요. 회사를 쉬면서 책을 읽는 경험이 그동안의 책 읽기와는 다르게 다가온 새로운 경험을 했거든요.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는 아니더라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히 있었는데, 최근에 여러 가지 부수적인 활동들로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조금씩 하고 있어요. 제가 책이나 영화에서 뽑은 문장들을 가지고 쓴 글들을 연재하는 서비스를 하기도 했고, 공저로 책을 쓰기도 했어요. 굿즈도 만들어 봤고, 제가 관심 갖고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해볼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스폿성으로 해보고 있네요.
생각보다 엄청 많은 일을 하셨는데요?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이런 일들을 해오신 건가요?
저는 제가 시도했고 시도하고자 하는 모든 일들이 앞으로 직업적으로 어떻게 연결될 거라고 확신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무언가를 하다 보면 발견하게 될 어떤 지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해요. 제가 인생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어떤 방향을 찾기 위한 과정이죠. 제 바람은 이런 것들을 계속해 나 아가다 보면 어떤 인연으로 인해, 어떤 이벤트로 인해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것을 하게 되면 좋을 것 같고요. 그게 안된다면 뭐 그때 가서 지극히 현실적인 일들을 하게 될 수도 있겠죠.
최근에 했던 일들은 그렇지 않지만 저는 아마 그동안은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는 상황 자체를 만들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비유를 해보자면 우리가 연애를 할 때 상대를 보면서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서 내가 호감을 느끼는 것인지, 내가 지금 외로운 상황이라서 내 앞의 누구라도 연애를 하고 싶은지 구분해야 할 때가 있잖아요. 그동안은 그게 구분이 잘 안 됐던 거죠.
내가 지금 이 일을 선택하는 것이 일 자체를 좋아해서 하는 건지, 어떤 타이틀을 필요로 하는 건지, 그냥 하고 있는 행위 자체에 취해 있는 건지는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워킹맘 일 때도 어떤 분이 그러셨었거든요. 일도 하고 아이도 돌보는 그 모습 자체에 도취된 것도 있다고. 둘 다 잘 해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뭔가 해내고 있다는 것 자체에 위안을 얻었던 것 같아요.
해보고자 하는 일에 대해 분명한 목적성을 갖지는 않더라도 내가 이 일이 좋아서 하는 일인지, 그저 하는 행위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말씀이신 것 같아요.
맞아요. 저는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방향대로 그저 걸어왔어요. 선택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죠. 대학을 가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게 당연한 수순인 줄 알았거든요. 어찌 보면 순응해서 살았기 때문에 주어진 과제에만 급급해서 과제 자체를 해낸 저에게만 포커스 되어있었어요. 뭔가를 해보는 시도 자체는 너무 좋고 추천해주고 싶지만 급급 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싫어서, 뭔가를 하는 나에게 안주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니까 무엇에 방점을 찍고 포커싱 할 수 있는 거를 잘 고려해서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반대로 그 뭔가가 방향성이 정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가능성에 취해있는 나여서는 안 돼요. 제 전공이 정치외교학이거든요. 막연하게 외교관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외무고시는 도전하지 않았어요. 현실적인 조건들과 맞지 않아서 나는 외교관이 될 수는 없었지만 그 일을 바라왔었다는 기억만 있어요. 정말 원했으면 공부라도 해볼걸 이런 아쉬움이 남아요. 사실은 되고 싶었던 나를 좋아한 거죠.
계획적인 편이신가요? 부지런하다던가?
아니요. 저는 사실 굉장히 나태한 사람이고 누워있는 거 좋아해요. 집에 있으면 아무것도 하기 싫고요. 처음에는 이런 저를 받아들이기가 굉장히 어려웠어요. 우리는 나태해져서는 안 된다고 교육받아왔잖아요. 뭔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한 시간들을 보냈었죠. 처음 일을 그만뒀을 때는 그동안 힘들고 바쁘게 살아온 나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자 하면서 쉬었었는데, 진심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누워있으면서도 이래도 되나 싶고, 이게 우울한 느낌과 연결되면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기도 했죠.
지금은 좀 나태하게 있다가도 벌떡 내 몸을 일으킬 수 있는 자제력 정도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1년 정도 매일 아침 새벽에 일어나서 독서 낭송 모임을 하고 있는데, 그 시간이 저에게 하루를 보내면서 스스로 약속을 지켰다는 위로, 의식이 돼요. 누군가 새벽기도나 명상을 하듯이 요즘의 제가 지켜내는 유일한 루틴인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나태할 수 있는 시간 자체도 잘 없어요. 아이를 양육하는 일은 항상 대기하는 일이기도 하고, 아이가 없을 때만 누워있을 수 있잖아요. 심지어 자는 시간 자체도 아이와 같이 자면 제대로 잘 수 없어요. 나 혼자 온전히 편하게 누워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아요.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아무 일 하지 않는 데서 오는 고요를 맛볼 시간을 누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막상 그런 시간이 주어졌을 때 우리는 가만히 앉아 있는가? 그것이 문제다. 우리는 쉴 시간이 없다고, 지금 여기를 즐길 짬이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언제나 무언가를 하고 있다. 우리는 아무 일도 안 하면서 쉬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어쩌다 사무실에서 조용한 시간이 날 때면 누구한테 전화를 걸거나 괜히 인터넷을 뒤적거린다. 우리는 일 중독자들이다.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이든 해야 안심이다. 그러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까닭에 지금 있는 자리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 히 있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중요하고 지극히 도전적인 수행이다. – 틱낫한 <너는 이미 기적이다>
육아회색지대에 서있는 우리는 어쩌면 그 누구보다 중요하고 도전적인 수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달리기만 했던 지난날들을 뒤로하고 잠시 멈춰 머무르는 방법을 배우는 것, 그 ‘머물러 있음’으로 인해 발견할 수 있는 삶의 어느 단면과 몰입의 순간들이 랄라에게 있었다.
육아는 랄라님에게 어떤 의미였어요?
저는 임산부 배지를 달고 노약자석이나 임산부석에 앉는 경험으로부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위치에 놓여있는 저를 발견하게 됐어요. 임신하기 전의 저는 주류였고 약자였던 적이 없는데 임신을 하는 순간 약자가 되어있더라고요. 아이를 돌보는 일도 그랬어요. 유모차를 끌고 밖으로 나갔는데 계단이 있으면 이동할 엄두가 안 나요. '나와 아이야 걷는 시기가 되면 지금의 불편함을 겪는 시기 역시도 끝나겠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은?'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주변에서 장애인들을 잘 못 보는 이유는 사실 없어서가 아니라 못 나와서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임신과 육아는 저에게 그런 관점을 바꿔주는 계기를 만들어줬어요. 아이를 키운다는 건 약자와 같이 산다는 거거든요. 멀리 떨어져서 약자나 소수자들을 바라볼 때는 연민이나 동정심을 담아 쉽게 얘기할 수 있겠지만 그들과 아주 가까이에서 돌보아 줘야 하는 위치가 된다는 건 생각보다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아이라는 약자를 돌보면서 배우게 되는 타인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능력 자체도 엄마의 역할을 수행해 본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굉장한 능력이자 경험이라고 생각하는데, 사회는 종종 그런 엄마들을, 아이들을 배재하고 혐오하죠.
아이를 원래 좋아하셨어요?
아니요, 저는 사실 아이가 어릴 땐 양육하기가 힘들어서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인식하지 못했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서 대화를 나눌 때마다 느끼는데 너무 사랑스러운 거예요. 제가 사랑을 주는 존재기도 하지만 아이는 누구보다 저를 사랑하잖아요. ‘엄마 안아줘’’ 하면 저도 같이 안아달라고 하거든요. 육아는 어찌 보면 내가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기도 하지만 아이도 나를 챙겨주는 존재가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포옹은 같이 하는 거잖아요.
아이들이 사랑스러운 순간은 상당히 많지만, 본질을 보는 순수함에 정말 놀랄 때가 많아요. 그 어떤 현자보다도 본질을 꿰뚫는 통찰을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저는 친정 엄마가 돌아가셔서 안 계신데, 아이에게 가장 편하게 저희 엄마 얘기를 하거든요. 어느 날 제가 ‘너는 좋겠다. 다 해주는 엄마가 있어서’ 했거든요. 그랬더니 아이가 ‘엄마도 엄마가 있잖아, 하늘에서 다 보고 계셔’ 하는 거예요. ‘근데 뭘 해주시진 않잖아’ 했더니 ‘왜 못해줘 엄마한테 얘기하면 비도 내려주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의도하고 노력해서 나온 말이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건네는 말마디들이 정말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되더라고요. 또 저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보내고 있어서 교육 외적으로 할 일이 되게 많거든요. 어느 날은 수건을 빨아서 가져다주는 당번이 되어서 수건을 개면서 ‘**이 어린이집 일이니까 **이가 해’라고 장난치듯 말했더니 아이가 ‘엄마가 나를 거기 보내기로 결정해서 엄마가 이런 수고를 하고 있는 거야.’ 하더라고요. 너무 맞는 말이잖아요. 이런 식으로 여과 없는 아이의 어떤 말들이 위로가 되기도 하고 제정신을 잡게 하는 일들이 되더라고요.
무언가 초점을 맞추고 거기에 몰입해 있다 보면 느끼는 지점들이 분명 있는 것 같아요. 일이든 육아 든요.
맞아요. 어릴 때 피아노 학원 다니면 아시겠지만 ‘몇 번 쳤다’에 초점이 맞춰져 있잖아요. 아니면 ‘이 곡을 끝냈다. 칠 수 있다.’가 초점이었는데, 성인이 되어 어릴 때 쳤던 어떤 피아노곡을 다시 배우게 됐거든요. 그때 선생님이 악상을 상세히 설명해주셨어요. 이 곡은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느낌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가운데에서 편지를 받은 사연이 있다. 이런 곡에 대한 배경과 느낌을 같이 설명해 주셨는데 간단한 곡도 상당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더라고요.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저는 그동안 동년배의 어떤 결과물을 보고 감탄하거나 잘했다고 인정하지 않는 편이었거든요. 열등감이나 질투를 느낄 대상이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제가 피아니스트 손열음 님의 연주회에 다녀왔거든요. 너무 멋있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이 사람이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을지, 어떤 마음으로 이 연주회에 서있는지, 그런 것들이 다가오면서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제가 좀 바뀌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되게 좋았어요.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던 삶이었다. 쉬는 것조차도 죄책감을 느끼며 무언가를 해내고 있는 나에게 그저 기특하다고 잘하고 있다고 다독이던 나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육아를 하며 생의 초점이 내가 아닌 타인으로 향하는 경험을 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이 아닌 ‘우리를 위해 잘 사는 삶’을 생각하게 된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던 랄라는 그렇게 누군가의 순간을 함께 누리며 그들과 함께 노래하는 삶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인터뷰하신 소감이 있을까요?
저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실 누군가와 말을 하긴 해도 그걸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은 없잖아요. 대게는 휘발되고 가볍게 여겨지는데 정성스럽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록해 주셔서 좋았어요.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정리도 됐고요.
학창 시절부터 어딘지 모를 곳으로부터 받아들인 바람직한 삶의 방향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뤄내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에 가면, 대기업에 취업하면,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으면, 내 삶에 느낌표만 있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물음표만 남아있다.
랄라는 지난 4년의 시간 동안 스스로를 미워하다가 긍정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지난한 여정 속에서 그녀가 유일하게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일상이 빚어낸 문장의 끝에 느낌표나 물음표를 찍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에서 등장한 어떤 일에 방점을 찍을 수 있을 뿐임을 알았다.
그녀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삶의 또 다른 방점, 그리고 그 몰입의 순간에 누리게 될 생명력과 에너지를 온 마음 다해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