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 사이로 스며든 파라다이스

모래사장 어싱(Earthing)

by hym

오랜만에 만나는 파란 하늘이다. 바람마저 어디론가 외유를 떠난 듯 공기는 잠잠하다. 고요하고 맑은 아침이 열리자, 한낮의 태양이 겨울의 찬 공기를 다정하게 녹여주었다.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내 몸이 투명한 공중에 부유하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종일 실내에 머물다 보면 몸의 활력이 금세 가라앉곤 한다. 자고로 인간이란 땀 흘려 몸을 움직이는 수고로움과 그 결실을 먹고 살 때 비로소 존재의 가치를 느끼는 법이다. 그래서 평일에는 20분간 나만의 몸풀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오후에는 한 시간의 요가로 몸 구석구석의 세포를 일깨우며 산소를 불어넣는다. 하지만 가끔은 요가 매트 위를 벗어나 나만의 새로운 길을 만들고 싶어질 때가 있다.


오후 5시경, 차를 몰아 삼양해수욕장으로 향했다. 20분만 달리면 파도 소리를 곁에 둘 수 있는 이곳은 참으로 축복받은 땅이다. 산과 오름의 포근한 능선이 언제든 기대어 쉴 언덕처럼 다가온다. 평소 내밀한 동굴 안에 머무르기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의식적으로라도 밖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싶었다.


바다는 하늘처럼 볼 때마다 다른 옷을 입는다. 해수욕장 입구에 들어서니 진회색 바다가 수평선 아래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맑은 날씨임에도 바다가 이토록 짙은 색을 띤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차에서 내려 신발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모래사장에 발을 내디뎠을 때야 그 이유를 알았다. 커다란 구름 덩이 하나가 지는 해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고, 그 거대한 그림자가 바다 위에 진회색 베일을 씌우고 있었던 것이다.


모래에 발바닥이 닿는 순간, 차갑던 감촉은 이내 기분 좋은 선선함으로 변한다. 적당히 보드랍고, 내 몸의 무게만큼 폭신하게 빠져드는 울렁임. 발가락 사이를 어루만지듯 스치는 모래의 결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때마침 16도까지 오른 기온이 포근하게 전신을 휘감아 도는 순간, 이곳이 파라다이스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삼양의 모래는 검은빛을 머금고 있다. 그 위로 검은 드레스와 양복을 갖춰 입은 신랑 신부들이 인생 컷을 찍느라 바닷물에 옷을 적시며 포즈를 취한다. 폐장된 해수욕장이지만 가까이서는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산책을 즐기는 몇몇 사람들이, 저 멀리 윈드서퍼들의 실루엣이 파도와 함께 출렁거린다. 산책 나온 사람들의 담소가 파도 소리와 화음을 이루며 석양 녘 바닷가의 잔잔한 축제가 무르익는다.


밀려왔다 밀려가며 부서지는 하얀 포말의 그림자를 밟는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선명히 남았다가, 다시 밀려오는 파도에 속절없이 지워지는 발자국을 바라본다. 잠시 시간을 압축해 본다. 우리네 삶의 족적 또한 이와 같지 않을까. 한순간 뜨겁게 남겨지는 듯하나, 결국은 파도에 씻겨 내려가는 발자국 같은 것.


다시 압축된 시간을 풀어 현실로 돌아온다. 살다 보면 힘든 요가 동작을 견디는 1초가 영원처럼 길게 느껴질 때가 있다. 관점에 따라 순간이 영원이 되고, 영원은 순간이 되는 세상이다. 지금 이 해변을 걷는 찰나의 평화 또한 내 안에서는 영원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모래사장 시작점에서 끝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그새 해는 주황빛 아쉬움을 움켜쥔 채 수평선 너머로 작별 인사를 한다. 커다란 구름 형상의 연인은 가지 말라며 지는 해를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지만, 끝내 그 빛을 따라잡지 못한다. 만남과 이별은 이토록 자연스러운 우주의 섭리인가 보다.


한 시간 남짓 맨발로 땅을 딛는 '어싱(Earthing)' 덕분일까. 몸과 마음이 한결 가볍다. 모래 위 발자국은 파도에 지워졌을지라도, 발가락 사이로 스며든 파라다이스의 감촉은 내 안에 오래도록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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