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따러 갈래

유년의 뜰에서, 구름은 나를 먼저 품었다

by hym

기억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통과해 가는 것이었다


서쪽으로 이동하는 구름, 1분도 채 되지 않아 옆 동 건물 뒤로 사라진다. 또 다른 구름이 나타나고 이내 사라진다. 새 한 마리가 움직이는 구름 사이로 '느림보잖아' 하며 쌔~앵 날아간다. 서쪽 하늘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산에 가곤 했다. 산 중턱에 가면 볼레(제주 보리수 열매)며 유름(으름)이며 산 열매들이 흐드러지게 열려있었다. 새끼손톱만 한 진홍빛 볼레는 보릿고개 시절 아이들의 허기를 달래주었고, 4.3 당시에는 산으로 피신한 주민들의 생명줄이 되기도 했다. 작은 바나나 모양의 유름은 연갈색 껍질이 벌어지면 우윳빛 속살을 탐스럽게 드러냈다. 달착지근하고 무른 식감에 씨를 뱉지 못하고 그냥 오물오물 삼켰던 기억이 아직도 입안에 남아 있다.


까마득한 기억이다. 아버지 따라 산에 가기로 한 날, 오늘처럼 하얀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 있고, 산자락에도 구름 떼가 여기저기 걸려있었다. 그날따라 구름은 솜사탕처럼 새하얗고 탐스러워 보였다. 나는 생각했다. 산에 가면 저 구름을 조금 담아 와야겠다고. 그래서 봉지 하나를 챙겨 아버지 뒤를 따라나섰다.


막상 산에 도착했을 때, 그 탐스런 하얀 구름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서늘한 기운과 희미한 물기 속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내가 담아 오려던 구름이 나를 감싸고 나를 품에 넣은 줄은 모른 채, 난 내가 구름을 데려오려고만 했던 것이다. 구름을 통째로 가지려던 건 아니었다. 봉지에 조금만 담아 두고, 혼자일 때 꺼내어 보며 친구 삼으려 했던 것이니, 그 정도는 구름도 동의했을 것이다.


어느새 구름은 서쪽 하늘로 다 이동했고 하늘엔 파란 카펫이 펼쳐져 있다. 매 순간이 시작이자 끝이다. 이걸 삶의 매듭이라고 불러볼까 한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매듭을 짓는다. 하루가 끝날 때 작은 매듭 하나, 계절이 바뀔 때 조금 더 굵은 매듭 하나. 그렇게 매듭을 더하며 시간을 견디며 생을 엮어간다. 죽음 앞에선 그 끈을 마저 매듭짓고 조용히 놓는다.


인생은 매듭의 연속이다. 죽음은 매듭의 끝이다. 아니, 또 다른 매듭의 시작이려나. 정답은 알 수 없기에, 우리는 오늘도 매듭을 정성껏 지으며, 내일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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