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뜰
지난 글에서 지네의 딜레마를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쓰겠노라 다짐했는데, 오늘은 제 기억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나팔꽃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어린 시절, 꽃과 나무를 유난히 사랑하셨던 부모님 덕분에 나의 유년은 늘 향기로운 꽃길이었다. 앞뜰과 뒤뜰에는 사시사철 계절의 숨결이 피어올랐고, 나는 그 정원 안에서 세상을 배웠다. 지금도 기억에 선명한 앞뜰의 풍경들. 대나무, 협죽도, 무궁화, 장미, 그리고 무화과나무. 가을 소풍 갈 즈음이면 무화과는 꿀처럼 달콤하게 익어갔다. 하룻밤 사이 탐스럽게 익은 무화를 따 먹으려면 아침에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야 했다. 요즘 시장에서 만나는 무화과와는 비교할 수 없던, 그 시절의 ‘꿀무화’ 맛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마당에 고인 물 위로 대나뭇잎 배를 띄우고, 무궁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곤 했다. 독성이 있다며 주의를 주셨던 협죽도는 멀찍이 서서 눈으로만 교감했다. 나른한 오후, 평상에 누워 하늘을 보면 분홍빛 협죽도 꽃이 마치 파란 하늘에 박힌 별처럼 반짝이곤 했다.
그 짧은 찰나, 나팔꽃은 어떻게 피었을까
뒤뜰에는 백합과 나팔꽃이 살았다. 노란 꽃가루가 묻은 백합 수술과 그보다 더 높이 솟은 암술 위로 벌들이 잉잉거리며 날아다니던 모습. 그 생명력 넘치는 광경을 툇마루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보았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부엌으로 밥을 먹으러 가는데, 뒤뜰에 함초롬히 봉오리 진 나팔꽃이 시선을 끌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그 짧은 새 나팔꽃이 활짝 피어 있는 게 아닌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도대체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꽃을 피우는 걸까?’
작정하고 툇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봉오리를 응시했다. 하지만 꽃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밥 먹어라, 학교 늦겠다!" 엄마의 재촉이 등 뒤를 때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뚫어지게 봉오리만을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가슴속 셔터를 누른 순간
그때였다. 1~2분 정도의 간격이었을까.‘솨악~, 솨악~...’ 낮게 읊조리는 소리와 함께 나팔꽃 봉오리가 기지개를 켜듯 펼쳐지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그 경이로운 순간을 나는 가슴 속 카메라에 담기 위해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한 끼 식사를 거르고 엄마의 꾸중을 견뎌낸 끝에 얻어낸, 어린 인생 최초의 ‘결실’이었다.
그날의 떨림은 어린 가슴에 강한 낙인처럼 남았다. 돌이켜보니 인생의 고비마다, 새로운 도약이 필요한 시기마다 그날의 떨림이 되살아나 나를 북돋아 주었다.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리고, 온 마음을 다해 지켜봤을 때 비로소 열리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나팔꽃에게 배웠다.
추억이란 작은 가슴 떨림의 모음곡이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추억의 서랍을 하나씩 열어보는 맛이 쏠쏠하다. 그 서랍 속에서 나팔꽃 피는 소리가 들려올 때면, 나는 다시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