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회색지대 인터뷰를 시작하며
육아를 하기 전 육아에 대한 저의 생각은 ‘회색’이었습니다.
아이를 안 낳을 것은 아니지만, 기꺼이 낳을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생기면 어떤 일이 생기는 것인지, 얼마나 고통스러운 육아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 인지에 대한 호기심 혹은 두려움은 여러 루트로 그 길을 엿보게 했습니다.
아이를 낳은 지인들은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졌고 지인의 결혼식이나 모임에서 만나는 그들은 육아로 바빠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육아는 힘든데, 아이는 너무 예뻐’로 육아를 정리하곤 했습니다.
육아 서적을 읽어보았지만 아직 육아를 시작한 단계가 아니라 직접 와닿지 않았고 드라마나 소설책에서 보는 육아 하는 엄마의 모습은 과하게 영광스럽거나 비참해 보였습니다.
우연히 엄마 활동가들이 모인 모임을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참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노동 문제부터 안정적인 보육 시설의 부족, 노키즈 존 및 사회적 인식의 문제 등등을 논하는 멋진 언니들 사이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던 것은 둥글게 둘러앉아 토론하는 가운데 반짝이는 돗자리 위로 자유롭게 뛰어다니던 4~5살의 아이들, 그리고 열띤 토론 뒤, 잠시 뒤를 돌아한 살 배기 아이에게 젖을 먹이던 어떤 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저 아이들일 뿐이다. 우리도 한때 아이 었다는 새삼스러운 자각, 그것이 어쩌면 제가 아이를 낳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018년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2021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육아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기대보다 즐거웠습니다.
아이들은 순수했고, 예뻤으며 나의 어린 시절과 다시 만나는 시간들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다만, 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했고 그것은 나의 의지와 관계없었으며 그래서 종종 많이 지치곤 했습니다.
저에겐 ‘엄마’라는 타이틀도 있었지만 ‘워킹맘’이라는 이름표의 저 나름의 자랑스러움이 있었습니다.
나는 애도 둘이고 일도 잘한다. 돈 많이 벌어서 애들 넉넉하게 해주고 싶은 것 다 해줄 수 있다. 뭐 이런 아주 단순하고도 유치한 자랑스러움이었죠.
그러던 2022년 급작스러운 번아웃으로 직장 생활에 사표를 던지고 나왔습니다. 직장 상사의 별것 아닌 말이었는데, 팽팽하게 잡아두었던 어떤 끈이 툭 끊기는 기분이었습니다. 육아로 인해 축적된 육체적 정신적 피로의 누적과 더 높은 성과를 계속해서 창출해 내야 하는 조직의 요구 사이에서 저는 조직의 요구를 버리기로 선택한 것이지요.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엄마라는 자리는 사표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워킹맘 향다’라는 자랑스러움은 이제 사라졌고, 저에게는 ‘엄마 향다’만 존재합니다.
아이를 낳기 전 가졌던 막연한 회색 지대의 사람인 기분이 아이를 낳고 나서는 사라진 줄 알았는데,
직장을 그만두고 나니 다시금 회색 지대의 사람이 된 기분입니다.
육아를 하고 있지만 일도 하고 싶고, 일을 잘해왔지만 그게 내 인생에 과 우리 가족에게 어떤 시간이었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앞으로도 일을 안 할 생각은 없지만 지금 당장은 어떤 일을 할 방법이 보이지 않기도 하고 그래서 육아를 하는 지금의 시간도 앞으로의 시간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인터뷰를 해보고자 합니다.
아이를 낳을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들 그리고 아이를 낳고도 나를 찾는 여정을 계속하는 사람들,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고 있거나 하고자 하는 사람들
그 회색 지대의 누군가에게 우리의 이야기가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