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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다 Mar 29. 2023

나를 위한 시간 - 제이

육아 회색 지대 인터뷰 집

제이

#미국 거주, #아이 둘

#수학교사


 육아는 기쁘고 힘들다. 지치고 보람차다. 사실 그 어느 단어로도 명확하게 육아에 담긴 모순된 지점을 표현하기가 힘들다. 육아에 모든 시간과 체력, 정신적 에너지를 쏟고 있는데 때때로 밀려오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떨쳐 내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한국에서 수학 교사로 근무했던 제이의 어떤 나날들이 그러했다. 휴직 후 타지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두 아들을 키워내고 있었지만 좀처럼 공식을 세울 수 없는 함수 그래프 마냥 요동치는 삶이었다.    



- 한국에서 수학 선생님이셨네요. 선생님을 업으로 삼아야겠다 마음먹은 계기나 그 일에 대해 갖는 생각이 있을까요?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과 가까운 편이었어요. 자라나는 누군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직업이라는 면에서 선생님은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했죠. 아직 가치관이 다 형성되지 않아 혼란스러움을 겪고 있는 누군가와 가깝게 이야기를 나누고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참 보람차겠다고 생각했어요.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고 둘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수학선생님이 되었어요.

 처음 교사로 근무했던 학교가 비평준화 고등학교여서 아침 8시에 일과가 시작되어 야간 자율학습까지 마치면 9시 40분이나 되어야 집에 갈 수 있었거든요. 학교 자체도 일이 많아서 열정이 넘치는 선생님들이 일부러 오는 곳이기도 했어요. 거의 모든 걸 쏟아부었던 초임교사 생활이었던 것 같아요. 워라밸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항상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가끔 아이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느낄 때 참 보람 된 직업이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매년 당시 수업 들어가는 반 아이들 한 160여 명의 이름은 얼굴이랑 매칭해서 다 외웠었고 아이들이랑 친해져서 관계를 바탕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였어요. 당시 초임 교사로서 열정도 많았고 학생들과 많이 차이 나지 않는 나이 덕분이었는지 아이들과 잘 통했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고민이 있거나 혼란스러워할 때 진심을 다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이후에 아이가 마음이 편해졌다고 이야기해 줄 때, 고민이 해결되거나 명확한 방향이 정해지지 않았더라도 서로 신뢰가 쌓이는 시간들이 늘어날수록 뿌듯하기도 하고 진심으로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미숙했지만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나이였고 그 과정에서 저 역시도 아이들로부터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삶, 임용 고시를 합격하고 그녀는 앞으로 평생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더 힘들게 공부할 일은 또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공부했기에 후회 없는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 그랬던 그녀가 3년 반의 교사 생활에 휴직을 하고 연구 활동을 위해 미국으로 가야 했던 남편을 따라 이주민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결혼한 지 4년 만에 그곳에서 첫 아이를 낳았다.



- 육아는 어떠했어요? 교사 생활 하면서 느꼈던 보람과 같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보람이 있었을까요? 

 교사로서의 보람과 아이들을 키우는 보람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분명 비슷한 지점이 있지만 내가 쏟을 수 있는 에너지 대비 아이들이 받아가는 에너지의 총량이 다를 것 같아요. 그 에너지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말이죠.

 일찍 결혼을 하기도 했고 열정 가득했던 교사 생활을 뒤로하고 바로 미국으로 갔던 터라 육아는 힘들다거나, 아이를 낳으면 어떤 일들이 생긴다거나 이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없었어요. 결혼하고 자연스럽게 이쯤 되면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었고 그래서 별다른 생각 없이 아이를 낳았던 것 같아요. 고맙게도 첫 아이는 너무 순한 기질의 아이였어요. 100일부터는 거의 통잠을 자줬고, 아이가 9개월~돌 즈음 되어서는 아이를 데리고 제가 뭐든 할 수 있겠더라고요. 편도로 차 타고 5시간 동안 가야 했던 시카고 여행도 세 식구가 너무 즐겁게 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뭐. 첫 애 두 살 때까지는 정말 화를 한 번도 냈었어요. 동네 박물관, 도서관, 공원 등등 곳곳을 매일 다니며 다양한 환경들을 경험하게 해 줬고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울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생각한 대로 해주면서 잘 키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둘째가 태어나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어요. 우선 둘째 100일 즈음해서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많았어요. 원인 불명의 혈변을 지속적으로 봐서 건강에 대한 염려도 너무 컸고, 알레르기 반응으로 구급차를 부른 적도 있었어요. 도움을 줄 수 있는 가까운 이웃이나 가족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남편이 학회에 가 있기라도 하면 그 모든 체력적, 정신적인 에너지가 모두 저에게서 나와야 하더라고요. 그나마 익숙해졌던 동네 생활도 이사를 하게 되면서 낯선 환경으로 바뀌었고, 코로나 때문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한동안 집에서만 아이들과 고립된 생활을 했었어요. 기존에 만성적으로 관리하고 있던 병은 더 심해져 집에서 화장실 가는 걸음조차 쉽게 걸을 수 없을 만큼 악화됐었고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서 항상 우울했던 것 같아요. 아직도 가장 힘들었던 암흑과도 같았던 그 시기의 공기와 분위기가 생생하게 기억나요.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언제나 예상할 수 없는 변수들로 가득 차 있다. 아이 키우는 양육자들이 하는 말 중 가장 가슴 아픈 말이 ‘나는 아플 수도 없는 사람이야’다. 아이는 수시로 아프고 아이를 둘러싼 환경도 예상치 못하게 변하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을 감당해 내야 하는 사람이 오직 ‘나’ 뿐일 때, 그래서 몸이 아파도 그 모든 것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할 때 끝없이 우울해진다. 공감과 위로를 건네는 배우자도 그 사람 몫의 삶을 견뎌내고 있으리라 믿기에 감히 탓하거나 나무라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와 같은 위치에서 내가 느끼는 정도의 절망감과 처절함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타인일 뿐임을 자각하는 순간 우리는 우두커니 외롭다.  



-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조금 나았을까요? 미국이 아니었다거나 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거나 기타 등등의 상황이었다면요.

 미국에 있어서 가까운 친인척이나 이웃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것도 힘든 상황에서 더 벗어날 수 없었던 요인이긴 하죠. 경제적으로 지금보다 넉넉했다거나 아이의 언어발달이 또래보다 늦지 않아 보모를 고용하거나 기관에 보내는 것이 무리가 없었다면 더 빨리 생활에 활력을 되찾았을 수도 있었겠죠. 

 이런 환경적인 것들은 사실 따지고 보면 불만스럽기는 했어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건 내가 선택한 것이니까요. 그러나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너무 부족한 사람임을 깨닫게 될 때였던 것 같아요. 도덕적으로 인성적으로 아주 훌륭하고 완벽한 사람만 육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나 스스로가 아이를 키우기에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참 힘들더라고요. '내가 너무 부족해서 나도 힘들고 아이들도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사실 아이들을 키우기 전에 만나는 관계들은 감정의 밑바닥까지 보게 하지는 않았어요. 어른들과 싸우다 보면 여기까지만 하자, 나중에 얘기하자, 혹은 손절을 하자.라고 선을 그을 수 있는데 아이들은 그럴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에요. 아이들이 나를 너무 화나게 해도 나는 도망칠 수 없고 도망쳐서도 안되죠. 감정의 끝을 보는 순간들이 굉장히 자주 일어나고 그래서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할 때마다 ‘아, 나 자신이 되게 별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그때마다 정말 힘들었어요.

 정해진 시간만 아이를 돌보아 주는 직업을 가지고 그 상황을 바라본다면 가볍게 다루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 또 시작이구나, 그래도 돈 버니까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버티겠죠. 하지만 부모인 저는 아이들과 내가 원할 때 떨어질 수 없고, 아이를 올바른 사회 구성원으로서 성장하도록 포기하지 않고 돕는 사람이어야 하니까 갈등이나 감정이 고조되는 상황들을 쉽고 단순하게 넘길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물론 나의 부족함을 한없이 느끼게 하고 또 거기서 뭔가 생각하고 배우게 되는 지점도 분명 있어요. 

그래서 감정의 변화가 큰 둘째를 키우면서부터는 감정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많이 배우고 생각하게 돼요. 우리는 기쁠 때, 자랑스러울 때 자랑하고 드러내기보다는 겸손해야 한다고 배웠고 슬프거나 화가 나도 삭히고 참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해 왔잖아요. 아이가 울면, ‘왜 울어. 울지 마.’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처럼요. 감정 기복이 잦고 표현이 서툰 아이를 키우면서부터는 저 역시도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고 이 감정의 정체가 뭔지 이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죠. 이제는 아기가 화를 낼 때 ‘어 그래 화가 났구나, 잠시 호흡하면서 멈춰보자. 화가 날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을 때려선 안돼’라고 가르쳐줄 수 있어요. 물론 항상 이성적으로 그러진 못하기도 해요.  


 한 사람을 키워내야 한다는 중압감,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혹시나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함,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제대로 다룰 수 있도록 교육해줘야 한다는 책임감은 내가 가진 능력의 한계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만든다. 지금의 어떤 갈등이 혹시나 미래에 우리 아이의 독립을 어렵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 모두 육아의 목적은 ‘독립’ 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앞에 여전히 ‘제대로, 잘’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둔다. 제대로의 기준은 무엇이며 잘은 얼마만큼 이어야 할까? 


- 제이님에게 아이를 잘 키운다는 건 어떤 모습인가요? 

 그 ‘잘’이 사회적인 인정이나 학업적인 성취는 아니어도 돼요. 인생을 살아 나아가는 데 있어 어떤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쉽게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끈기. 긍정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용기, 스스로의 감정을 잘 조절하고 나아가 타인의 감정도 너그럽게 받아들여 줄 수 있는 관용 이런 것들이 삶을 살아내는데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에게 다양한 분야에서 작은 성공 경험들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주려고 하고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좋은 바탕이 될 것이라고 믿거든요. 그런데 정작 아이를 키우는 지난 5년 동안 저를 위한 성취가 전혀 없었더라고요. 

 남편은 이곳에서도 커리어를 쌓아 나가고 있는데 나는 집안일로 이곳에 정체 돼있다는 느낌도 있었어요. 분명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고 해 왔지만 엄마로서 아이들의 성취를 도와주고 지켜 봐주는 것 만으로는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아이가 서고, 걷고, 말하기 시작하고 그런 모든 과정들이 기쁘긴 하지만 아이가 이뤄낸 성취이지 제가 이뤄낸 저의 성취는 아니잖아요. 5년이라는 시간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육아에 전념하면서 이제는 엄마가 아닌 온전한 나를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게 되었어요. 


- 성취하는 삶이 지금의 제이님에게 중요한 이유는 뭐가 있을까요? 

 뭘 꼭 이루지 못하더라도 열심히 사는 건 항상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찌 보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가치관을 사회나 어른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주입받고 살았을지도 모르죠. 열심히 사는 것이 옳다 그르다는 가치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모든 사람들이 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분명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보다는 모든 일이든 열심히 최선을 다해라가 더 익숙하잖아요.    

 돌이켜보면 운이 좋게도 어렸을 때부터 제가 이루고자 했던 목표는 이뤄내며 자라 왔어요. 부모나 주변으로부터의 인정이나 칭찬보다 내가 스스로 성취해 내는 것 그 자체로 느낄 수 있는 기쁨을 충분히 누려왔던 것 같아요. 달성해야 할 목표들을 하나하나 정해 놓고 계획에 맞게 성취해 나가는 건 마음이 편한 일이었어요.

 이제 육아의 영역에서 제가 항상 붙어있거나 모든 것들 도와줘야 하는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해요. 내가 맛있는 밥을 만들어 줘서 애들이 밥을 잘 먹고 몸무게가, 키가 얼마만큼 자랐다. 또는 내가 이런 방법으로 놀아줘서 아이가 얼마만큼 성장했다. 와 같은 시기는 이제 지난 것 같아요. 아이들이 복합적인 개체로 자라나게 되면서 내 의지 혹은 나의 노력으로 변화하는 비중은 줄어들고 아이 나름의 사회생활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금과는 다른 여러 방향들도 보게 되겠죠.  

 작년에 아이들을 재우고 틈틈이 공부해 미국에서 교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시험을 봤어요. 공부를 하는데 오랫동안 안 썼던 기계에 기름칠하는 느낌 아세요? 뇌에 윤활유가 들어가면서 멈춰 있던 뇌가 돌아가는 기분이요.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었고, 즐겁게 공부한 덕분에 작은 성취를 이뤄냈었어요. 지난 5년간 교사가 아닌 엄마로만 살아오기도 했고, 한국이 아닌 미국이라는 생각 때문에 당장 풀타임 교사보다는 보조 교사나 파트타임 교사 등으로 시작해서 지금 생활에서 아주 큰 변화 없이 조금씩 새로운 시도들을 해보고 싶어요.

 최근에는 둘째도 기관에 가기 시작하면서 온전히 혼자서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생겼어요.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영어 공부 모임에도 나가고 있고, 첫째 학교에서 봉사 활동을 하기도 해요. ‘가족’ 말고 다른 사람들과 다양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니 이제 좀 나의 만족을 위한 무언가를 찾아보자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은 '나를 찾고 싶다. 너무 외롭고 고독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나를 찾는다는 게 꼭 거창한 일이나 개념이 아니라 '가족들과 떨어진 다른 생활을 갖는 게 중요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족을 위한 보조자가 아니라 나 스스로를 위한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시간은 양육을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양육의 사전적 정의는 ‘아이를 보살펴 자라게 함’이다. 아이를 자라나게 하는 것이 주 양육자의 역할이지만 그것이 나의 전부가 될 수 없다. 내가 주체가 되어 무언가 이뤄내는 삶, 무언가 이뤄내지 않아도 괜찮다. 아이의 세계가 넓어지는 동안 나의 세계에도 물이 흐르고 햇빛이 내리쬐고 비가 내릴 수 있음을 그래서 종종 들여다보고 가꿔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만 해도 된다.  



- 인터뷰에 참여한 소감이 어떠세요? 

 저는 그동안 고립된 육아 생활로 너무 지쳐있었지만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그것이 저를 힘들게 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인터뷰를 하면서 내가 고립된 공간에서 나오기 위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어요.  



 제이님의 ‘나를 위한 시간과 공간 확보’는 육아라는 답답한 집에서 창문을 여는 것과 같았다. 내가 있는 이곳이 검은색이든 흰색이든 회색이든 다른 세계를 향해 서 보는 것,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 그 세계를 향해 뛰어나갈 수 있다고 믿으며 그때를 위해 작은 성취를 이루며 준비해 보는 것. 앞으로 그녀의 세상에서 자라날 아이들, 그리고 그녀와 진심을 나눌 학생들의 따스한 내일을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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